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직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거실에서 출근 준비를 서두릅니다. 씻고 옷을 입고, 가방 안에 서류를 챙기면 끝이네요.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조금 열린 딸 방에서 분홍색 꽃무늬 잠옷이 눈에 띕니다. 최대한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니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말고,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옆으로 길쭉한 반달눈은 아직 세상을 받아들이기 싫다는 듯 굳게 잠겼습니다. 하얀 뺨에 뽀뽀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립니다.
딸을 처음 만났을 때 감동은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 떠날 줄 모릅니다. 아마 평생토록 두고두고 꺼내 보는 추억이 되겠지요.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내 집게손가락을 꼭 쥐는 순간, 저는 실배가 아닌 딸바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아빠들이 그렇겠지요.
딸은 커가면서 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물을 잔뜩 먹은 스펀지처럼 축 처진 채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면 저 멀리서 ‘다다닥’ 소리를 내며 달려와 달처럼 환한 미소로 내 품에 안깁니다. 그리곤 연신 뺨에 뽀뽀 세례를 퍼붓습니다. 순간 하루의 피로는 몽땅 사라지고, 그 자리는 어느새 행복이 차지합니다.‘콩콩’ 거리는 심장 소리는 노랫가락처럼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작은 생명이 주는 위로는 고된 삶을 살아가는 힘을 주네요. 속으로 다짐합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불구덩이 속으로도 달려갈 수 있다고요.
마음 안에는 천사라도 들어가 있는 걸까요. 얼마 전 아들과 침대에서 장난을 치다가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쳤어요. 아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놀자고 덤벼대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딸이 다가와 “아빠. 괜찮아?”하며 ‘호호’하고 입김을 불어주는 것 있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마도 만져주고, 마치 고통이 전해진 듯 찌푸린 표정을 보고 있으니 고마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어쩜 이리도 마음이 고울까요.
어디 그뿐 인가요. 속상한 일이 있어서 그 감정을 고스란히 흐린 얼굴에 담고 있으면, 어느새 옆에 다가와 살갗을 비빕니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쳐다보면 ‘힘내요. 인제 그만 나랑 놀며 풀어요.’라고 표정으로 말을 하네요. 그럴 땐 얼른 툭툭 털고 딸이 좋아하는 잡기 놀이를 함께합니다.
딸을 만나고 신세계를 만났습니다. 늘 아들과 몸으로 노는 것에 익숙했던 저는 어느새 척척 인형 옷도 입히고, 머리도 딸 줄도 아네요. 처음에는 살짝 두려웠어요. 알록달록 색색의 예쁜 인형은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었습니다. 어색했지만, 점점 친숙해지더니 꼭꼭 숨겨두었던 여성성이 비집고 나오더라고요. 왜 이제야 만났나 싶네요.
인형 놀이는 비단 꾸미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만들어가는 일이었어요. 공주도 되었다가, 엄마도 되고, 때론 남자 친구가 되어 둘만의 이야기를 꾸며냅니다. 목소리도 상황에 맞추어 바꾸는 것은 필수랍니다. 이제는 딸아이도 많이 커서 인형 놀이를 졸업했지만,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곤 합니다.
얼마 전 친한 선배와 둘이 저녁을 먹었는데, 그렇게 예뻐했던 딸이 중학생이 되더니 멀리한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딸이 성장하는 과정이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아쉬움을 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때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아직 현실이 아닌데도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막힌 듯 답답했습니다. 가끔 딸에게 지금 이대로 자라지 말고 있어 달라고 부탁하는데, 말도 안 되는 꿈이겠죠. 그래서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계속 많은 추억을 쌓고 싶은 바람입니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그리고 딸과 함께 살아가며 받는 기쁨은 우리가 가진 단어로는 전부 표현이 안 되네요. 담을 수도 없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지금처럼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그렇게 되겠죠.
글을 마치며 딸에게 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딸, 이렇게 아빠에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