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꼭 한 번 가고 싶었던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로 향했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를 예약했기 때문에 늦어도 10시 20분까지는 선착장에 도착해야 했다. 아침 일찍 준비를 하여 7시 50분 테아나우의 캠핑장을 떠났다. 테아나우 호숫가의 길을 따라서 밀포드 사운드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일요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초원을 길게 뻗은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하지만 길가의 풍경만큼은 그동안 뉴질랜드에서 보던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다. 40분 정도 달리는 산들로 둘러싸인 에글린튼 밸리(eglinton valley)가 나왔고, 10분 여를 더 달리면 거울처럼 주위의 산들이 비치는 거울 호수(Mirror Lakes)를 지나갔다. 제주도의 사려니 숲길 같은 예쁜 숲길을 지나서 곤 호수 (Lake gunn)와 퍼구스 호수(Lake Fergus) 등 숲 속에 숨겨진 신비의 호수 곁을 캠핑카는 달렸다.
그리고 홀리포드 밸리 전망대(Hollyford valley)에 도착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좌측 편으로 크리스티나 산(Mt. Christina)을 비롯하여 우측에 본 플랜드 산(Mt. Bonpland)과 함께 중간의 깊은 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 같아 보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길이 나왔고, 오른편에 있는 크리스티나 산의 거대한 암석들 사이로 얼음이 녹으면서 흘러내리는 엄청난 물줄기가 이어졌다. 가는 길 왼쪽으로는 거대한 크리스티나 폭포가 굉음을 내면서 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런 믿을 수 없는 풍경에 취해서 조금 달리니 몽키 크릭 (Monkey Creek)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산에서 내려온 맑은 시냇물을 마실 수도 있었고, 주위 설산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밀포드 사운드 길목에 있는 최고의 뷰 포인트였다.
에글린튼 밸리와 곤 호수 주위의 꽃밭
홀리포드 밸리 전망대와 구불구불 도로 풍경
몽키 크릭
다시 15분 정도를 더 달리니 차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호머 터널 입구였다. 밀포드사운드로 이어지는 텔벗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로, 1953년 호머 사람이 착공하여 순수한 사람의 힘으로만 19년 동안 만들었다고 한다. 터널 내부를 달리다 보면 우리나라의 화려한 터널들과는 다르게 일반 갱도처럼 만든 1.2Km의
1차로 터널이었다. 신호 대기 시간을 보니 약 4분 30초. 잠시 차에서 내려서 주변 풍경을 담고 있는데, 앞에 서 있는 차들로 새 두 마리가 날아왔다. 이 지역에 특별한 키(kea)라는 새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먹이를 주기 때문에 차들 쪽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신호가 바뀔 즈음 다시 차에 올라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서서히 호머 터널을 통과했다. 조명 하나 없이 깜깜한 좁은 터널을 앞차 불빛만 보며 통과했다. 그리고 터널 끝에서 만난 절경. 거대한 설산들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와"라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장관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누군가 밀포드 사운드보다도 가는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경사가 크고 운전하기가 쉽지 않은 도로였기에 사진은 한 장도 남길 수가 없었다. 안전이 우선이기에. 그렇게 내리막길을 20~30분 정도 내려와서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밀포드 사운드 주차장에 도착했다.
호머 터널 입구와 차량으로 날아온 새
호머 터널에서 바라본 텟벗 산 협곡
주차장에 도착해서 우선은 주차권을 끊으러 주차권 발권기로 갔다. 이곳에서의 주차비는 5시간에 25달러. 주차비를 사전 정산하고 다시 차량으로 돌아왔다. 역시 내리자마자 벌레들이 엄청나게 달라붙었다. 벌레 퇴치약을 뿌렸는데, 옆의 인도 사람이 자기도 뿌려달라며 부탁을 해서 온 몸에 뿌려주고 다시 차 안으로 돌아왔다. 캠핑카 안에서 간단히 주먹밥과 주스로 점심을 먹고, 다시 온몸에 벌레퇴치약을 뿌린 후에 선착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선착장까지는 10여분이 또 걸렸다.
밀포드 사운드 주차장과 선착장 가는 길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
밀포드 사운드 선착장은 뉴질랜드 최고의 관광지답게 현대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투어 배들도 약 5~6개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10시 40분 체크 인을 하고 11시 드디어 밀포드 사운드 피오르드 해안으로 향했다. 선착장에서 살짝 우현으로 배가 돌아가니 밀포드 사운드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오른쪽에 보웬 폭포가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내가 본 가장 멋진 폭포인 정방 폭포의 10배 정도의 물줄기였다. 높이가 161m. 역시 뉴질랜드의 스케일은 달랐다.
보웬 폭포
이제부터 밀포드 사운드를 따라서 남태평양 바다가 펼쳐지는 곳까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밀포드 사운드라는 이름은 이곳을 처음 발견한 영국인 물개잡이 존 스루노의 고향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물개잡이의 고향 마을 이름이 세계 최고의 피오르드 해안 이름이 된 것이었다. 크루즈는 왼쪽에 있는 산들과 해안가를 둘러보면서 남태평양 바다로 서서히 이동했다. 가는 길에 물개들이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1시간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핸드폰의 사진기로 열심히 찍어보았지만, 그 풍경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냥 그 웅장함을 나의 오감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도 이런 풍경은 처음이라며 갑판에서 밀포드 크루즈를 즐겼다. 하지만 7살 아들은 이런 밀포드 사운드 관광이 재미가 없었던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어느새 갑판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50분 정도 밀포드 사운드를 가로지른 크루즈는 파도가 조금씩 거세지는 남태평양 입구에서 배를 다시 밀포드 사운드 쪽으로 돌렸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돌고래 무리가 배 주위를 지나갔다. 곤히 잠이 들어 있는 아들을 깨워서 돌고래 무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다에서 처음으로 돌고래 무리를 보는 아들은 신비한 듯 돌고래 무리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밀포드 사운드 여행의 꽃인 스틸링 폭포에 도착했다. 보통 작은 배가 그 물줄기 밑으로 들어가지만 우리 배는 규모가 있었기에 그냥 멀리서 지켜봤다. 멀리 서였지만 폭포수의 물방울 등은 얼굴에 화장품을 뿌리는 듯 차갑게 다가왔다. 스틸링 폭포를 마지막으로 크루즈는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2시간의 크루즈 여행의 거리는 왕복 35km 정도로 굉장히 길었다. 하지만 피오르드 해안의 폭이 상당히 넓고 주변의 산들도 웅장하기에 마치 10km 정도 둘러보고 다녀온 기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풍경은 내 인생 최고의 풍경들이었다.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와 거대한 바위산, 바위 위의 물개들
멀리서 본 스틸링 폭포
밀포드 사운드
남태평양으로 나가는 길
밀포드 사운드의 끝과 다시 밀포드 사운드로 돌아오는 길
스틸링 폭포와 펨브록 산
배에서 내린 오후 1시가 되니 선착장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여기저기에서 달려온 관광버스들 10여 대가 주차장을 채우고 있었다. 역시 밀포드 사운드는 뉴질랜드 최고의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다시 테아나우로 향했다. 다시 호머 터널을 지나고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그렇게 맑은 날씨가 호머 터널을 지나면서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때문에 오는 길에 거울 호수에 들리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분주한 밀포드 사운드 터미널
오는 길의 호머 터널
오는 길에 잠시 곤 호수 주위의 캠핑 사이트에 들려서 캠핑카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늘의 점심은 라면과 짜파게티! 차 안에서 물을 끓이고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맛있게 먹었다. 뉴질랜드 숲 속에서의 라면 맛은 역시 끝내줬다. 옆의 캠핑카를 보니 계곡물을 퍼서 음식을 하고 있었다. 맑은 물을 그대로 식수로 활용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나도 시원한 개울물을 먹어보았다. 제주 삼다수 이상으로 물 맛이 너무 좋았다.
식사를 마친 후에 다시 2시간을 달려서 테아나우에 도착한 우리는 뉴질랜드의 명물인 푸른 홍합을 구매하여 얼큰한 홍합탕으로 저녁 식사를 먹고 또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