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선아 May 19. 2023

<딱궁이> 아무도 몰라 (完)

입하(立夏)호, 둘째 주





단편 소설 - 아무도 몰라 (完)





막내 할머니의 늦둥이 아들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오빠들 정도 돼 보였는데. 중학생이라고 했다. 어린 삼촌이 생긴 격이다.

 

     남은 방학 동안 함께 지내게 된 민호 삼촌은 내게 다정했다. 엄마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하러 나가있을 동안에는 주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방송을 같이 보며 놀았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처음에 소파에누워있던 삼촌이 바닥에 앉아있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점점 고개가 바닥 쪽으로 기울더니 결국 태연하게 내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시선은 티브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삼촌은 머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불쾌함에 닭살이 돋았다. 본능이 내게 얼른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컴퓨터를 하겠다며 벌떡 일어나 황급히 방에 들어갔다. 아바타 꾸미기를 정신없이 하다 보니 방금 느꼈던 기분이 무엇이었는지도까먹게 됐다. 거실이 오랜 시간 잠잠하길래 삼촌도 티브이를 보느라 잠에 들었나 생각했다. 책상 위에 아빠가 사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사진첩을 둘러보고 있었다.

 

      뭐해?

 

     삼촌은 방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와 내 옆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책상 의자에 앉아있는 내 왼쪽 엉덩이에 삼촌의 손이 느껴졌다. 확실히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과 나를 둘러싼 모든 공기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고 머리는 생각을 멈췄다. 어쩌면 아빠가 딸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 역시 무슨 느낌인지 내가 알 길이 없었다. 기분이 나쁘긴해도 친근감의 표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삼촌은 손을 빼고 내 등 뒤에 섰다. 머리카락에 무언가를 비비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 건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였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듣고 난 필사적으로 카메라 사진첩만 들여다보았다. 이미 몇 번이고 봤던 사진들이다. 환하게 웃는 나와 닮은 사람. 젊은 연인의사진에서 내 손이 멈췄다. 매미 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삼촌의 숨소리만 방 안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삼촌이 책상 뒤 침대에 눕는 소리가 났다. 나는 몸이 의자에 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든 누구든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여기 누워봐.

 

     삼촌의 짧은 머리카락에는 땀이 맺혔고, 여드름 피부는 더 벌개져 있었다. 숨은 얼마나 거칠게 내쉬는지 쓰고 있는 뿔테안경에 김이 서려있었다. 닫혀있는 방문을 열고 나가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나는 삼촌이 시키는 대로 했다. 새우잠 자듯 등을 돌려 침대 끝에 누웠다. 무엇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이곳이 명백한 범죄현장임은 틀림없었다. 좁은 방 안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매미였을까. 내 입술에 다른 입술이 닿아 다른 침으로 범벅됐다. 이를 꽉 물었다. 그만하라고 말하면 혀가 들어올 것 같았다. 입술을 절대 벌릴 수 없었다. 삼촌의 코에서 나오는 바람때문인지, 책상 위 카메라에 떠있는 엄마 아빠의 사진을 보고 있어서 그런지 나는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주먹 쥔 손에 땀이 흘렀다.

 

     중학생의 호기심을 가장한 만행은 방학 때마다 이어졌다. 민호 삼촌은 나를 장난감처럼 휘어잡은 것도 모자라 우리 집 황금 돼지 저금통에 젓가락을 넣어 지폐를 꺼내갔다. 할아버지가 매일 정화조 청소를 하고 벌어온 현금을 넣어두던 저금통이었다. 내 가족의 영역에 들어와 자기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니는 모습에 화가 나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는 틈만 나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며 울었다.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막내 할머니가 오면 제일 환하게 웃으시고, 엄마는 내가 자려고 할 때 집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당뇨 때문에 기운이없고, 젊은 이모들은 바빴다. 위축되어 있는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저금통 이야기만 해드렸다. 삼촌을 더 이상 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적격이었다. 그렇지만 입술이니 침이니 뭐니 말할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게 컸다. 사춘기 남자 사람을 강력하게 체벌해 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 우리 아빠였다면 그렇게 해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삼촌을 나의 모든 곳에서 없애줬을 지도 모른다.

 

 

 

***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들은 하나같이 에뛰드에서 산 틴트를 발랐다. 안 가지고 다니는 애가 없길래나도 샀다. 나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어 중학교는 여기 애들이랑 떨어지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뻤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졸업식 전에 이사를 했다. 이사한 후에는 차를 타고 등하교를 하게 됐다. 학교가 끝나고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컵볶이를 사서 학교 정문 쪽 주차장으로 갔다. 컵볶이는 채서가 참 좋아했었는데. 함께 자주 사 먹던 간식이었다. 나는 컵볶이의 파를 좋아하고 채서는 좋아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는 사이 멀리서 채서가 보였다. 채서는 채서네 아빠랑 손을 잡고 분식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채서는 컵볶이를 사달라고 보채듯 아빠를 잡아끌었다. 채서네 아빠는 주머니에서이 천 원을 꺼내며 컵볶이 두 개와 맞바꿨다. 파를 한 쪽에 다 옮겨 담는 듯한 행동을 지켜보다가 그만 채서와 눈이 마주쳤다. 괜히 도둑이 된 것 같아 먼저 눈을 피했다. 제발 이쪽으로 걸어오지 마라. 채서는 나 아니고도 파를 대신 먹어줄 사람이 있었다. 한참 남은 컵볶이를 뒤적거릴 때 즈음 엄마 차가 앞에 멈췄다. 서둘러뒷좌석 문을 열었다.

 

      졸업식 말이야. 아빠도 오라고 하는 건 어때?

 

     차가 빨간불에 멈추고 엄마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를 부를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는데 당황스러웠다.

 

     아니.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한 걸 애들이 이미 다 아는데아빠가 온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른 날도 아니고 졸업식인데. 조금 더 생각해 봐.

      절대 싫어. 절대 안 돼. 오지 말라고 해.

 

     그런 일은 막아야 한다. 마지막까지 애들이 수군댈 것을 생각하니 또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졸업식 날에는 우리 가족이 총출동했다. 졸업식은 한 명씩 체육관 단상에 올라가서 교장선생님께 졸업장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나머지 인원들은 반 별로 착석해서 기다리고, 그 주변은 수많은 학부모들과 가족들로 메워졌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사 온 꽃다발은주인공들에게 향하고, 아이들은 수줍게 웃으며 사진 찍혔다. 나도 핑크색 카메라를 갖고 왔는데 같이 사진 찍을 친구는 없어 멋쩍었다. 그래도 통 큰 할아버지 덕분에 화려하고 큰 꽃다발을 품에 안고 앉아있었다. 우리 반 1번이 호명되고, 모두가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친구들 앞에 서야 한다는 게 신경 쓰였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후련하기도 했다. 내 번호가 호명되고,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모들이 낸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환호성도 들렸다.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졸업장을 받았다. 뒤를 돌고 사람들을 향해서 다시 한번 인사를 하려는데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처럼 무리에 속하지 못한 사람. 검은 코트를 입은 사람이 체육관 문 앞에서 혼자 서 있었다. 단상에서내려온 나는 가족들에게 다가갔고, 그 사람도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아빠였다.

 

      엄마가 얘기했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긋불긋 해지는 내 얼굴을 보더니 엄마는 머쓱해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내가 어떤 소리를 들으며 학교를 다녔는지도 모르면서. 부르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왜. 창피함과 억울함에 당장이라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뜨거웠다. 슬프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아빠를 미워하는 건 내게 정말 쉬웠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모습이 꼭 나같아서 싫다. 없는 사람처럼 떨어져 지냈으면서 아빠라고 하는 것도 싫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저 애들과 아빠는, 우리 가족은 별로 다를 게 없다. 모두 내가 무슨 일을 겪으며 지냈는지 모른다. 몰래 울던 나를 들춰봐주지 않았다. 당황해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싫고, 어쩔 줄 몰라하는 이모들도 싫고,나와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치 보는 엄마도 싫고 다 싫다. 왜 아무도 내 입장은 생각해 보지 않은 거야.

 

       내가 오지 말라고 얘기했잖아!

 

     소리를 치고 무작정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5층에서 1층까지 쉬지 않고 도망쳤다. 아마 애들도 다 봤겠지. 다 들었겠지. 아빠 없는 애의 아빠가 등장했다니. 또 웅성거릴게 뻔한 그 호기심 어린 눈동자들이 떠올라 토할 것 같았다. 상처받아 침울해진 표정을 짓고 있을 아빠의 얼굴도 떠올랐다. 자꾸 얼굴들이 떠다니며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른들도, 친구들도 이상하다. 조용히 졸업식만 마치고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아빠가 와서 다 망했다. 다 망쳤어.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나는 외로울 때마다 아빠를 습관처럼 미워했다.






이전 23화 <딱궁이 > 아무도 몰라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