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옳다.

by 아챠하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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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무용학과에서 요가를 처음 만났다. 친구 손에 이끌려 우연히 수강신청을 했는데 키가 아담하고 동그스름했던 30대 여자 강사님이 요가수업을 했다. 한 학기의 수업을 듣고 스스로 시퀀스를 만들고 발표를 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아마도 그때가 첫 기억이다.


대학교 앞 요가원을 가끔 다니기도 했다. 살집이 있고 배가 많이 나온 약 50대 즈음의 중년남성의 선생님이었다. 이후로 철학과 전공수업을 신청해서 들었을 때도 40대 즈음의 서구적인 미모의 요가선생님이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의 질문에 막힘 없이 답변하던 똑똑한 분으로 기억한다.


스쳐 지나갔던 선생님들은 모두 성별도 몸의 체형도 삶의 방향성도 안내의 결도 전혀 다른 분이다. 그때를 떠올려보며 요즘은 요가를 하면 할수록 더욱 정해진 틀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수업을 안내하다 보면 몸에 켜켜이 새겨진 저마다의 고유한 삶의 곡선을 보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결은 더욱 특별해져 삶의 경험과 냄새 감정들이 스며든 다양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는 공간을 보게 되는데 각각의 방식으로 변모한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하나의 모양으로 하나의 자세로 맞추는 일이 점점 부자연스러운 일임을 느꼈다.


물론 나는 오랜 시간 아사나라는 틀 안에 몸을 억지로 구겨 넣으며 수련을 했다.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족함을 메우려는 마음으로 꾸깃꾸깃 몸을 구겨 넣던 시기에 나는 무수한 소음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침묵하고 싶었다. 숨고 싶었다. 계속해서 삐져나오려는 소음들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침묵과 고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채우려는 마음으로 구겨지던 시간 들은 겉보기에 내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주고 육체적인 힘을 길러주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애쓰고 저항하는 마음들이 삶에서 일어나는 습관과 에고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며 견고하게 쌓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요가를 하는 일이 단순히 틀에 몸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자신의 균형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임을 알게 했다.


’ 자연스러움‘에 대해 말하는 많은 성인들을 본다. 내가 좋아하는 장자의 우화 속에서 자연스러움을 말하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떠올려본다. 훌륭한 목수의 이야기 장자의 「대종사」(大宗師)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목수가 아름다운 종을 매다는 틀(종각)을 만들었는데, 너무 완벽해서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그에게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냐”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나무의 본성을 따랐을 뿐입니다. 먼저 어떤 나무의 성질과 모양이 이 틀에 적합한지 찾았고 그 나무의 성질에 따라 작업했을 뿐이죠.”

장자의 우화는 요가 자세와도 깊이 연관된다. 목수가 억지로 나무를 깎아내지 않고 나무가 가진 고유한 결을 찾고 존중했듯이 자신의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흘러가도록 맡길 때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게 된다.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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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하는 일이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모양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다. 자세를 통해서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힘을 찾아 나가다 보면 요가에서도 삶에서도 내가 걸어가는 고유한 과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힘을 키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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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나의 본성을 깨우고, 나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내 본성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질문을 품어보는 일, 요가를 통해 경계를 넘어가 보며 공간을 확장하는 일을 통해 우리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면서 스스로가 만든 벽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당신께 전하고 싶다. 나는 당신의 지금 있는 그대로를 신뢰하고 지지한다.

어떤 모습이라도 당신은 충분히 옳다.






Believe in yourself. You're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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