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 주
바야흐로 휴가시즌이긴 한 가 보다. 주변은 어디로든 떠나는 분위기고, 예년보다 더 더워진 것 같은 느낌에 에어컨으로 숨 쉬는 기분. 피곤에 쩌든 한 주의 절반은 무더운 날씨 탓, 또다시 찾아온 편두통은 땡볕 탓 혹은 에어컨을 너무 틀어댄 탓이 아닐까 생각하는 아침이다. 결코 운동하지 못했던 내 탓은 하지 않기로 한 이번 주.
일에 파묻혀 지내다가 주말이 되고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하고 먹고 자는 데에만 시간을 보낸다. 녹초가 된 몸은 뜨거운 땡볕아래 좀처럼 나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시원한 계곡이든 바닷물에든 풍덩 빠지고 싶어도 그럴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집안 곳곳에는 근심이 묻어있고 해야 할 일들로 그득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가운데 내가 편히 쉴 리가 없고 밤새 꾼 꿈에서도 편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극단적인 내 친구는 빨리 죽어야 편할 텐데 하고 섬뜩한 소리를 한다.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고 동해에선 열대바다에서 볼법한 청새치가 잡혔다는 뉴스를 보내며 지구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매머드야 기다려 소리를 한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심각한 뉴스들이 즐비한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기 일쑤인 것 같다. 나도 너도 암울한 미래에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찾는 것에 초점을 둬 보기도 한다. 불안과 우울이 찾아오려 할 때마다 나를 지켜내려는 노력은 대개 생각의 전환이고, 정신승리와는 다른 결이다.
그래도 삶이... 쉽지 않다. 살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좋아서라고 말하게 된다.
손님을 만나고 열심히 만든 무언가를 내어놓는 데에 기쁘다. 그 피드백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하나의 접시, 한 잔의 음료에 담긴 내 자부심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아도 고되고 힘겨운 일을, 더 나아가 가르치고 능력을 키워내는 일. 그 일을 견디는 건 단순히 신앙의 힘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 때문이라고 하기도 부족하다. 자아실현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건 이타적인 목적에 있다. 멋있고 맛있게 만들어내는 것이 이태리레스토랑에서 하던 일이었다. 지금은 거기다 한 사람의 삶에서 직장을 가지고 노동을 할 수 있게 돕는 것, 완벽하진 않아도 응당 1인분의 삶을 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내 일이다.
내 삶이 망가지더라도 이 일을 하는 게 괜찮은 사람은 없다. 내 육체와 정신이 소진되어 가면서 정작 나는 행복하지 못한데 타인을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래서 적당하기가 어렵다.
애당초 내 적성이 서비스업에 있지 않았다면 좋았겠다는 한탄이야 가끔 한다.
적게 벌어도 웃을 수 있는 소확행형 인간을 꿈꾼 적도 없거니와 내 형편이 당장 누군가를 뒷바라지하고 살아야 할 만큼 어려운 적도 없었다. 그냥 나만 행복하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양심상 허락지 않는 것뿐. 내가 고생한 만큼 저 사람도 고생하겠지, 내가 어려운 마음이었던 만큼 저 사람도 고민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따뜻함 정도는 가지고 산다는 게 내 인생이다.
그래서 뭘 남기는가. 나야 모르지. 사라져 봐야 알지 않을까.
묻혀있는 매머드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