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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Feb 14. 2019

글쓰기는 똥 싸기


해치워야 하는 글에 둘러싸여 자발적인 글은 뒷전이었다. 가벼운 운동은 고사하고 그렇게 좋아하던 넷플릭스나 와챠도 다달이 얼마씩 빠져나간다는 것만 문자로 받을 뿐 못 본지 꽤 됐다. 첫 경험 후 신이 나서 결제해버린 밀리의 서재도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다.


지극히 내 취향의,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는 순간 활기를 잃는 느낌이다. (못했다는 건 핑계고 안 했다는 게 맞겠지만) 애매하게 발가락을 걸쳐두고 우선순위가 없이 흔들거렸다. 만족하는 법은 참 단순한데 뇌에서만 과부하가 걸린 채 거미처럼 이리저리 복잡한 실낱들을 엮었다.


오랜만에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장르별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보는데 몇 년 전, 가장 독서를 열심히 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뿌듯했을까? 아니었다. 읽었다는 사실만으론 전혀 보람되지 않았다. 당시엔 이런저런 변화도 겪었고 활기찼다.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꿈들을 이리저리 굴려보며 행복했다. 지금은 그때 꿈꿨던 것들에 점점 가까이 가고 있음에도 일주일에 책 한 권 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현실 안에 처박혀 있다.


읽고 싶은 책과 매거진을 보면 마음이 먼저 동한다. 그런데 글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일수록 단 한 장도 읽지 못하겠더라. 아껴두고 아껴둔 다음 여유로운 날 마음 채우고 싶은 병이 생긴 것 같았다.


잘 쓰기 위해선 많이 읽고 또 실제로 써야 한다는 걸 여지없이 알고 있지만 요즘의 나는 물기 뺀 걸레를 계속해서 쥐어짜는 느낌이다. 인풋 없이 아웃풋만 하려니 머리 회로가 지지부진하게 돌아간다. 밤낮이 바뀐 요즘, 일하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몇 자를 두드리고 나니 삐걱대기 시작했다. '조금만 여유 생기면', '일단 이것부터 해두고'라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던 나를 위한 모든 것들이 물 안에 속절없이 담가뒀던 숯처럼 메말라가고 있었다.


원래 내가 바라고, 돈과 일적인 업무를 제외한 것들에서 무얼 하려고 했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봤다. 하루하루를 늘어진 테잎처럼 살아온 요즘의 몇 달. 지끈거리고 찝찝하던 과오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글쓰기는 똥 싸기'라던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다. 지금부턴 다시 힘내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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