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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May 15. 2023

<딱궁이> 아무도 몰라 (1)

입하(立夏)호, 둘째 주





단편 소설 - 아무도 몰라 (1)

* 분할 연재됩니다. *






     열한 살이 되던 해에 단짝 채서와 다른 반이 되면서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아마 채서는 나보다 먼저 새로운 단짝을 만든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채서가 남자애들하고 무리 지어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애들이 어려워서 쉽게 친해져본 적이 없다. 채서 근처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하루는 우리 반 앞에서 채서네 무리들이 모여있었다. 멀어진 이후에는 암묵적으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집에 가려던 나를 붙잡은 건 채서였다. 같이 갈 곳이 있다며 데려간 곳은 월드 아파트 1301동 옥상이었다. 1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채서 무리들은 내가 모르는 얘기를 하며 웃기 바빴다. 옥상에 다다르자 무리들은 원을 만들었다. 그 무리에 포함되지 않는 내가 자연스럽게 원의 가운데로 밀려 들어왔다. 솜털인지 수염인지도 모르는 게 자라기 시작한 남자애들은 너도나도 가방에서 똑같은 종이 케이스를 꺼냈다. 채서는 제일 키가 큰 남자애한테서 고래가 그려진 종이 케이스를 뺏어 들고 말했다.

 

      너도 피워봐.

 

     찝찌름한 냄새가 입술 앞까지 다가왔다. 하얀 막대가 입을 열면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 같이 가까웠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채서는 통통하게 젖살이 오른 손으로 라이터 부싯돌을 돌렸다. 킬킬거리는 입이 작게 벌어지고 연기가 새어 나왔다.

 

      이거 우리 아빠 거 몰래 가져온 거다?

 

     채서는 무언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담배의 출처를 설명했다. 물어보지 않았지만 내게 다른 굴욕을 주고 싶은 듯했다. 원 안은 열한 살들의 매캐한 일탈로 채워졌다.

 

     그날 무리의 일탈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못했던 나는 완벽한 혼자가 되었다. 옥상으로 함께 가자던 제안은 채서가 보여줄 수 있던 마지막 우정이었다. 채서는 아는 친구들이 많아서 4학년 반 곳곳에 아무도 나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 다른 반 애들도 채서를 줄곧 무서워했기 때문에 나는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급식실로 가던 복도를 혼자 지나가기라도 하면 밥을 먹고 나오는 채서네 무리들이 나를 향해 박수를 쳤다.

 

      엄빠가 사고 쳐서 낳은 애다.

 

     까무잡잡한 남자애가 상기된 얼굴로 웃었다. 교실에 있던 아이들도 복도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창문으로 목을 쭉 빼고 구경했다. 채서는 다시 킬킬거렸다. 수치스러움에 손바닥 땀이 손가락 끝까지 흘렀다. 채서만 알고 있던 이야기를 저 남자애가 왜 알고 있는지 억울해할 틈이 없었다. 그저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가 된 것뿐이다. 호기심에 가든 찬 눈들을 지나쳐 급식실까지 걸어갈 당당함도 없었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눈알들에 밥맛이 떨어졌다. 나의 최선은 등을 돌리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일이었다.

 

     국영수와 예체능까지 담임선생님이 홀로 소화하는초등학교에서도 열한 살 정도의 고학년이 되면 꽤 영악한 사고를 시작한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듯 살았던 아이들은 단체생활을 통해 남 얘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깨닫게 된다. 재수 없게도 우리 학교의 첫 ‘남’은 내가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슬기로운 생활시간에 호구조사 비슷한 걸 했다. 분명 시작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나는 냉이된장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치킨, 피자와 사뭇 다른 대답 때문인지 나의 가족 구성원에 대해 물어봤다.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이모, 큰이모, 엄마와 같이 산다고 했다. 선생님은엄마 뒤에 자연스럽게 올 말이 들리지 않자 기다리는 듯 나를 쳐다봤다. 냉이된장국이 뭔지 모르는 친구들도 이어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의 눈동자는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든다. 부족함 없는 사랑으로 가득 차 빛나는 눈은 내 고개를 떨구게 한다. 그 빛나는 눈이 몇십 개가 되어 나에게 향했다. 내가 아빠 얘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몰랐다. 아빠의 존재를 잊고 살던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들과 엄마만 가족이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연세가 어떻게 되셔. 삼십 이 살이요. 어머, 젊은 어머니시네. 나와 눈 맞추던 선생님은 펼치지도 않은 교과서를 만졌다. 삼십 이살이면 쟤가 몇 년에 태어난 거야? 우리가 2000년생이니까…. 교실은 금세 평소처럼 시끄러워졌다. 괜히 몸을 숙여 할아버지가 일산 시장 장날 때 사주신 책가방을 뒤적거렸다. 당장이라도 이 얄미운 눈들을 피해 집으로 가고 싶었다. 구멍 뚫린 하얀색 보건화에 눈물이 떨어지고 땀이 찼다. 내 눈에는 사랑 대신 물만가득했다.

 

 

 

***

 

 

     월드 아파트에는 자유광장이라고 불리는 공터가 있다. 방학 숙제를 기억에서 지운 아이들은 자유광장에서 드문드문 다른 놀이들을 하고 있었다. 남아공 월드컵 자블라니 축구공이 굴러다니고 자전거와 킥보드를 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이름 모르는 식물들을 떼어와서 의미 없이 돌로 빻는 놀이도 했다. 채서와 함께 부서진 빨간 벽돌을 찾아 가루가 될때까지 부시며 놀았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또래 친구들을 사귀기 어려웠다. 나에게도 무리가 필요했다. 내게 어떤 말꼬리들이 따라다니는지, 채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친구가 필요했다. 나보다 체구가 작고 더 보송보송해 보이는 애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인라인이 유행할 때 나와 동생 무리들은 아파트 단지 야외 주차장에서 놀았다. 주차장은 아스팔트 바닥이라 위험했지만 방해하는 자전거와 킥보드가 없었다.평일 낮이라 주차되어 있는 차도 적어 우리가 쌩쌩 달리기에도 좋았다. 동생들 중에서는 솔이가 유독 인라인을 어려워했다. 자꾸만 제 발에 걸려서 넘어졌다. 그때 나는 그중 언니였다는 이유로 내 보호장비를 솔이에게 대신 씌워줬다. 어느 날은 앞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나와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솔이의 발이 얽혀 함께 넘어졌다. 솔이는 하필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엎어졌다. 몇 초 동안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깬 것은 솔이의 울음소리였다. 하얗다 못해투명한 이마에 시뻘건 혹이 부풀고 있었다. 그 혹은 핏줄이 보일 정도로 얇아 꼭 자두의 씨 같았다. 솔이의 인라인을 서둘러 벗기고 일으켰다. 솔이는 계속 우느라 혹이랑 얼굴색이 비슷해졌다.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나의 무릎에서도 곧은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 솔이와 다시 못 놀 것 같은 예감에 두렵기만 했다.

 

     네가 동생들이랑 같이 놀았으니 책임도 져야 하는 거야.

 

     솔이를 바래다주고 집에 들어왔더니 엄마가 내 무릎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구구절절 다 설명해 줬는데도 솔이의 혹이 마치 나 때문인 것처럼 말했다. 나랑 같이 발에 걸려 넘어진 것, 내가 인라인을 타고 놀자고 한 것만 강조했다. 정강이에 흐른 피를 닦아주며 엄마는 내게 처음 책임이라는 무게를 알려주었다. 이번 일이 어떤 식으로 나의 책임이 필요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들으면 내가 때려서 솔이의 이마에 혹을 낸 줄 알겠다.

 

     다음 날, 내가 질 수 있는 최대의 책임을 위해 705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어제 자기 전에 사과를 하고 이제부터는 안전한 놀이들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솔아. 나야.

 

     문이 반쯤 열리고 솔이네 아버지가 나왔다.

 

     이제 솔이는 너랑 못 노니까, 앞으로는 찾아오지 않아도 돼.

 

     솔이는 어떤 이야기를 했던 걸까. 아쿠아 밴드를 붙여놓은 무릎이 아팠다. 문 틈새로는 투니버스에서 하는 만화 소리와 솔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솔이 아버지는 문을 닫았다.

 

 

 

***

 

 

     엄마는 스물두 살일 때 뱃속에 나를 품은 몸으로 달리는 차 문을 열었다. 내게 다신 아빠를 보여주지 않으려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우리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아빠와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았다고 한다. 입술 선을 따라 갈색 립스틱을 바른 엄마의 옆에 어떤 남자가 함께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을 봤다. 나를 만들어준 사람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얼굴을 한 남자였다. 나는 아빠의 냄새도 모르고 어떤 표정을 주로 짓는지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아빠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괴리감과 어색함에 멀미가 나는 것도 같았다.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이 아빠라니. 사진을 들고거울의 내 얼굴과 천천히 비교해 봤다. 정말 닮았는지 살피기는커녕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면 볼수록자꾸 앞이 뿌옇게 되어 그만두었다.

 

     11월 나의 생일이 다가올 때 즈음 아빠가 찾아왔다.태어나서 기억하길 아빠를 처음 마주하는 날이었다. 엄마가 멋대로 약속을 정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갔다. 아빠는엄마보다 얼굴에 주름이 없었다. 실제로 보니 특히 하관이 나와 많이 비슷했다. 백화점 향수 냄새의 아빠는 내게 먹고 싶은 것도 물어보지 않고 한창 유행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자꾸 땀이 나는 손바닥을 바지에 벅벅 문댔다. 아빠를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봤다.

 

      이제 4학년이지? 친한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채서와 있었던 일들이 스쳐갔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얼굴 붉혀야 했던 일들의 주인공인 사람 앞에서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아빠는 너무 젊다. 왁스를잔뜩 바른 짧은 스포츠머리를 보니 우리 엄마의 수줍은 덧니가 생각났다. 아빠가 자꾸 내게 음식도 갖고 싶은 것도 전부 해주려고 한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잘해줘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이 같아서 불편했다. 아빠를 만났던 오늘 하루가 온통 부자연스러웠다. 내 11년 인생을 뒤져봐도 아빠는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빠 뽀뽀해 주고 가야지.

 

    집에 도착해서는 아빠가 뒷좌석에서 쇼핑백을 꺼내주었다. 뒤이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내게 볼을 내밀었다. 내게 뽀뽀는 엄마한테나 가끔 하던 일이었다. 안 하면 쇼핑백을 못 받을 것 같아서 대충 입술만 댔다가 떼고 차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어땠냐고 물어보는 엄마를 뒤로하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 쇼핑백을확인했다. 핑크색의 작은 디지털카메라였다. 카메라는갖고 싶지 않았지만 작고 예쁘게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선물이 만족스러워서 몇 분 전의 뽀뽀는 금방 잊어버렸다. 선물 받은 카메라로 우리 가족들의 독사진을 많이 찍어뒀다. 젊은 엄마 아빠 사진도 재차 찍어두었다. 엄마의 젊었을 때를 남기겠다 했지만 아빠의 모습도 남겨두고 싶었다. 아빠는 생일이 지나도 나를 계속 만나고 싶어 했다. 몇 번은 엄마를 통해 거절했다. 함께 있을 때가 너무 어색하고 힘들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내가 핸드폰이 생기고 나서는 직접 털어놓았다. 아빠를 만나면 불편하니까 더 이상 만나자고 하지 말아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 이후로는 아빠의 얼굴 대신 택배 상자만 보았다. 핑크색을 안 좋아하는데 선물은 핑크색 지갑, 핑크색 신발이었다.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방 책상에 하나씩 올려놨다. 내 기분이 공주님 방처럼 화사해질 동안 아빠의 향수 냄새는 점점 지워졌다.

 

 

 

***

 

 

 

     엄마는 등산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과 공부방을 운영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정화조 청소하러 다니느라 바빴다. 동생들에게도 체면이 구겨졌고, 나는 동네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그래서 방학마다 구파발로 도망 다녔다. 구파발에는 할머니의 엄마가 산다. 증조할머니를 나는 구파발 할머니라고 부른다. 이곳은 내 동네가 아니니까 새로운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 피아노 학원도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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