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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May 24. 2023

<딱궁이> 한 번쯤은

입하(立夏)호, 셋째 주




에세이 - 한 번쯤은


 

 

   내 왼쪽 손목에는 곰돌이 팔찌가 있다. 팔찌는 민의 것이다. 민의 어머니가 민이 어렸을 때 선물해 주신 거라고 했다. 나는 이 팔찌를 민과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받았다. 민은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걸 주는 거라며 쑥스러워 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빼지 않았다. 민과 함께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탓이다. 그 긴 시간 중에 딱 한 번 팔찌를 뺀 적이 있다. 민의 입대 날이었다. 엄마가 보면 서운해할 거라던 민의 사려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민은 호국요람 앞에서 인사했다. 어머님은 소리 내어 우셨다. 아버님은 자꾸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이셨다. 나 역시 민을 자신 있게 사랑했지만 왠지 개미만큼 작아보였다. 민을 낳아주신분들 앞에서 우는 건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짜 나를 지켜주던 팔찌를 빼앗기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민의 마지막 뒷모습이라고 생각하니눈물을 참기가 어려워졌다. 민의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몰래 곰돌이 팔찌를 다시 찼다.

 

   일일이 세어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는 각자 아르바이트가 있던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날을 함께 했다. 학교도 같이 다니고, 수업도 함께 들었다. 민은 나의 애인이지만 친한 친구 같기도 했다. 평생 부모님한테 대든 적 없던 나는 부모님과 얼굴 붉히는 일이 잦아졌다.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워 스스로 멀어지기도 했다. 내가 효율적으로 빠르게 행복할 수 있는 지름길을 선택한 것이다. 나를 민보다 더 오랜 시간지켜봐 주던 사람들을 모른 척하며 민을 사랑했다. 민의 입대 직후, 떠나보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민이 상병을 달고 나서야 내 모습이 보였다. 피부처럼 붙어있던 곰돌이 팔찌가 낯설게 느껴졌다.

 

   모든 걸 혼자 하는 게 익숙해질만하면 민이 휴가를 나왔다. 언제 옆에 없었냐는 듯 나를 몹시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그러다 정해진 날이 오면 미리 세탁해 둔 군복을 입고 사라진다. 나는 되감기 한 듯 민의 휴가 전으로 돌아간다. 진심을 보내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인스턴트 메시지에 의존한다. 침묵이 점점 길어지는 전화에 매달린다. 비슷한 머리 스타일과 비슷한 향기에 아닐 줄 알면서도 놀란다. 술을 마시고 혼자 걷는 길이너무 어두워서 운다. 내게 민은 있는데 없고, 없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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