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군 Sep 19. 2018

민주적 조직이냐, 효과적 조직이냐

#6. 출발선을 지킬 것인가, 목표점에 다다를 것인가

J에게



그간 잘 지냈습니까. 출장 다녀와서 연락드린다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카톡으로 인사를 전할 수도 있었지만 근 1년만의 연락이라 조금이라도 근황을 정리해 인사하고 싶어 꾸물거렸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더블린행이었습니다. 첫번째는 처음이라 정신없었다면 이번에는 단체로 움직여 또 정신이 없었네요. 기업이건 NGO이건 출장이란 늘 잡념이 끼어들 여지는 없는 듯 합니다. 그래도 기업의 출장이 더 여유도 낭만도 있지 않았나 싶네요. 아직까지는 ㅎ


이번 본부 방문은 더 깊이있는 대화들로 이어졌습니다. 작년에는 동료들과 업무에 대한 이야기들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좀더 단체의 근간과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마도 좋은 기자들과 동행했기에 가능했던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간만에 좀 더 깊은 지점까지 생각이 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조직'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기업에서 NGO로 넘어올 때 제게는 조직에 대한 화두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업무를 대하는 것을 넘어서, 좀 더 높은 공통 목표를 향해 다양한 구성원을 모으고 함께 성장하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회적기업이나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렸죠. 결과적으로 비정부기구로 넘어오게 되었지만요. 당시에 이 단체의 규모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형 단체의 한 명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창립멤버는 아니지만 거의 초기 멤버나 다름 없는 합류였죠. 그러다보니 스타트업이나 다름 없이 조직 안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갖게 된 착각도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NGO를 바라볼 때 가졌던 환상 중 하나는 '민주적 조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뜻을 모아 협력하는 실천적 지식인들같은 이미지였죠. 대외적인 핵심은 미션과 비전이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의사결정구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정수기를 구입하더라도 치열한 토론과 찬반투표가 오갈 거라 상상했죠.



그건 2018년의 우리가 10년전의 북한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오래된 편견이었습니다. 막 태어난 조직이라면 그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창립멤버들과 소수의 핵심멤버들로 구성된 신생조직. 그건 영리이건 비영리이건 상관없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시행착오를 거치고, 구체적인 결과물을 전달하고, 장기적인 임팩트를 고민하는 단계까지 이르면 상황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미 출발선에서 한참을 걸어간 것이니까요.


더블린에서 있었던 행사에서도 그 점을 명확히 해주었습니다. 50년전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기근을 돕기 위해 일어섰던 가슴 뜨거운 청년들이, 이제는 국가와 이웃을 잃은 분쟁지역의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협력하겠다는 선언이었죠. 그것은 저나 다른 동료들이 어떤 출발선상에 있건 이젠 모두 목표점을 향해달라는 주문이 포함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모르죠. 오해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대화는 영어로 오갔고, 저는 한국인이니 저 편한대로 들었을겁니다. 그래도 그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조직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옵니다. 임팩트를 만들어야 하는 NGO 조직은 민주적 의사결정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담대한 리더십과 시대를 반영한 전략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제한된 리소스로 최적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숙련된 전문적 경험과 의사결정이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쓰고나니 괜찮게 지내는 것 같네요. 그래서 글을 쓰는가 봅니다. 늘 즐겁게 고민하는 형이지만, 혹여나 그을음이 있다면 제 편지가 좋은 장작이 되면 좋겠습니다. 더 긴 이야기는 추석 이후를 기약하시죠!





작가의 이전글 번역 활동의 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