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늦둥이 셋째가....
저녁 식사 중이었다. 갸름한 턱, 높은 콧대, 숯 검둥이 눈썹. 가슴에 훅하고 바람이 불었다. 분명 어제 같은 침대에서 드르렁 코를 골며 밤을 지새운 여인이 맞단 말인가. 요즘 아내를 바라보는 마음의 온도가 달라졌음을 수시로 느낀다.
비단 겉모습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벌써 결혼한 지 14년 차, 탱탱했던 피부는 푸석해졌고, 짙은 머리칼은 흰색이 하나둘 점령했다. 그러나 내 눈엔 아름다움의 절정이었다. 막 손을 잡고, 안고, 뽀뽀도 하고 싶다. 아내는 주책이라며 밀어내지만 싫은 눈치가 아니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했다. 심지어 아내는 얼굴만 보아도 짜증이 난다며 울분을 토했다. 나 역시도 날 선 감정이 수시로 올라왔다. 부부싸움을 하면 고성이 오가며 서로의 상처를 깊게 후벼 팠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이들 교육이었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마치 미울 거리를 찾는 사람처럼 조금이라도 안 맞는 점이 발견되면 이때라며 물어뜯었다.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순간도, 대화도 줄었다. 나쁜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차올랐다. 이렇게 살 바에야 끝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니 끔찍하다.
그랬던 우리가, 더 정확히 내가 이리 말랑해지다니.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나도 궁금했다. 일단 갈등의 큰 씨앗이었던 교육 문제를 합의했다. 나는 아내의 과한 교육열을, 아내는 나의 대책 없는 자유로움을 비난했다. 아내에게 모든 교육을 일임하고 일절 딴지 걸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 노력은 생각을 듣고 존중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오랜 기간 함께 하다 보니 서로의 이야기에 시들해졌다. 누군가 쓴 글에서 보았는데, 연애할 때처럼 귀를 기울인다면 싸울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그저 하는 말에 좀 더 경청했을 뿐인데 그 효과는 거대했다. 뭐랄까.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왜 진즉 못했을까. 익숙함으로 포장한 무심함이었다.
아이들 이야기도 신이 났고, 우리 이야기는 더욱 흥이 났다. 주말엔 네 식구가 함께 공원을 산책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보며 보냈다. 가족 독서 모임을 시작하면서부터 매달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었다. 그 시간은 부모, 자식을 넘어 동등하게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끝을 생각했던 것을 무색하게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지.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은 무언지 나누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함께 도모할 목표도 생겼다. 며칠 전에는 아내의 꿈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결국 진솔한 대화였다.
작년에 이사하면서 아내와 10년 만에 한 침대에서 누웠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숨소리에 안정감을 느낀다. 아들과 자면서 늘 결렸던 몸이 개운한 것을 보니 제자리를 찾은 듯싶다.
오늘 혼자 시내에 외출할 일이 있었다. 아내는 그 시간에 미용실에 다녀온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연락을 했더니 마침 끝났다고 했다. 중간에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풍성한 머릿결을 휘날리며 우아하게 걸어오는 여인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다가온 그녀는……. 그녀는 바로 아내였다.
큰일 났다. 아내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