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군 Jan 13. 2020

인큐베이터 모드로 기어 변속

실무형 관리자


연말연초 많은 시그널들이 있었다. 건강, 사람, 그리고 마지막은 조직이었다.


3년전 NGO로 행선지를 정했을 때 내 안에 있는 키워드는 조직이었다. 막연히 '누군가의 자리를 만들고 싶다' 생각했었다. 그것이 막연히 내가 가진 조직에 대한 이미지였다.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은 결국 조직이라는 점이었다. 그곳이 기업이건 정부이건 NGO이건 조직은 조직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점이었고 한창 성장기의 조직이라는 점이었다. 성장기의 작은 조직(6명)은 스타트업처럼 이것저것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조직이 커가면서(20명) 조금씩 서로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 선들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대표님이 심상치 않은 화두를 던졌다. 나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전환이었다. 연말 동안 그것이 나를 완전히 잠식했다. 단체라는 조직 차원에서는 마땅한 방향이나 개인이 아니라 팀이라는 또 다른 조직을 이끄는 팀장으로써는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 즈음 형수 상이 있었고 우연히 두 명의 메신저를 만났다. 그 때 이 고민이 얼마나 자잘한 것이었나를 깨달았다. 사람 목숨, 삶의 여행에 비하면... 조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직을 지킨다는 건 에너지 낭비였다.


사십대를 부탁해!


새해를 맞아 다시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조직을 조직으로 대하는 정신무장은 정장만한게 없다. 정장 한 벌 맞추면 좋았겠지만, 일단 구두를 장만했다. 10년간 구두약을 올리고 덧대며 내 발같이 신었던 녀석이었는데 어느날부터 물이 샜다. 워낙 싸돌아다니는 업무였으니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이번에 장만한 녀석과는 내 사십대를 함께 할 예정이다.


업무 재설계에 들어갔다. 일단 실무를 절반 덜어낼 예정이다. 그리고 그만큼을 관리와 기획으로 옮겨갈거다. '인큐베이팅'을 위한 관리와 기획 업무들이다. 동료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기획으로 발전시키고, 그 가운데 팀원이 지치고 휘둘리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줄여가고, 조직에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로 내 업무를 옮겨간다.


어느덧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물론 이는 선택지다. 선배들처럼 실무의 세계를 선택하며 프리랜서나 기업가의 길로 진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조직이 마주한 질문과 과제들에 마음이 끌린다. 방법론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만.ㅎ 그 과정에서 관리자로서의 시야와 자질을 갖춰야한다면 갖추면 되는거다. 나쁘지 않다.


언젠가 이 여행도 끝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위해 전환기의 고뇌들을 기록해둔다.



'해피니스', 오시미 슈조
작가의 이전글 죽음의 비용 - 초상에서 납골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