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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기 Mar 07. 2024

외국어로 나대는 것도 정도가 있다

외국어 유목민의 자아성찰 13

가족끼리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가까운 나라 일본으로. 일본은 두 번째 방문이다. 이전에 어머니와 단 둘이 어머니의 오랜 지인을 만나러 오사카에 들렀던 게 첫 번째, 그땐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거의 가만히 있었는데 이제는 꽤나 공부한 짬바가 있으니 무슨 말이라도 하겠거니 싶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하는데, 왠지 입이 근질근질하다. 인사라도 하고 싶다. 입국심사가 끝나고 마주한 운전기사님. 친절하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해주시는데 나 역시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고 싶다.


그렇게 일본어를 할까 말까 하는 와중에, 드디어 일본어를 할 기회를 잡았다. 식당에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기 위해서! 나는 종업원 아주머니께 말을 걸었다. ‘아노…. 와이파이 패스포토가 난데스까?’


응? 나 뭔가 잘못 말한 것 같은데? 와이파이 패스포토? (와이파이 여권?) 패스워드가 아니라? 그렇다. 난 패스워드를 패스포트로 말한 것이었다. 뒤늦게 깨닫곤 창피함을 여실히 느꼈는데, 다행히도 아주머니는 말뜻을 알아들으셨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셨다. 그렇게나마라도 시작해서, 나는 이제 더 나대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코스 요리를 먹는 와중, 친오빠가 짧은 일본어로 반말을 구사했다. ‘아리가또’, ‘다이죠부’ 등,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 대신, ‘고마워’, ‘괜찮아’로 대답했던 것이다. 난 빈 접시를 치워주시는 종업원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이 사람 애니메를 보면서 일본어 공부한 사람이라….’ 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일본어를 잘한다며 칭찬해 주셨고 난 ‘외국어는 역시 재밌어' 하며 이 상황을 즐겼다. 허나 언어의 부족함을 느낀 것은 메뉴에 대한 질문을 할 때였다.


이자카야로 출동, 우리는 한문으로 빼곡히 적힌 메뉴판을 보며 다소 당황했다. 사장님은 오늘의 메뉴라며 간소화된 메뉴판을 하나 보여주셨고 우리는 그걸 보며 겨우 겨우 메뉴를 읊어나갔다. 주문해야 하는 메뉴는 총 5개, 그리고 주류는 3잔. 일단 메뉴 주문은 겨우 끝났다. ‘위에서부터 2개와 아래에서부터 3개 주세요.’, 그리고 주류를 주문하려는데, 츄하이와 하이볼을 구분하지 못했던 우리는 난관에 봉착했다. 라임 하이볼을 주문하려 했는데 알고 보니 라임 ‘츄하이’ 였던 것, 그리고 일본주를 주문하려는데 사장님이 거의 7병의 종류를 보여주셨고, 우린 조사도 안 해온 터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땐 ‘오스스메 모노와 난데스까?’ 하며 추천 메뉴를 묻는 방법이 최고다. 순발력을 발휘하여 두 번째 위기라도 탈출하고자 기지를 발휘, 다행히 사장님의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메뉴들은 모두 대성공, 기분 좋은 식사 자리를 마무리하고 나오며 살짝 느낀 것은, ‘아, 좀 나댔구나.’ 물론, 외국어는 이렇게 나대면서 공부하는 게 좋다. 그러나 준비를 하고 나대는 것과 그냥 나대는 것은 좀 다른 법! 앞으로는 준비하고 나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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