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 주
퇴사를 통보하기 전까지는 무수히 고민한 순간들과 미루고 뭉갠 몇 개월동안의 심한 감정소모가 있었다. 오늘 말하기 전까지, 괜스레 긴장했지만 터무니없이 담백하고 덤덤하게 할 말만 나누고 끝이 났다. 물론 그 외에도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아마도 대부분 감정적인 것들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놓기 힘들었던 것은 내게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에 내가 포기하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일종의 과도한 책임감이기도 하다. 회사를 사랑한 만큼이나 사람들도 사랑했지만 나는 딱 그만큼 미워했고 절망했다.
회사를 가장 신랄하게 욕하고 다니는 사람은 절대 퇴사하지 않는다더란 말이 생각난다. 욕을 하는 곳에 계속 소속되어 있는 일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 내게는 나답지 않은 일 같다. 안타깝고 개선되길 바라고 구성원으로서 뭔가 해보고자 하지만, 절이 싫으면 떠나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 일이야 여느 직장인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일 같다.
내가 또다시 여러 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매일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는 날들을 보낼지 모른다. 좌절하고 실망할 날들도 있을 것이다. 별 일이 없어서 별로인 날들을 견뎌내는 게 하루 일과인 날들을 또 겪어 내야 하며, 거기라도 붙어있을걸 하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의 선택에 변함이 없는가? 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결정을 내리고 얼마간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사실 여유라 할 것은 없다. 당장의 이직을 목표로 나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곳을 찾는 건 한시가 급하다. 그건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나의 자존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쉬움이 그득한 눈빛들에는 차마 잡지 못하는 마음이 서려있다. 확고해진 결정 앞에서 건네는 응원에는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닐 것이란 존중이 담겨있다. 붙잡지 않는 태도에 구태여 ‘내가 그간 일을 잘 못했나’할 필요는 없었다. 대체불가하다고 아쉬워해주는 이에게 자연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열일하는 이에서 떠날 사람으로 입장이 바뀌고부터는 내 말과 행동에도 조심스러워졌고 여기에서 쌓은 모든 것들에 나는 미련과 아쉬움도 다 털어내기 시작했다. 퇴사한다는 소식 들었어요~라는 말에 군더더기 없이 답했다.
예~ 퇴사합니다~!
나는 이렇게 용기를 낸 한편, 내 고백을 들을 세 명 중 한 명의 친구는 강연을 통해 멋지게 용기를 내주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냐고 묻기도 했다. 강연 중에 나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자 객석에서 탄식이 나왔다. 그걸 듣는 나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누군가는 일생에 세 명의 사람에게만 털어놓을 정도로 자신만의 고통이었는데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고백할 수 있었던 고통이라는 것에 대한 차이를 느꼈을 뿐이다.
그 고통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와 응원이 커지기 때문에 우리가 용기를 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남의 환호와 박수, 응원을 받기 위해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워야 할 필요는 없으며 용기를 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응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의 이야기, 내가 어떻게 내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지는 너무나 궁금한 일이다. 나라는 주인공이 시련을 만나 극복하고 끝내 이뤄내는 과정은 듣는 이에게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다. 주인공으로서의 나는 고통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인생에서 느낄 행복과 환희의 주체이기도 하다. 오롯이 내가 겪는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전시키며 승화하는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끝나는 동화의 해피엔딩처럼 모두의 인생이 그렇게 쓰이길 기대하는 것 또한 듣는 이들의 대부분의 인생도 그러하길 바라서가 아닐까.
악몽이라 할 것 없지만 숱한 꿈들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보통 18살 언저리의 고등학생으로 출연한다. 고등학교 때의 기억이 많은 편도 아니고 특별하지도 않은데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던 것인지 몸에 딱 맞는 교복을 입고 나타나는 나.
족히 20년을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어왔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능히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으면서도 꿈속에서 나는 어느새 시험을 보거나 뭔가에 쫓겨 달아나고 싶어 했다. 가여운 내 무의식. 언제까지 그렇게 18세에 머물러 있을까 하며 잠에서 깨는 38세는 혼자서 멀리 운전을 해서 떠날 수도 있고 시험을 보기보다 감독관을 하기에 더 충분해져 버렸는데.
어젯밤에는 폭우소리에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대학생활이 펼쳐져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캠퍼스를 다니면서 어딘가 회사에서 본듯한 얼굴이 학교동기로 나오는 꿈을. 나는 적어도 18세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매우 기쁘다. 교복을 벗고 대학생이 된 무의식 속의 내가 조금은 자랐다는 것에 기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