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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기 Jan 26. 2024

왜 하필 독일어를 선택해서

외국어 유목민의 자아성찰 2

다른 독일어 전공자 학생들을 제치고 꽤나 먼저 시험지를 제출했다. 내가 아는 것은 모두 쏟고 나왔으니 이제 성적은 채점하시는 교수님께 맡긴다 하는 마인드였다. 난 후련하게 시험장을 나왔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시간에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받은 결과, A학점. 너무나 감격스러웠고 난 이것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을 정도로 큰 쾌거라고 느꼈다. 내가 독일어 문법 A라고! 그 어려운 독일어 문법을 전공자들 제치고 당당히 A를 받았다고!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물론, 내 본래 전공은 한 과목 F 받았던 것 같다.


정작 전공 시험은 밤새 공부를 하고 늦잠을 자버려서 그만 시험장에 지각해 치르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내 노력은 부전공인 독일어에 쏠려있었다. 이게 바로 선택과 집중이지. 난 독일어를 선택했고 전공은 버렸던 것이다. 뭐 어때, 독일어 문법 A라는 사실은 내 인생 평생 기억될 성공 일화니까. 그렇게 난 꽤나 성실히 독일어를 공부했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못할까? 동사 변화를 무진장 외우고 명사의 성별을 쓰고 또 쓰며 외웠건만, 머릿속에 남는 단어들은 기초적인 것들 뿐인지. 이럴 땐 정말 야속하다. 왜 20대에 시작하는 언어는 쉽게 흡수되지 않는 걸까.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에겐 유럽국가 언어들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그렇게 독일어는 잠시 나와 가까워졌다가 다시 내 손을 떠나갔고 우린 이별을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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