<저 청소일 하는데요?>,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내 일상의 행간엔 늘 ‘책’이 있었다. 바쁜 일상 속 틈틈이 읽는 책 한 권만큼 나의 워라밸 라이프를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도 없다. 어떤 책이든 저마다의 교훈을 담고 있고, 내가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같은 책이라도 다른 해답을 보여준다. 미술책에서 사랑을 배우기도 하고, 에세이에서 청소법을 익히기도 한다. 오늘 내가 읽고 추천한 책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발견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한 때 서점가에는 유행처럼 ‘퇴사’ 열풍이 불었다. 너도 나도 퇴사 후 자아를 찾고, 여행을 떠나고, 프리랜서로 독립해 제2의 인생을 살라고, 이곳에서 버텨봤자 남는 건 없다고 외치는 듯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이나 재능은커녕, 무엇이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대부분의 직장인은 칼퇴나 보너스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우리는 더이상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의 적성이나 보람을 찾을 여유는 없다. 하지만 여기, 이상과 현실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한 두 명의 젊은이가 있다. 일과 삶의 균형, 꿈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이들의 삶에서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 <저 청소일 하는데요?>
하고 싶은 일이 꼭 직업이 되어야 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면 일과 삶이 일치되기 때문에 굳이 워라밸에 목매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좋은 일도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는 비판론도 존재한다. 퇴근 시간만 바라보며 억지로 일하는 삶에는 결사반대지만, 사실 나는 후자의 입장이다. 너무 좋아하고 꿈꾸던 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매일 날을 새며 건강을 잃고, 주말에도 마음을 졸이며 살다 보니 어느새 좋아하던 일이 가장 피하고 싶은 악몽이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퇴근 후와 주말이 있는 삶, 즉 워라밸이 지켜지니 일에 대한 열정도 재미도 생겼다. 이런 고민은 대부분 예체능계에서 많이 일어난다. 일반 직장인보다 더 창의적이고 취향에 맞는 일을 하는 대가로 무시무시한 야근과 박봉을 견뎌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저자 김예지 역시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던 평범한 취준생이었다. 미대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지만 높은 취업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을 바라보는 사이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갔고, 고민하던 그녀가 선택한 건 뜻밖에도 ‘청소일’이었다. 27살의 젊은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일 중 청소는 몇 번째에 해당할까? 더욱 놀라운 건 이 일을 제안한 것이 그녀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기업, 병원, 학원 같은 공공기관과 계약을 맺고 청소해주는 개인사업체를 운영 중이셨던 어머니는 ‘청소일로 돈을 벌고, 남은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너는 절대로 나처럼 살지 말라’며 자신의 이상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여느 부모님과 달리 "엄마는 이런 일도 열심히 하는 예지가 너무 기특한걸?”이라고 다독여주는 어머니의 태도는 노동의 가치를 깨우쳐주기 전에 직업의 귀천을 먼저 주입시키는 수많은 부모와 비교된다. 저자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식을 깎아내리지 않으며, 항상 나를 생각해주는’ 어머니의 태도가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썼다. 그런 어머니가 없었다면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는 용기를 쉽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월, 수, 금은 청소일을 하고 화, 목엔 그림을 그린다. 혹은 새벽에 청소하고, 오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청소일로 번 돈과 시간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삶은 원치 않는 일을 하며 꿈을 잃고 살아가는 직장인의 삶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그림과 생각들을 모아 독립출판물을 냈고, 인기에 힘입어 기성출판까지 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강연을 하거나 그림 수업을 가르치기도 한다. 청소일을 하지 않았다면, 꿈꿀 수 없던 일들이다.
물론 젊은 나이에 청소일을 하는 저자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빛과 직업을 물을 때 제대로 대답할 수 없던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갇혀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고 책임지는 인생에 정해진 길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앞의 사례가 아직 취직하지 못한 청년들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늘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사는 직장인을 위한 책을 한 권 소개한다. 워라밸이 지켜지는 회사에 다닌다고 누구나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퇴근 후에는 의미 없이 TV 채널을 돌리거나 지인들과 만나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주말에는 늦잠을 자며 허무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는 사이 또 월요일은 오고, 금요일을 기다리며 쳇바퀴를 돌린다. 신입의 패기는 사라진 지 오래고 1년, 2년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면 월급일만 기다리는 영혼 없는 나와 마주하게 된다.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의 저자 김유미도 그랬다. 10년 차 직장인인 그녀 역시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혼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운동도, 자기계발도 일주일만 의욕이 불타고 금세 싫증이 났다. 퇴근 후의 시간을 늘 함께 보내던 친구들이 모두 떠난 어느 여름날, 그녀는 그동안 정말 하고 싶던 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봤다. 답은 그림이었다. 학창 시절 그림을 그리며 마음이 반짝이던 순간을 다시 찾고 싶어졌고, 그 길로 동네 작은 화실의 ‘성인 취미 미술반’에 등록했다. 처음엔 연필 소묘를 그려보고 목탄화, 수채화를 거쳐 5년여 동안 드로잉, 채색화 600여 점을 그렸다. 그러다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고, 2018년에는 한국전업미술가협회에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꼭 저자처럼 전문 작가가 되거나 책을 출판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전공이나 먹고사는 일과 무관한 것을 하며 해방감을 느끼고, 살면서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나다움’을 발견하는 것, 아무나 만나고 아무거나 하던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여전히 물감을 사기 위해 하루 8시간을 직장인으로 살고 있지만, 저녁 7시가 되면 작가로 변신해 두 번째 하루를 시작한다. 퇴근 후의 나를 생각하면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틸 힘이 생긴다. 현재 살고 있는 삶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나 자신만의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고 더욱 충만한 느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도무지 끝도 안 보이고 끝날 기미도 없는 일들, 시도 때도 없이 날카로워지는 감정들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나만을 위한 시간, 나만의 작은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잘 지켜내려면, 애쓰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데일리타임즈W 김수영 기자 dt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