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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Dec 18. 2019

[한편보고서 6] 대학로 연극, 비 오는 날의 인터뷰

비 오는 날의 인터뷰. 여자와 남자가 작가와 기자로 만났다. 그들은 일의 연장선으로 만나게 됐고, 처음 만난 사람 치고는 참 많이 삐그덕거린다. 남자는 건들건들 여자는 그런 남자에 따박따박 토를 단다.


'이렇게까지 사랑받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여자는

"남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꾸미지 않는다. 꾸미는 것들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쓸 뿐이고 내 글이 운 좋게도 사랑받는구나 싶을 땐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뿐이다"

라고 말한다. 통장 잔고에 대해서 가볍게 스치듯 말하는 부분에 있어선 조금 비현실(?)적이었지만 여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나 또한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니까.


사람과의 관계, 사랑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 여자는 남자에게 "헤어진 연인을 만나게 되면 뭐라고 얘기할 건가요?" 묻는다. 이에 남자는 답한다. "예뻐졌네"


이 대목에서 이들이 그저 베스트셀러 작가와 취재를 온 기자의 사이만이 아님이 드러난다. 이들은 9년 전 사랑했던 사이다. 재회치고는 정말 오랜만의 만남. 그리고 이혼을 앞둔 남자. 이들의 이야기엔 무엇이 남게 될까?


두 사람이 남자와 그의 아내에 대한 대화를 신랄하게 이어가는 동안 남자는 깨달았다. 아내는 집착이 있는 게 아니라, 잔소리가 심한 게 아니라,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것이고 사랑해서 함께이고 싶었던 거라고.  


각각 화성과 금성에서 왔다고 할 만큼 고전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숱한 이별의 사유가 되는 '성격 차이'가 그저 단순한 성격의 차이가 아닌 것이다. 단순하고 이성적인 남자는 복잡하고 감성적인 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 또한 그러한 남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자는 '사랑'을 하고 여자는 '사람'을 하는 것처럼 대부분이 그렇다.


여자는 남자가 겪는 사랑의 위기에 팅커벨이 되어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냐는 남자의 물음에 "한때 감정을 공유했던 사람이 좋은 남자가 되길 바라니까"라고 보살처럼 답하는 여자. 아슬아슬한 대화를 끝내고 내기에서 이긴 여자는 소원을 묻는 남자의 옷자락을 잡는다. "비가 그치면 추워지겠지?"


그 눈빛이 여태껏 해온 팅커벨 놀이가 대체 누구 좋으라고 했던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슬퍼 보인다. 여자는 어쩌면 계속해서 자신을 빗대어 얘기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별 사유도 지금 너와 아내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라고.


연극의 구성이 참 깔끔했다. 본인이 누구와 닮았는지 묻는 사람도, 네모난 통 속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굴려 화장품을 나눠주는 일도 없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남자가 등장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시작할 줄 몰랐던 관객들은 고요하게 부산스러웠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모든 회차를 다 소화하는 기자 역의 배우 김성준은 이미 그 연극의 달인이 되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고, 작가 역의 배우 정우진 또한 딕션과 대사 전달력이 좋아 흐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연극을 볼 때마다 넉넉한 사정이 아님에도 자리한 관객을 위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참 멋있게 느껴진다. 그리곤 나의 상황, 위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분주한 대학로는 언제나 내게 좋은 자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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