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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Feb 15. 2023

반응이 문제였다.(2023.02.15)

무의식 중에 반응. 그것에 대한 나의 당혹감.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꼭 말이 아니라 눈빛, 태도 등이 다 묻어나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조심하게 된다. 그런데 요 근래에 참 힘든 일들이 무의식 중에 본인도 모르게 하는 반응에 내가 참 난감했다는 거다.


남편이랑 최근에 대판 싸운 얘기를 해보겠다. 

반찬을 신경 써달라. 메인 1개로 해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을 해달라. 아무리 반찬을 많이 해놓아도 아이들이 먹질 않지 않냐. 가만 보면 당신은 생각이 없다.(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았을걸)


나라고 가만있겠나. 아니 그동안 반찬을 안 한 건 뭐냐. 오빠 생일이 지난 지 1주일 되었고, 상다리 부러져라 차렸다. 정월대보름이라고 나물 5개나 해놨고, 어떻게든 소비를 해야 다른 음식을 하지 않냐. 그리고 상이나 차려주고, 밥숟가락이나 놔주든 뒷정리를 도와주든 뭘 돕고 요구를 해라. 난 이보다 더 못한다. 안 한다. 난 의무라고 생각하고 하는데 힘들다 솔직히.


이런 소통도 지긋지긋하다. 나는 남편의 한숨이나 눈빛에서 이미 마음이 읽혀서 대화를 하기도 전에 심기가 불편한 걸 알겠다는 게 짜증이 났다. 대화를 해보니 반찬 덕분이었는데, 그것도 결국 나에 대한 불만 같아서 듣기 거북했다. 남편은 생각보다 깐깐하다. 특히 아이들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나를 만나서 마냥 깐깐하게 살 수 없어, 하루하루 살겠지만 가만 보니 이 양반 성격이 좋은 말로는 세심이고, 나쁜 말로는 깐깐하다. 본인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첫째 아이의 친구 엄마를 만났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의 은밀한 사생활을 얘기한다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랑도 아니고, 불만도 아니고, 그냥 말 꺼냈는데, 이게 나의 사생활을 낱낱이 알게 되면 <그러니.. 그렇게 됐지>로 끝난다. 불편한 이 부분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날씨얘기, 드라마얘기만 할 수 없어 말이 길어진다. 하. 그런데 농담조의 말들이 가끔은 아프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얘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 단지 나는 요즘 낙이 드라마 보는 거라 그 엄마를 만났을 때 드라마를 밤늦도록 본 얘기를 했더니, <그러니 피곤하지>한다. 참 별 말 아닌데 아프다. 나약해진 건지. 애들 방학이라 집안일 산더미, 통독모임, 구직활동, 둘째 유치원 문제.. 나의 생활을 모르는 게 아닌데 저런 반응이 나오면 그냥 좀 헛헛하다.


아주 생뚱맞지만, 어제 본 <사랑의 이해>에서 수영의 눈빛이 생각났다.

수영과 상수, 상수는 생각이 많아 보인다.
그런 상수의 뒷모습을 보는 수영의 이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키스를 했다. 사랑을 확인했다. 그런데 남자는 방을 나가 담배를 피운다. 찰나의 행동과 반응에 수영도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우리의 인간관계가 이런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가끔은 언어 이상의 힘을 가진다.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냥 살아보니.. 마음으로 아는 것이 세월이 지날수록 많다.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인 반응 속에 모든 게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반응이 무슨 의미인지는 함부로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응 자체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을 단정 지어버리면, 반응을 헤프게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죄가 많다.


아마 수영은 상수의 반응에 관계의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대다수다. 왜 그렇게 반응에 연연하는가 봤더니 나는 두려웠고, 자신이 없었다. 애써 노력한 이 모든 관계들이 두려웠나 보다. 잃을까 봐. 아니면 내가 다칠까 봐 미리 회피하거나. 반응을 통해 계산이 빨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나 상대에게 절대 좋은 건 아니었다. 그저 그의 마음은 그의 마음대로 두되, 내 마음은 표현해야 했다.


<아이들 생각에 그런 거지? 나도 신경 쓰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니 섭섭하네~ 나도 안 그래도 신경 쓰는 부분인데 오빠 의견 참고할게>


<내 사생활은 당신이 제일 잘 아는데.. 나의 피곤 좀 모른척해줘~ 내 낙이라 그래~>


수영이 상수에게 저 눈빛으로 볼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날 혼자 두고 여기서 뭐해요..>라고 했어야 했다.


이 정도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왜냐하면 살아보니 관계 맺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 같은 거였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건 생각보다 상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과격한 표현이지만 소중한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이유야 많다. 나의 경우는 배려 때문이었다. 너무 솔직하게 표현했다가 상대가 다칠까 봐.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다칠까 봐 두려워서 표현을 못했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건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게 어쩌면 상대를 외롭고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다. 누구나 사람은 자발적인 쌍방의 관계를 원하니까. 반응. 반응을 원하니까. 그러니 나는 이 일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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