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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May 17. 2023

<딱궁이 > 아무도 몰라 (2)

입하(立夏)호, 둘째 주






단편 소설 - 아무도 몰라 (2)

* 분할 연재 됩니다. *






    은평 경찰서 맞은편에 있는 약국 뒤에는 언덕배기의 마을이 있다. 빼곡한 주택 중 녹색 철문 달린 2층 주택이 구파발 할머니 댁이다. 철문은 잘 잠가지는지 아닌지도 알기 어려웠고, 작은 바람에도 쉽게 쇳소리가 났다. 2층으로 올라가려면 날쌔고 가벼운 내게도 너무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열린 현관문 너머 담배를태우시는 구파발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할머니 저 왔어요.

 

    이렇게 불러도 한참 뒤에 나를 쳐다보신다. 명절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자주 놀러 갔었는데도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몇 초간 나를 가만히 보고 계셔야 한다. 문지방을 밟고 있는 나를 드디어 알아보시고는 밝게 웃어주셨다. 봉투 소리가 날 것 같은 피부와 대비되는 정갈한 틀니가 빛났다.

 

      똥깡아지가 왔네!

 

    누군가의 손주들이라면 한 번씩 들어봤을 정도로 흔한 애칭이다. 구파발 할머니는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했다. 주변에 밭도 없는데 밭일이라도 하시는 건지 갈수록 피부가 까매지셨다. 구파발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랑 똑같은 담배를 태우신다. 찌개 끓이는 용도의 뚝배기를 재떨이로 쓰신다. 이 집에 모녀가 함께 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좁은 방이 온통 에쎄 연기로 가득 찬다. 어린 내가 있더라도 예외는 없다. 누렇게 때가 탄 벽에 괴상한 웃음의 달마도 액자까지 희미해 보일 정도다. 달마도 액자는 메롱 할아버지가 제일 아낀다. 구파발 할머니의 아들인 메롱 할아버지는 택시 기사님이다. 바삭하고 따듯할 때 내가 먼저 먹은 노릇한 고등어냄새가 없어질 때 즈음 집에 오신다. 흰머리가 섞여 회색같이 보이는 짧은 머리를 하고서 나에게 인사 대신 메롱 하신다.

 

     구파발 할머니는 온몸에 고등어 냄새를 담고 피아노 학원까지 데리러 오셨다. 나는 생선 뼈 같은 손을 잡고 학원을 나왔다. 학원 바로 밑 문방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맨날 가도 맨날 볼 게 있어서 문방구는 신기하다. 아마 다른 동네라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구파발할머니는 불량식품의 맛에 빠져있던 내게 오백 원을 쥐어주시고 옆 생선가게로 가셨다. 내가 생선가게로 들어가면 멈추는 대화를 나누러 간 것이다. 왜 멈추는지 알 것 같았지만 가게 아주머니가 요구르트를 주셔서 좋았다. 비린내가 나는 요구르트였다.

 

     생선가게를 지나 빵집을 꼭 들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꼭 감나무를 지나가야 한다. 감나무가 딸린 집에는 솔이만 한 여자애가 산다. 다리를 못 쓰는 건가 착각할 정도로 그 애 할아버지가 매번 업고 다녔다. 정말매일 업고 다녔다. 그게 조금 웃겼지만 내심 부럽기도 했다. 서로 이름조차 공유하지 않고 여자애 집에서 같이 놀았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원목 가구가 많은 그 집 거실에서는 담배 냄새 대신 맛있는 반찬 냄새가 났다.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주방 도구들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여유가 지겨워질 때 즈음 구파발 할머니가 데리러 오기로 한 시간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돌아가야 하는 시간을 조금 놓치기라도 하면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여자애의 아빠를 보게 된다. 그때는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날이다. 아빠를 부르며 안기는 여자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아빠를 생각했다. 어떤 장면도 떠오르지 않았다.

 

      방학이 끝날 무렵 월드 아파트로 돌아와 다 못한 방학 숙제를 하며 지냈다. 엄마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집에 있었다. 704호 안이 기분 좋게 소란스러웠다. 할머니표 콩비지찌개를 기다리던 중에, 요란한 트로트 벨 소리가 몇 초 이어졌다. 전화 내용이 들리지 않아 궁금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모두가 조용했다. 할머니는 전화하는 내내 별 대답을 하지 않고 응. 그래. 알았다. 만 반복하셨다.

 

      할아배. 할아배 양복이랑 구두 내가 잘 뒀었지?

      엄마. 왜? 누군데?

     큰삼촌. 택시 문 옆에 쓰러져 있었대. 올 시간이 됐는데도 안 오니까. 노인네가 봤다더라.

 

      할머니는 물기 젖은 손을 털고 앞치마를 벗었다.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택시라는 단어에 우리 가족은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메롱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메롱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우리 지금 장례식장에 가야 해. 검은 옷 찾아서 입기 전에 엄마한테 먼저 보여줘.

 

     엄마는 내게 장례식장에 가기 전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을 말해주었다. 처음 접하는 죽음 앞에서 눈물 대신 이상한 떨림이 느껴졌다. 엄마는 이모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검은 옷을 찾았지만 아무리 뒤져도 검은색 양말이 나오지 않아 불안했다.

 

     쌍용 무쏘 자동차는 비 오는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노래도 틀 수 없는 조용한 차 안에 있자니 그제야 눈물이 삐질 흘렀다. 어두운 길을 밝히려 켜둔 고속도로의 불빛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메롱 하시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방 문 앞 모니터에 내가 며칠 전에도 본 얼굴이 떠 있었다. 모니터를 지나 들어가니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가득한 검은 정장들 사이 중 한 사람만 화려했다.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구파발 할머니였다. 집에서 늘 입고 계시던 꽃무늬 조끼와 몸빼 바지를 그대로 입고 계셨다. 검은 옷을 챙겨 입을 수 있는 정신이 없으셨을 것이다. 구파발 할머니는 허공을 보다가 하얀 꽃에 둘러싸인 달마도 액자를 쳐다보셨다. 그건 달마도가 아니라 달마도를 닮은 메롱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구파발 할머니를 보자마자 죽음이라는 것에 실감했다. 틀니도 못 끼고 나오셔서 안으로 말려 들어간 입술은 쉽게 벌어지지 않았다. 구파발 할머니는 울고 계시지 않았다.

 

      나쁜 놈이. 지 애미보다 먼저 가면 나는.

 

     우리 가족과 명절 때만 보던 가족들도 차례대로 무릎을 꿇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왠지 그 모습이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잘못했던 게 생각나서 구파발 할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무릎 꿇었다. 내가 좋아하던 만화와 6시 내 고향은 항상 시간이 겹쳤다. 티브이 옆 탁상시계를 일부러 돌려놓고 아직 할 시간이 안됐다는 말을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이곳에서 이런 부끄러운 행동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함께 울고 싶었을 뿐이다. 모두 슬픔을 쏟아버리고 메롱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무용담처럼 오갈 때에는 식사가 시작됐다. 장례식장 분위기에 압도된 한낱 어린아이일 뿐인 나는 그냥 입맛이 없었다. 구파발 할머니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계셨다. 낯선 공간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멀리서 익숙한 머리 스타일을 한 사람과 막내 할머니가 보였다. 그날 제일 늦게 도착한 가족이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내가 죽을 때까지 잊어버릴 수 없는 숨소리가 들렸다. 고개가 굳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있나 없나 확인한 사람이었다. 교복을 입은 남자는 나를 보고 작게 손을 흔들었다.

 

 

 

 

 

***


 

 

     우리 할머니의 동생인 막내 할머니는 성격이 유별나서 우리 엄마랑 이모들이 제일 싫어했다. 할머니랑 엄마가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괜히 월드 아파트까지찾아와 화분을 집어던지는 사람이었다. 막내 할머니는한 쪽 다리를 절었다. 대신 목소리가 정말 컸다. 너희들이 뭔데 우리 언니를 힘들게 하냐는 둥, 다 죽여버리겠다는 둥 엄마와 이모들을 협박하고 가는 일이 잦았다. 막내 할머니는 돈 잘 버는 우리 할아버지를 정말 좋아했다. 형부, 형부 하면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꼭술집 아줌마 같아서 보기 부끄러웠다. 왜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저렇게 스킨십을 하지. 우리 할머니는 조금도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능구렁이 같은 막내 할머니에게 용돈이라며 자주 돈을 줬다. 그때는 형부 했던 게 오빠가 되기도 했다.

 

     민호가 방학이라. 당분간 형부네에서 좀 봐주라. 나는 요즘 남의 애 봐주느라 아주 밑 빠져.

 

    장수 막걸리를 몇 병이나 해치운 막내 할머니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저렇게 억척스러운 사람이 베이비시터로 일을 하고 있다니. 신기하기도 했지만 막내 할머니가 가끔 해주시던 달고나가 생각났다. 술만 조금 줄이신다면 저렇게 찢어지는 웃음소리도 나아질 수 있을 텐데. 할아버지도 잔뜩 얼큰해진 얼굴을 하며 민호를 여기서 지내게 하라고 했다. 가족끼리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말도 덧붙이며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키셨다. 우리 할머니는 주방에서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민호는 내가 들어본 이름이 아닌데. 새로운 가족을 만날 생각에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막내 할머니는 며칠 지나지 않아 어떤 남자 사람을 데리고 왔다. 바리깡으로 최대한 짧게 민 듯한 머리를 한 남자 사람은 나보다나이가 많아 보였고, 파란색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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