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다른 날과 달리 문제 푸는 속도도 느리고 자꾸 틀린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전날 본 단어시험을 망쳤기 때문이다.
수학 : 다항식 단원을 끝내는데 계획한 시간보다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공식을 외우지 않고 문제를 풀려 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그 날 하기로 한 분량을 하고 있는데 다른 날보다 집중이 안 된다. 지문이나 문제를 읽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전날 단어 시험을 망쳤는데 그 때문에 난 영어를 못 한다는 자괴감에 빠졌기 때문이다.수학의 경우도 한 단원을 끝내기로 한 날을 몇 번씩 연장해가며 너무 오랜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외우는 걸 싫어해서 공식을 외우지 않고 문제마다 새로이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위의 경우는 바램대로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해결을 방해하는 자신의 가정이나 감정과 같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즉, 문제만 보고 그 문제를 대하는 자신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은 항상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항상 정확하지도 않다. 인지행동치료에서는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를 핵심 믿음(core belief) → 중간 믿음(intermediate belief) → 자동적 사고 → 반응으로 본다.
핵심 믿음이란 가장 견고하고 일반화된 믿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려운 문제에 접했을 때 그것을 풀려고 하기 보다는 SNS를 하거나 TV를 보는 등 딴짓을 하는 행동을 생각해보자. 이 때 핵심믿음은 ‘나는 무능해'라는 것일 수 있다. 중간 믿음이란 핵심 믿음에 기반한 태도, 규칙, 가정을 말한다, 앞의 예와 관련해서는 ‘문제를 못 푸는 건 끔찍해'라는 태도, ‘너무 어려운 거면 포기하자’라는 내면의 규칙, ‘어려운 걸 시도하면 실패할 거야. 차라리 그럴 거면 안 하는 게 좋아' 라는 가정이 있을 수 있다. 자동적 사고는 특정 상황에서 표면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한다. 핵심 믿음이나 중간 믿음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동적 사고는 스스로 느낄 수 있다.앞의 예와 관련해서는 ‘이 문제 너무 어렵네. 나는 이 문제 못 풀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동적 사고가 비효과적인 행동을 야기할 때는 그 보다 심층적인 중간 믿음이나 핵심믿음을 파악하고 이러한 믿음의 불합리함을 찾아서 반박함으로써 이를 바꾸어야 한다.
권태기로 인해 차인 사람이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에 상대방에게 간략한 안부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몇시간째 고민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자신은 헤어지는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긴 했지만 질척거리며 매달리지 않았고, 상대방은 헤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지만 그 점을 빼고는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평생 원수로 지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안부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방이 무시하거나 비웃을 것으로 생각되서(자동사고) 보낼 수가 없다. 이 때 기저에 있는 믿음은 이런 것들일 수 있다.
[중간믿음1]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대하면 끔찍하다
[핵심믿음1]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대하면 내가 잘못된 것이다/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간믿음2] 내가 힘들게 보냈다는 것을 알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미련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불쾌해 할 것이다 [핵심믿음2] 상대방에게 나는 전혀 가치 없는 사람이다/나의 모든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자신의 중립적 행동에 대해 상대가 못되게 굴었을 때는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잘못인 것이다. 만약 상대가 안부 메시지에 대해 비웃는 반응을 했다면 쓰레기라고 역으로 비웃어주면 그만이다. 또 한때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인데 상대의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표면적인 자동사고에 깔려 있는 중간 또는 핵심 믿음을 알아차리고 그에 대한 반박을 해 보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접근이 조직문화에도 존재한다.Edgar Schein은 조직문화가 3가지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Artifacts & symbol : 표면적으로 관찰되는 요소. 예) 로고, 복장, 건물, 일하는 프로세스
Espoused value : 표준, 가치, 행동 규범, 전략 등
Basic underlying assumption: 당연하고도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경험되는 믿음, 사고, 감정 등
따라서, 어느 조직의 문화를 바꾸려면 표면적인 행동 방식만 바꾸려 해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고 밑에 깔려 있는 기본 가정을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면 상급자가 하급자를 막 대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리더십 교육을 대대적으로 시행한다고 하자. 만약 조직의 기본 가정이 성과를 잘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은 희생해도 괜찮다는 것이라면 부하를 비인격적으로 대하는문화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생각이나 행동의 기저에 깔려 있는 믿음 또는 가정을 파악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바꾸는 것은 중요하다. 공부할 때도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면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정들이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자신이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가정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생각에 깊숙히 들어가 가정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Beck, J. S. (2011). Cognitivebehavior therapy: Basics and beyond. Guilford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