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그래프

by 실배

매일 어떻게 하루가 지나는 걸까. 끊임없는 자료 작성과 사업 설명의 날들이다. 이마저도 어찌어찌하는 걸 보면 이 삶에 적응한 것일까. 인정하기 싫지만, 일에 서서히 중독되고 나름의 보람을 찾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곳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의미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아직은 날이 좋아 틈틈이 바깥공기 쐬는 시간이 소중하다. 타탁 타탁 거리는 컴퓨터 자판 소리가 자욱한 안과 다르게 밖은 지극히 평온하다. 탁 트인 마음을 품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 본다. 습관처럼 끼고 다닌 이어폰은 사무실 책상에 두고 나온다. 긴 글쓰기를 통해 날 것 그대로의 소리를 듣고 싶어 졌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요즘은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늘은 쏴쏴 소리가 자주 난다. 바람 그대로의 소리일지, 어딘가 닿아 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오후에 동기와 산보를 마치고 사내 커피숍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창문 너머로 바람에 나뭇가지, 나뭇잎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야. 봐봐. 나무가 춤추는 것 같지 않아? 예쁘다."
"형님. 요즘 마음이 좋은가 봅니다. 저는 흐느끼며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나는 ISFJ, 그는 ESTJ, MBTI 성격 유형의 차이인가. 아니면 진짜 내 마음이 좋은가. 좋을 일이 별로 없는데. 요상 타. 늘 동기를 보면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데. 하긴 상대적이니. 그럼 나는 마음이 좋은 것으로.

다행히 회사 일이 일찍 끝났다. 지하철은 나를 기다린 듯 딱 맞게 도착했다. 이제 마지막 마을버스만 남았다. 아차.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망연자실했다. 어째. 운이 좋더라니. 그 순간 아들에게 연락 왔다. 어디냐고 해서 다 왔다고 하니 말미에 "빨리 와."란 말을 듣고 설렜다. 가끔 별말 아닌 말이 힘을 줄 때가 있다.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에 담긴 의미를 알기에.

아들은 꼭 안아주며 반겼다. 슬쩍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을 놓지 않았다. 녀석. 딸은 이제 막 씻고 나와 혼자서 드라이 준비 중이었다. 요즘 감정이 널 뛰는 시기라 그대로 둔 체 잠시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뒤 "아빠~!"라고 힘차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기분이 상승 곡선이구나. 달려갔더니 내가 좋아하는 반달눈을 가득 뜬 채 뽀뽀를 해주었다. 이건 뭐 다시 출근해도 되겠는 걸. 딸과 노닥이다 씻고 방에 누웠다.

오늘은 아들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핸드폰 충전하고 알람을 맞추고 안경을 벗어 아들 책상에 놓았다. 모든 준비 끝. 이제 아들만 오면 된다. 아. 벌써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내 노곤함이 온몸 가득 퍼졌다. 안 되는데. 오늘은 이야기 좀 하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