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어릴 때 난 참 순응적인 아이였다.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부모님 뜻과 다르다면 그대로 그만두었다. 그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특히 달리기를 잘해서 육상부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어머니께서 운동하는 것을 반대했기에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랬던 나에게도 일생일대의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때 갑자기 꿈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꿈을 꾸고 공군사관학교 준비를 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당연히 반대가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시험 준비까지 하게 되었다. 기존의 수능과 전혀 다른 과목을 준비해야 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시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실망할 틈도 없이 다시 수능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수능까지 망쳐버렸다. 그때 생뚱맞게 공군사관학교 준비를 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수능을 그리 망치지 않고 점수가 훨씬 잘 나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졌을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긴 더 낫다는 기준조차 모호하기 때문이다.
러셀 로버츠의 '결신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었다. 전작《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로 30만 한국 독자들에게 사람 받았던 작가 러셀 로버츠가 이번엔 ‘불확실한 세상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이란 주제로 8년 만에 신간을 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번 책을 읽으며 그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삶의 지혜가 가득 들어간 내용을 통해 인기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이 결혼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데 기록까지 하며 딜레마에 빠진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가 결혼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한 리스트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결혼한다 보다는 결혼 안 한다의 내용이 빼곡했다)
그는 결혼보다도 '결혼'이 가지는 불확실성이 두려웠던 것 같다. 결혼 후에도 지속해서 연구나 학문적 정진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을 했다. 결국 결혼을 했고, 자식을 10명이나 낳았고 현명한 아내를 통해 자신이 인격적으로 성장했음을 고백하는 기록까지 남겼다.
챕터 중간중간에 담겨있는 좋은 문구들이 마음에 남았다. '당신이 일단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완전히 달라진 자신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면, 동전을 던져라. 일단 동전이 돌기 시작하면, 내가 지금 어느 쪽의 결과를 바라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등등 우리가 마주할 수많은 선택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를 알려주었다.
복수의 선택지가 있을 때 최선을 선택을 하는 전략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108명의 구혼자 중에서 어떻게 신랑감을 골랐는지, 슈퍼볼 감독의 불패 전략에서는 유명 미식축구 감독이 어떻게 매년 드래프트에서 성공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절로 고개가 끄덕이는 내용 속에서 앞에서도 보았지만 결국 도전하고 시도하는 자만이 선택의 승자가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얻는 교훈은 무척 소중하기에.
심리학에서도 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 역시 공군사관학교 입시에는 떨어졌지만 그때 선택했기에 지금에 와서 후회는 없다. 아마도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내내 아쉬워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런 경험이 소중한 추억으로 삶의 좋은 이정표가 되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부모님의 그늘에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일도, 진로를 선택하고 그 이후의 취업 모두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제는 예전만큼 선택의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 나의 눈은 자연스레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앞으로 아이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놓일 것이다. 그때마다 작가가 강조한 주저 말고 적극적으로 선택했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를 해보아야 나에게 맞는 것도 찾을 수 있고, 나중에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오래간만에 책을 읽고 예전 일도 떠올리고, 선택에 관한 비전도 새길 수 있었다. 사실 나에게도 지금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책을 통해 좋은 교훈을 얻었기에 마음이 이끄는 데로 가보려고 한다. 그 결과가 어떻든 내가 선택한 길이니깐 후회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