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생소하다. 목소리는 한 톤 올라갔다. 왜 그러지. 심지어 푹 안아주었다. 무섭다.
불과 얼마 전이었다. 우리는 세 차례나 세게 부딪혔다. 결혼 13년 차, 그간 하늘의 별만큼이나 싸웠지만 이 정도였을까. 마지막에는 서로 언성을 높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밖에 나가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둘째는 첫째 방에서 잠이 들었다.
갈등이 싫었다. 아니 갈등 기간 동안 냉전이 싫었다. 마음속 앙금이 완전히 풀리지도 않았으면서 먼저 미안하다 말하곤 했다. 영혼 없는 사과였다. 아내도 알고 있었겠지. 그러면서 우리는 아무 일 없었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게 쌓이고, 곪았고, 결국 터졌다.
이제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안에 쌓인 불만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그 날카로운 화살은 아내 곳곳에 박혔다. 함께 생활한 지 10년이 넘은 처남에 대한 불편함이 시작이었다. 이내 이사 가도 여전히 처가댁 근처에 있으려는 아내에 대한 미움으로 번졌다. 나 보고는 부모님과 독립하라고 해 놓고는, 당신은 여전히 원가족에 머물으려 하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다 툭 하고 마음 한구석에 숨겨 놓았던 감정 하나가 튀어나왔다. 나보다 처남에게 더 친절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는 아내를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나의 분노 이면에는 아내에 대한 애정의 갈구였다. 나는 이 마음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전했다. 맙소사.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아내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당황한 아내를 그대로 두고, 급히 방을 나왔다.
그 뒤로 아내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내에게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냉랭함이 온 집안에 가득하던 때, 둘이 선풍기를 닦다 눈이 마주쳤다. 피식하며 아내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둘 사이의 차가운 얼음이 순식간에 녹았다. 그때부터였다. 아내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미소를 보였다. 말투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웠다. 내가 팔을 벌리면 꼭 안아주었다. 왜 이래 당신. 그냥 하던 데로 하라고.
그런데 뭐지. 쿵쾅 거리는 그 무언가는. 길가다 실 웃음 짓는 것은 또 뭐고. 자꾸 보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떡하지. 내 안에 싹트는 이상한 감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말한 것을 아내는 소화한 것일까.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일까.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맞이한 아내의 변화에 어리둥절 중이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살랑대는 그런 사람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