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방에서 잠시 컴퓨터 작업 중이었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이어 스르륵 방문이 열렸다. 딸은 반달눈에 몸을 배배 꼬며 보드라운 두 손을 내밀었다. 뭘까. 그 안에는 네모난 색종이가 담겨있었다.
종이 틈 사이로 얼핏 '결, 일, 드'란 글자가 보였다. 글자 조합을 아무리 해봐도 모르겠다.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다. 딸은 눈짓으로 열어보라는 무언의 압력을 주었다. 조심스레 비밀의 문을 열었다.
정답은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딸의 편지였다. 세상에나. 드디어 종이 틈 사이로 보였던 글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이미 결혼기념일은 지난 지 꽤 되었는데, 계속 마음속에 담고 있었나 보다. 가끔 딸의 마음속은 궁금해서 꺼내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딸은 직접 카드를 열어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늦게라니. 이렇게 받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빠에게 '요'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다는 표현이 귀여웠다. 평소 쓰지 않는 경어체는 아들의 코치 같다. 나는 딸을 가슴에 폭 안고 애정 듬뿍 담긴 뽀뽀를 해주었다.
딸은 내 뒤에 대고 "아빠. 내가 다 만들었는데, 오빠도 도와주었어. 그러니깐 같이 한 거다."라고 속삭였다. 그럼 알다마다. 곳곳에 보이는 지우개 자국에서 아들의 흔적이 보였다. 더구나 마지막에 오빠, 혜원 올림에서 빵 터졌다. 오빠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느껴졌다.
뜻하지 않는 선물에 뭉클했다. 아들과 딸은 우리가 받고 행복할 상상을 했겠지. 누군가 마음에 행복을 심어주는 아이로 자라주어 감사했다.
딸이 떠난 뒤 나에게는 고운 두 손이 계속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