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힌 사랑에 지친 이들에게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리뷰

by 스미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참 관심이 많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누구와 함께 사는지 등을

별 거리낌 없이 물어본다.

질문들은 때때로 '관심'이라는 말로

포장되고,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예민하다고 취급한다.


연애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다.

흔히 여성에게는 '남자 친구 있으세요?'

라고 물어보거나 남성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는지 물어본다.


애인이 꼭 이성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는 표현은 그렇다 치고,

오랜 기간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이상한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사람들의 이러한 관심은

어떤 면에서는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켄트 하루프의 유작이라고 알려진

<밤에 우리 영혼은>은 사람들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노인 두 명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관심에 저항하는 그들이 사랑은

우리에 많은 교훈을 준다.

바로 '사랑'에 정해진 틀이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다.



밤에 우리 영혼은


책은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다.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과

알록달록한 불이 켜진 고즈넉한

시골집의 풍경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풍기는 분위기와

매우 흡사해 책을 덮은 후에도

깊은 여운을 주는 포인트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어느새 노인이 되어 버린 애디 무어와

루이스 워터스는 각각 남편과 아내를

떠나보낸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애디는 루이스의 집에

찾아와 함께 밤을

보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육체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저 밤의 허전함을 공유하고 싶은

친구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의도를 의심하던 루이스는

결국 밤에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그들은 함께 밤을 지새우며

각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사랑

소설은 그들의

사랑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특별한 사건을 겪기보다는 두 사람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루이스는 그녀와 함께 밤을 지내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애디 역시

루이스의 자상한 면에 반하고,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여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들의 이러한

관계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치 현실 속 사람들이

관심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과 유사하다.


루이스의 딸과 애디의 아들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남부끄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들의 대답이 인상 깊다.


그들은 더 이상은 남 눈치를 보며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평생을 눈치 보며 살아왔지만,

그럴 때마다 후회가 남았다는

말이었다.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아빠, 이건 옳지 않아요.

아빠는 사실 애디 무어를
좋아하거나
잘 알지도 못했잖아요.

네 말이 맞다.
좋아하거나 잘 알지도 못했지.

그런데 바로 그게 내가 지금 좋은 시간을 보내는 요인이란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
스스로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알고 봤더니 온통 말라죽은 것만은 아님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그들의 사랑은 단지

'에로스' 적이지 않았고

그들 존재의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사건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낄법한

섬세한 심리 묘사는 몰입감을 높이기 충분했다.



노인

그들의 사랑은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거나 무시받았다.


애디와 루이스는

자신들이 노인이기 때문에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드러낼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그들의 자식들은

노인들이라는 이유로 남부끄럽다며

그들의 사랑을 반대했다.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기에

우리가 신념을 가지고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은

그들이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 후반까지 그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나누고 이후 성관계를 맺기로

합의하지만 노인이 가지는

신체적 한계 때문에 실패한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사랑의 깊이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노인들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원숙한 사랑은

그들의 행동에서도 묻어난다.


상해서 버리기 쉬운 생과일보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과일통조림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다.


관계


슬프게도 그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애디가 가족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손자를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전통적인 '가족관'에 무너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애디와 루이스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전화 통화를 하며 이야기로

밤을 가득 메운다.


최근에는 이렇듯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문제가 많다.

이제는 꽤 알려진 비혼주의자나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불거진 '졸혼'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이제는 우리의 전통적 가족관을

바꾸어야 할 때가 왔음을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더 이상 비혼을 지향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결혼을 강요할 수 없다.


감히 누가 이들의 공동체 생활이

진정한 '가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관심


앞서 이 책은 켄트 하루프의

유작임을 밝혔다.


이 책의 작가는

소설 속 애디와 루이스처럼

자신도 그런 관계를

맺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가 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실을

물어보면서다.


이제는 '당신의 관심이 부담스러워요'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 속 루이스의 대사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내키지 않는 관심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고쳐줄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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