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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기 Feb 08. 2024

다시 만난 일본어 세계

외국어 유목민의 자아성찰 5

사실 일본어는 과거의 나와 안면을 튼 사이다. 그래봤자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정도지만, 어머니께서 일본어를 구사하셔서 난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일본 문자를 배웠다. 어머니 버프라고 부를 텐데, 난 사실  일본 만화를 좋아했던 과거가 있어서 초등학생 때 이미 애니메이션 노래를 일본어로 외워서 불렀다. 그러니 어머니의 교육보다는, 오타쿠스러운 내 성미가 다 한 것이다. 역시 어떤 문화든지 간에 힘이 있는 법이다.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라 할지라도.


다시 20대로 돌아와서, OO 외국어 대학교에 다녔던 나는 4학년 복학을 하고서 마지막 학기 때 용감하게도 일본어 통번역 학과의 강의를 등록했다. 전공 강의라 무려 전공자들과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도 말이다. 당시 일본어 교양 강의도 있었는데 난 제대로 배우자는 마음에 욕심을 내었다. 정말이지 무모한 도전이었다. 웃긴 건 나는 그 강의를 신청하고 나서 레벨 테스트에 참여를 했는데, 열심히 보고 나왔더니만 나보고 중급 반에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다들 일부러 시험을 못 봤더라. 초급 반에 가려고…. 정말이지 그 당시 OO 외국어 대학교 다녔던 친구들은 자존심도 없나. 아님 나만 너무 순진한 거야?


그리하여 들어가게 된 일본어 중급 강의. 교수님은 너무나 여리여리하신 분이셨고 일본 특유의 감성이 묻어있는 교재 하며 그 내용들이, 독일어를 배울 때와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에 무언가 색다른 느낌이었다. 왜 귀여운 건데? 독일어는 하나도 귀엽지 않았는데. 독일어는 엄격한 터울 있는 큰 오빠 이미지였다면, 일본어는 막내 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초반에만 그렇지 추후 한문을 외울 때가 되면 그 귀여웠던 막내 동생도 미운 7살이 되긴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걸 몰랐다. 교재에 나오는 한문만 외우면 됐기에….


일본어를 무진장 열심히 했다. 또 전공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 전공은 기억도 안 나고 일본어 공부한 기억만 남는 걸 보면, 난 정말 언어를 위해 태어난 인간일지도 모른다. 교수님께서는 노트 필기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강의 시작 전에 미리 단어를 예습하고 교재의 본문을 미리 읽어보는 것, 그리고 그걸 정리하는 것이 평가 항목 중 하나였다. 난 중학교 때까지 노트 필기의 달인이었던 이력이 있어서 그 강의에서 나의 과거 이력은 빛을 발했다. 완벽주의자 성향의 중학생 때 나를 오랜만에 끄집어내었던 것이다.


이윽고 교수님은 나의 노력이 안쓰러우셨는지 타과 학생들의 평가에는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하셨다며 나에게 B+를 주셨다. 내심 A를 기대했으나 그건 좀 과욕이었나 보다. 하여간 그렇게 일본어도 마무리되었다. 난 졸업 후에 일본어 능력 시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N3부터 N1까지. 일본어는 뒤에 숫자가 낮을수록 등급이 높다. 나는 그래서 결국 마지막 등급까지 습득했다. 한문은 헷갈려 죽을 맛이었지만 언어만 공부하던 그 시간이 나에겐 즐거웠다. 일본어는 그렇게 친숙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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