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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21. 2022

비 오는 날 마라톤 구경하기

제주감귤마라톤대회, 세화오일장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제주도에 와서 온종일 비가 내린 날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제 윗세오름 산행의 피로도 남았고, 날씨도 좋지 않았기에 오늘 하루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침식사를 하고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했다. 근데 경찰차를 비롯한 몇 대의 행사  차량이 지나가면서 도로 1개 차선이 통제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문뜩 며칠 전 보았던 도로 통제 안내판이 생각났다. 오늘 제주에서 열리는 제주국제감귤마라톤 대회를 위해 9시 30분부터 14시 30분까지 도로 통제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와서 행사가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열리는 듯했다. 대회 홈페이지 들어가서 우리 숙소의 위치를 확인해 보니 8km 구간에 우리 숙소가 위치해 있었다. 시간을 보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원래 계획대로 행사가 진행된다면 잠시 후에 풀코스 선두 주자들이 지나갈 듯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거실 앞에 크로 나가서 도로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경찰차와 기록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따라서 젖은 길을 가르며 마라톤 선두주자들이 힘차게 달려오고 있었다.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선두팀은 우리 숙소를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몇몇 선수들이 줄지어서 지나갔다. 그리고 10여분이 지나니 수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하프 코스를 뛰는 일반 동호회인들인 듯했다. 한 명, 두 명, 서너 명이 줄을 지어서 빗 속에서 달리고 있었다.

제주 국제 감귤마라톤 참가자들

그 모습들이 대단하기도 하고, 날씨 때문에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다. 나는 집 앞으로 나가서 큰 소리도 "파이팅"하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힘차게 쳐주었다. 몇몇 사람은 달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살짝 인사를 해주기도 했다. 30분 정도 행렬이 끝나갈 무렵, 다시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하프코스 반환점을 돌아서 오는 사람들 같았다. 아까 큰 박수를 보내 주었던 사람들이 다시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큰 박수로 그분들을 응원해 주었다. 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분들은 정말 대단했다. 그 열정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하프코스 참여자들

대부분이 반환점을 돌아서 우리 숙소 앞을 끝없이 지나갔다. 다만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걷고 뛰고를 반복하는 사람들도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다시 큰 행렬이 끝난 듯했다. 그런데 출발 시각이 1시간 반 정도가 지난 11시 정도에 저 멀리서 한 명이 이제야 우리 숙소 앞을 지나고 있는 것이었다. 단거리 또는 하프코스를 달리는 마지막 주자였다. 앰뷸런스가 뒤를 따라가면서 달리는 마지막 주자.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달리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10km코스 마지막 주자

마지막 주자가 지나가고 다시 30분 정도가 흐를 무렵, 풀 코스를 달리는 선두 선수 한 명이 빠른 속도로 다시 집 앞을 휑하고 지나갔다. 에스코트하는 기록 차량에 적힌 시간을 보니 2시간 2분통과 기록이었다. 비가 와서 선두 기록이 좋지 못한 상황같았다. 선두 주자가 지나가고, 다시 풀 코스를 달리는 선수급 참가자들이 지친 표정으로 하나둘씩 숙소 앞을 지나쳐 갔다. 빗 속을 33km 정도를 달린 사람들이었다. 정말 놀라웠다.


선두 주자가 집 앞을 지나간 후에 우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세화 오일장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들리지 못한 세화 오일장에 찾아서 시장 구경도 하고 시장 음식도 사 와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가는 길 한 편에서는 여전히 제주 국제 감귤마라톤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지만,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토너들은 지치지않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선두주자와 5~6km 이상의 차이가 있어 보였지만, 20여 명의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외국인들과 여성분들도 보였는데, 거친 비를 뚫고 달리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마라톤 코스를 지나쳐서 15분 정도를 달리니 세화 오일장에 도착했다. 1시 이전에 도착했기에 시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세화 오일장 풍경

제주도 북동부의 최고 재래시장답게 시장의 규모는 근처의 여느 시장과 다르게 커 보였다. 싱싱한 생선부터 과일, 채소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시장 구경을 시작했다. 필요한 반찬류와 음식 재료 몇 가지를 구매한 후에 음식 장터 쪽으로 갔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호떡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호떡을 구우시면서 "제주 유일의 쑥 호떡"이라고 강조하시는 사장님. 긴 줄을 보니 역시 세화장의 핫한 아이템 같아 보였다. 호떡과 함께 떡볶이와 순대, 붕어빵 등을 사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도 오고 사람도 많았기에 집에서 오붓하게 점심을 먹기로 한 것이었다.

세화 오일장 쑥호떡과 붕어빵

역시 시장에서 파는 호떡과 떡볶이 맛은 틀리지 않았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그 맛을 감동하면서 우리 가족은 분식으로 일요일 점심을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거실 창 밖으로 경찰차와 구급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마라톤 대회 참여자 중에서 풀 코스를 뛰는 마지막 주자가 상당히 지친 표정으로 달리고 있었고, 그를 앞과 뒤에서 에스코트하는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1시 58분. 34km 구간을 지나는 것이었다. 9시 30분에 대회를 시작했으니 4시간 28분 만에 34km를 통과한 것이었다. 이런 속도로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에 도착하면 6시간 정도가 될 것으로 보였다. 큰 가을비 속에서도 5~6시간 가까이를 달려서 마라톤 풀 코스를  달린다는 것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멀리서나마 마지막 주자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말고 달릴 수 있기를, 그리고 무사히 결승점을 통과하기를 기원했다. 


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

오늘은 조용한 휴식을 취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제주의 비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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