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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20. 2022

한라산 윗세오름에 오르다

영실기암, 병풍바위, 노루샘, 윗세오름

"아빠, 나 산에서 컵라면 먹고 싶어요."

지난주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면서 7살 아들이 내게 한 말이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등산객들이 컵라면 먹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제주살이 준비를 하면서 윗세오름 대피소에 올라서 컵라면을 먹는 것이 하나의 미션이기는 했다. 나도 대학시절과 회사를 다니면서 영실코스를 두 번 정도 오른 경험이 있는데, 항상 여름철이었기에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았었다. 두 번 모두 비와 안개로 인해서 영실기암도 병풍바위도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꼭 그 풍경을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 하나로 영실 산행을 준비했다. 아들과 나의 소원 성취를 위해서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한라산에 오르기로 계획했다. 오늘 코스영실 탐방로를 통해서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고, 편도 3.7km로 왕복 7.4km 거리였다. 하루 종일 걸리는 백록담 산행과는 다르게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한 등산로였기에 우리는 오전 늦게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라산 날씨를 확인해 보니 오늘은 종일 흐린 날씨였다. 차를 타고 어리목 입구를 지나서 영실로 향하는 길에는 빗방울까지 보였다. 혹시 비가 오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실 입구로 향하는데,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환한 햇살이 나타났다. 파란 하늘도 보였다. 역시 한라산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이 너무나 변덕스러웠다. 영실 주차장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50분. 탐방센터를 지난 시각은 11시였다. 토요일 오전이었기에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고, 다행히 우리는 몇 대 남지 않는 주차 공간을 찾아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 가족사진 한 장을 남기고, 이번에도 다치지 말고 무사히 내려오자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와 아내, 7살 아들은 힘차게 영실 입구를 통과했다.

영실 탐방로 입구와 구름낀 하늘

다행히 하늘은 비가 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파란 하늘 사이로 간혹 구름이 지나가며 살짝 물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얼굴에 수분 화장품을 살짝 뿌려주는 느낌이랄까. 맑은 물이 흐르는 영실 계곡을 벗 삼아서 10분을 걸었다. 작은 나무다리 2개를 지나니 오른편으로 능선으로 올라가는 수직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계단을 약 1.5km 정도를 오르는 구간이 오늘의 제일 힘든 코스였다. 보통 1시간 정도 걸리는 영실 탐방로의 제일 힘든 코스였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오르다가 쉬다를 반복하며 고도를 올려갔다. 어느 정도 지나니 나무 숲 속을 빠져나와서 능선 위의 등산 길에 오를 수 있었다. 구름이 지나가면서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구름 사이로 반대편의 영실 기암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구름에 가려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가 잠시 후 바라보면 구름이 지나가고 보이기를 반복했다. 정오가 되었을 때, 바람이 약해지면서 영실기암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라산 영실기암

자연이 만든 다양한 모양의 기이한 암석들이 수백 개가 펼쳐졌다. 여기에는 전설이 있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에게 50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설문대할망이 죽은 후에 그 곁을 지키기 위해 한라산에 올라가 돌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실기암을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이라고 불린다.

한라산 병풍바위

등산로 앞쪽에는 거대한 병풍 모양의 암석이 보였다. 영실의 병풍바위였다. 실제로 거대한 병풍처럼 영실 계곡 위에서 등산객들이 오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병풍바위를 향해 가파른 계단 길을 계속 걸었다. 내려오는 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계곡 오르고 올랐다. 오르다 보니 병풍바위의 위쪽으로 걷고 있었다. 아래를 바라보니 깎아지는 절벽이었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아찔한 풍경이었다. 뒤를 바라보니 남쪽으로는 서귀포 중문과 제주 남해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쪽 하늘과 서쪽 풍경, 등선 등산로

서쪽으로는 십여 개의 한라산 오름들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풍경을 3번째 등산만에 볼 수 있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지금까지 항상 안개와 비 때문에 보지 못했던 영실기암과 병풍 바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의미가 있었다. 뭔가 해낸 것 같았다. 병풍 바위를 지나서 조금을 더 걸으니 서서히 등산로의 경사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약간의 돌길을 지나서 한라산 고산 지대에서 보았던 고목 군락지가 나타났다. 이제 정상부에 거의 올라온 듯했다. 데크로 잘 다져진 길을 지나갔다. 갑자기 안개가 나타난 것으로 봐서 아마도 지금 우리는 구름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풍경이 하늘나라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병풍바위 위를 지나서 윗세오름으로 가는 등산로

조금을 더 걸으니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2.2km가 남았다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이때부터는 거의 평지가 같은 등산로였다. 이제 힘든 코스가 다 끝난다고 생각하니 살짝 긴장이 풀어졌다. 이번 산행에서도 힘든 고비를 넘긴 것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힘든 길을 끝내니 앞에 윗세족은오름이 나타났고 저 멀리 구름에 싸인 백록담 분화구도 보였다. 역시 백록담 분화구 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구름에 가려진 백록담 분화구
노루샘 가는길

윗세족은오름을 지나는 등산로는 평원처럼 넓고 잔잔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조금을 더 걸으니 노루샘이라는 샘터가 나타났다. 한라산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잠시 이곳에 들려서 목을 채웠다. 물맛은 마치 삼다수처럼 청량하고 상쾌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으니 오늘의 목적지인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1시 15분!  다행히 7살 아이를 데리고 2시간 15분 만에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윗세오름대피소

그 순간 대피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큰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혹시 연예인이 왔나 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백록담 분화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을 바라보니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백록담 남벽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백록담 남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도 열심히 사진기 셔터를 놀렀다.

구름이 거치고 나타난 백록담 분화구

사진 촬영을 마친 후, 1시 30분에 우리가 꿈꾸던 컵라면 점심을 준비했다. 보온병에 담아온 물을 3개의 컵라면에 넣어서 3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뜨끈한 국물과 함께 컵라면 면을 젓가락으로 후루룩 먹었다. 한라산 백록담 남벽을 바라보며 먹는 컵라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정말 끝내줬다. 특히 짜장라면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다.

윗세오름에서 컵라면

컵라면함께 주먹밥과 귤 몇 개로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잊지 못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윗세오름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 몇 장을 남기고 2시쯤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은 너무나 수월했다. 그리고 구름이 없었기에 풍경도 올라올 때보다는 좋았다. 특히 뒤로 돌아서 백록담 쪽을 바라볼 때마다 "와"라는 감탄사가 끊이질 않았다. 교과서나 사진 작품에서 보던 그 풍경을 실제 눈으로 보고 있었기에 너무나 황홀했다. 우리 가족은 내려가면서 수없이 뒤돌아서서 백록담 분화구를 지켜봤다. 그리고 열심히 사진도 찍었다. 아이도 그 풍경을 잊기 아쉬웠던지 마지막에 "안녕! 백록담"이라며 인사까지 하고 마지막까지 그 풍경을 놓치기 아쉬워 했다.

하산길과 윗세족은오름, 백록담 분화구 남벽
안녕! 한라산 백록담

내려오는 길 저 멀리 서귀포 해안과 바다, 그리고 예쁜 오름 밭이 펼쳐졌다.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바람까지 상쾌했다. 아이도 기분이 좋았는지 영실 계곡을 향해 계속 "야호"를 외쳤다. 저 멀리에서는 메아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내려오는 내내 들려오는 아이의 동요 소리에 우리 부부의 기분도 함께 좋아졌다. 1시간 15분 정도 내려오니 영실 계곡 물소리가 들렸고, 정확히 3시 30분에 우리는 출발했던 영실 탐방로로 다시 돌아올 수 있있다.

영실 하산길 풍경

다행히 우리 가족의 오늘 미션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등산하기 좋은 날씨를 만들어주신 하늘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3번의 도전만에 영실기암과 병풍바위를 볼 수 있었고, 비를 맞지 않고 컵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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