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아빠 되고 싶다.

by 실배

지난번 못다 한 검사 해석받았다. 초점은 직무 시 드러나는 특성이었다. 인정 욕구가 강하고 갈등 시 주로 맞추려 하기 때문에 내적 스트레스가 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연스레 원 가족 탐색이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일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었고, 어머니가 모든 양육을 책임지셨다. 어머니는 무척 엄하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 한번 가져다준 적 없었고, 몸이 아파도 무조건 학교는 가야 했다. 잘못에 대해서는 강한 체벌도 받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왜 이리 모질게 하셨냐는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아버지도 없는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었다. 하긴 어머니 홀로 오롯이 육아와 살림을 담당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제는 조금 알겠다. 강한 어머니 밑에서 내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주로 맞추는 데 익숙했다. 특히 다른 사람 이목이 중요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지금 내가 이룬 가정에서도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내와 교육관이 달라 자주 부딪혔다. 때론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결론은 늘 내가 백기 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 물론 승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조율하려고 하지 않고 뒤로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가족 내에서 아버지로서 역할이 희미해져 갔다. 이곳에 발령받아 온 뒤론 주중에 늦은 퇴근이 이어지고, 아내 혼자 아이들 교육과 양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자녀의 성공 요건 중 하나가 아버지의 무관심이라는데 그런 의미론 잘하는 건가.

선생님은 아버지로서 어떤 역할 하고 싶냐고 물었다. 순간 머릿속이 칠흑같이 깜깜해졌다. 그러게. 그 생각조차 못 했다.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어떤 모습인지 경험하지 못했다. 그저 나의 바람은 아이들 함께 있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그 소망을 이룬 지금, 그냥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선생님은 역할에 대한 고민을 꼭 하면 좋겠다는 말로 마무리하셨다.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 연락했다. 오늘 내용을 전해주었더니 무척 반가워했다. 아내에게 내가 어떤 역할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두 가지를 말해주었다. '권위'와 '정서적 지지'였다. 아내는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좋은데 경계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권위적인 권위가 아니라 성숙한 아버지로서의 권위 있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 어렵다. 하지만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겠다. 그리고 아내가 주로 아이들 혼내는 역할 하니 나는 따듯한 말이나 스킨십을 자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의 말이 고마웠다. 그저 간섭하지 말길 바라는 줄만 알았는데, 아내도 나에게 바라는 점이 있었다. 아내와 통화 마치며 주 중 하루는 일찍 퇴근하기로 약속했다. 힘들겠지만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꼭 실천해봐야겠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바라보니 왠지 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괜스레 다가가 한 번 씩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아들은 내일 PPT 숙제가 있으니, 도와달라고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오케이 콜.

씻고 자리에 누우려는 찰나, 문밖에서 아들이 같이 자자고 기다리라는 말이 들렸다. 아들은 쏜살같이 이불속으로 들어왔고 잠시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아들에게 어떤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물었다. 내 예상과 다르게 바라는 것이 한가득하였다. 그렇게나 바라는 점이 많았다니. 그간 철없는 아이로만 보았나 보다. 어느샌가 딸도 다가와 말을 더했다. 앞으로 해야 할 숙제가 많아졌다.

눈은 감기고 점점 꿈나라로 향해가는데, 마음 한구석은 뜨거웠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언제든 기댈 수 있고 따듯함을 느끼는 그런 아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