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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Jun 08. 2018

아빠한테 잘하자

 몇 해 전, 뭇 남성들을 울린 동영상 하나가 인터넷에 돌아다녔습니다. 결혼을 한 젊은 아빠들에게, 자신의 아이에 대한 설문지를 내밀며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잠버릇은 어떤지 등 아이의 소소한 것들을 물어보았습니다. 요즘 젊은 아빠들은 육아에도 곧잘 동참하며 스스로 좋은 아빠라고 꽤 자신하는 편이죠. 그들은 엷은 미소를 띠고 자신의 귀여운 아기를 떠올리며 어렵지 않게 답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진짜 질문지가 나옵니다. 자신의 아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여기서 참여자들의 얼굴이 굳습니다. 자신의 아빠에게 대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몇 개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당신은, 당신의 아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빠가 좋아하는 색깔은?

-아빠의 잠잘 때 버릇은?

-아빠의 초등학교 때 별명은?

-아빠의 취미는?

-아빠의 특기는?

-아빠의 한문 이름은?

-우리 아빠를 한 마디로 설명해 보세요


 이윽고 참여자의 아빠가 인터뷰를 한 동영상을 보여 줍니다. 아빠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많이 미안하다고. 아빠가 잘 몰라서, 형편이 어려워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식에게 해 준 것이 없어 죄스럽다고. 아빠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도 못했던 다 큰 아들들은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인터뷰 동영상이 끝나고 아빠가 진짜로 등장하자 참여자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립니다. 이것이 우리 세대 아빠들과 우리들 간의 현실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는데 말도 못 하고 표현하기도 쑥스러운.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미안하고 안쓰럽기만 한. 우리도, 우리 아빠에게 똑같은 마음이지 않나요?

 어릴 땐 누구나 엄마가 좋기 마련이잖아요. 엄마가 더 따뜻하고 엄마가 더 포근하잖아요. 엄마보다 아빠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 몇 명이나 될까요? 저도 어렸을 때, 당연히 엄마가 아빠보다 우선이었어요. 특히 우리 아빠는 좀 괴팍했거든요.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왜 저렇게 말을 하지 왜 굳이 이렇게 팍팍하게 구는 거지. 그랬던 제가... 성인이 되고 사회인이 되었어요. 돈을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는데, 아니 먹고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요? 나 하나 데리고 사는 것만으로도 정말 사는 게 녹록지가 않은 거예요. 객지로 떠난 지 이삼 년이 지나자, 혼자 가족을 챙겨서 살아보려고 바둥바둥했던 아빠의 젊었을 때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 돈 벌기가 쉽지 않구나. 버는 건 정해져 있는데 나가는 건 무한정이구나. 그 와중에 공부 더 시켜달라 필요한 거 내놔라 갖고 싶은 게 많다 아우성인 딸 둘이 있는 네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무게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런데 아빠들은 힘들다고 어렵다고 말도 못해요. 아빠잖아요.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고 가족들이 아프지도 못하게 울지도 못하게 우리 아빠를 강한 남자로만 만들어 버렸잖아요. 그래서 아빠가 더 힘들고 지쳐서 때론 우리에게 버럭하고 술독에 빠져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 내가 아빠를 조금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른이 된 나는,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집에 들어온 날이면 아빠 생각을 하다 잠드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빠에 대한 생각은 끝이 없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짠한 우리 아빠. 그런데 우리가 아빠 생각, 대체 얼마나 하나요? 일 년에 몇 번은 할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우리 아빠들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내 앞가림하느라 바쁘다고, 내 자식 키우는데 정신없다고, 효를 잊고 살아도 되는 걸까요.  

 그동안 몰라주었던 아빠에 대한 일기를 써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계속 물어보며 아빠, 이땐 왜 이랬어요? 이때 이런 일 기억나요?라고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아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 이제는 물어볼 수 있지 않겠어요. 뜻밖의 아빠의 대답에 놀라기도 했고 이제는 아빠가 답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다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제 또래의 친구들이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아빠 역할을 합니다. 요즘의 아빠들은 예전처럼 권위적이거나 가부장적인 대신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예전과는 완전 다른 아빠로 변했습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엄마가 되어서는 우리 시절의 아빠 대신 자상하고 편안한 남편 그리고 아빠 역할을 해 주는 배우자에게 만족하며 아름다운 가정을 키워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아빠는요? 자식들이 새로 만든 가정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아빠는 사실 잘 못 끼워진 단추를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몰라 속은 타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식이 나에게 못 했다고 생각하는 아빠는 없습니다. 못 해 준 게 많아서 죄책감으로 아빠는 먼저 손 내밀지 못합니다. 평생 서먹하게 지내 온 친구와 어느 날 갑자기 친해져야 하는 어려운 과제와 같이 매우 어색한 마음일 겁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음을 열고 아빠, 나 마음 열려 있어요 하는 것을 어필하면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온전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거, 우리 자신도 잘 알고 있지 않아요? 잃어버린 효를 찾아서. 효 이야기를 금요일마다 연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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