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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 Kim Nov 12. 2018

내가 만든 압박감에 대하여

기대치 낮추기와 내려놓기의 고단함.

 

11월의 압박감에 납작 눌린 사람을 아시나요

지구의 공전 주기를 따라 올해도 11월이 왔다. 11월이라고 하면 1년 365일 중 거의 끝에 있는 30일 남짓의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결전의 달. 수험생들은 수능을 치르고 습작생들은 신춘문예에 낼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들에게 11월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이자 가끔 고통스러운 날들이다. 


11월이 되면서 글에만 몰입할 수 있게 1인용 '프라이빗' 독서실을 끊었다. 그런데 독서실에서 작업한 지 일주일쯤 지나가 소설이 써지지 않았다. 소설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소설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음을 가볍게 먹으려고 해도 지금 상태에서는 모든 게 고장 난 것 같았다. 독서실 문 여는 소리에 놀라고,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나 볼펜 떨어뜨리는 소리에 심장마비 걸리 듯 소스라치기도 한다. 독서실 칸막이 문은 안에서 걸리지 않는데, 자꾸만 누군가 내 등 뒤의 문을 열고 나를 해칠 것 같다는 불안함에 시달렸다. 새로 쓰는 단편소설 주인공이 신경과민을 겪고 있는데, 결국엔 내가 신경쇠약에 걸렸다. 그냥 미칠 것만 같고, 속에서 화가 올라오며 가끔 밖으로 뛰쳐나가서 어두운 차도 위에서 소리 지르고 싶다.


 


낙엽처럼 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나.



기대치 낮추기가 이렇게나 어려워? - 어려워, 어려워.


내가 소설을 이어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까지 쓴 두 장이 내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불만족스러운 실력 때문에 온 몸에 열이 오르고 속이 부글거릴 정도로 분통이 터진다. 내 실력을 부정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 이 모든 스트레스는 잘하고 싶다는 압박감에서 나온다. 내가 견딜 만큼만 압박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손 쓸 수가 없다. 


이러다가 소설 완성하기도 전에 인생 완료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번 주는 소설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일을 했다. 일주일 동안 친구들을 만나고 조카 어린이집 등 하원을 했더니 몸이 힘들어져서 정신을 바싹 차렸다. 아,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몸으로 겨우 독서실로 돌아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잘 써지네? 그렇게 두 장을 쓰고 기쁘게 집에 돌아간 것이 고작 그저께 새벽. 또다시 어제부터 소설을 이어 쓰지 못하고 있다. 진짜, 내 기분 맞춰주느라 내가 고생이 많다. 



의도하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일들


사실 살면서 많은 일들은 의도하지 않았을 때 이루어졌다. 별다른 기대 없이 한 일들이 더 성취가 빨리 왔다. 아마 내 적성에 잘 맞았을 테고, 내가 몰랐을 뿐이지 이미 능력을 갖춘 상태였을 것이다. 정말 즐긴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전혀 즐길 수 없는 상황이고,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며 기대감만 높다. 기대감을 버리고, 그냥 완성을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지만 내 마음이 너무 욕심을 낸다. 문제는 이 욕심을 깨트리기가 쉽지 않다. 글에 집중해서 완성해야 하는 게 중요한데, 자꾸 잘 쓰고만 싶어 진다. 


이러면 안 된다고, 버려야 한다고, 다 내려놔야 한다고 계속해서 외치지만 - 속으로 딴생각한다. 아니, 잘 돼야 해. 무조건 잘 돼야 해, 잘 쓰고 싶다고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야-하고. 이런 생각에 내가 눌려버려서, 나는 형체도 없이 납작해졌다. 정말 온몸이 다 아프고 종종 눈물이 날 것 같다. 알면서도 못 놓는 내가 힘들다. 


며칠 더 쉬어야겠다. 내가 만든 압박감을 스스로 놓지 않는 이상, 나는 더 나아갈 수 없다. 


한적한 마음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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