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학을 사랑했다. 비록 문학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짝사랑과 비슷한 형태일지라도, 문학이 좋아서, 특히 젊은 작가들의 현대시가 좋아서 얇은 문고본의 그 책들을 가장 가까이 두었다. 그리고 출퇴근길에, 잠들기 전에, 주말 카페에서, 여행지 장소 곳곳에서 그것들을 읽었다. 나도 그렇게 써보고 싶어서, 습작도 하고, 친구들과 합평도 하고, 대학원에서 이론도 공부했다. 그렇게 시인이 되는 걸 잠깐 꿈꾸기도 했지만, 나는 시인으로서의 나보다, 시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시를 쓰는 작가들을 응원하는 자리에서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시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춤을 추고 싶을 만큼 행복했고, 그 완전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스스로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문학을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그저 감수성이 풍부했기 때문이었을까, 약간 현실에 적응하기 힘든 비현실적인 몽상가적 기질 때문일까.
물론 나는 ‘언어’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독해를 기다리며 가지런히 앉아 있는 텍스트의 그 시각적 배치를 좋아하기도 했고, 언어와 언어가 입 안에서 자리를 잡다가 춤추듯 움직이는 청각적 리듬도 좋아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 언어들이 모여 장난처럼 움직이다가 그림처럼 그려내는 비실재적인 현실과 그 현실을 상상하는 것도 나에겐 문학이 주는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유희적 과정에서 문학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삶’들’에 대해 보여주었다. 나에게까지 닿지 않았던 혹은 내가 애써 외면해버렸던 미약한 삶들을 작가들은 적어내려갔고, 나는 내가 볼 수 없었던, 어쩌면 그래서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문학의 그런 무모함을, 쉽게 포기하지 않음을,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실패해가는 그 문학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문학을 사랑하는 일은 즐겁고 설레는 일이면서도 예견된 슬픔을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반복적으로 다시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러한 문학들은 늘 나를 응원해줬다. 쓸모없어 보이고 내 삶도 의미가 있음을, 그래서 나는 내 삶을 스스로 독해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주었다. 거기에는 분명 어떤 이야기가 있고, 시적 이미지가 있고,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이다. “문득 내 눈앞에 펼쳐진 어떤 풍경이 내면에 새겨지지는 않은지. 그렇게 자꾸만 떠오르는 나만의 장면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언제나 문학을 동경하고 짝사랑해왔지만, 사실 나 스스로 이미 문학 그 자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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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글쓰기 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디자이너인 사람부터 공무원, 마케터, 일 하다가 휴직 중인 사람 등등. 그리고 각자의 글쓰기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흥미로운 한 친구가 있었는데, 공대 출신 연구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최근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그는 최근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지방에서 부모님을 뵙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고속버스 안에서 한 남성을 만났고, 그 남성에게서 홍삼 사기를 당했다고. 어찌 보면 별거 아닌 그냥 일기 같은 내용. 그런데 그는 그 내용을 자신의 시선이 아닌, 그 사기꾼 남성의 시선에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사기 친 한 남성의 입을 빌려 다시 자신의 하루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그 이야기를 사기꾼의 관점에서 쓴다고 말한 순간 나는 그의 하루가 새롭게 읽혔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교차한 타자의 시간을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사기꾼의 관점에서 그 사건을 다시 재구성할 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자의 세계로 훌쩍 넘어갈 때, 그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최소한 그가 남들보다 삶을 여러 겹으로 채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안으며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은 있지 않을까. 일기로 쓰기조차 너무 평범하고 지루해 보일 일상이 문학적 순간으로 바뀌는 지점. 나조차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너무 흥미로워 글이 뻗어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게 되는 순간들.
나는 내 삶을 다시 독해할 필요가 있었다.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쉽게 정의내리지 않고, 고유의 의미를 계속 부여함으로써 범박한 일상을, 쓸모없어 보이는 감정에 오래 시선을 두고자 했다. 이 이야기들은 그런 순간과 장면 들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인용 출처: 유계영,『꼭대기의 수줍음』, 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