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까만 눈동자의 떨림.그 낯선 표정이 고스란히 전해온다.ㅠ
퇴원한 나에게 저녁을 사던 그녀가 말했다.
시력은 나빠졌어도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까만 눈동자의 떨림.
그 낯선 표정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퇴원 후 어느 날
중학교 시절에 알게 된
그녀를 ‘장 씨’라 불렀다.
장 씨는 아담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단발머리에
웃을 때 눈이 살짝 감기는 귀여운 인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해바라기아파트 5층에 살았다.
그녀의 집 전화번호 뒷자리는 ‘8210’이다.
우린 같은 속셈학원을 다니며 영어 수학을 배웠다.
당시엔 동네 곳곳마다 속셈학원이 참 많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학원들마다 원생들에게
학원 비 강탈하려는 '속셈'이었을 수도~ㅋ;
그리고 다른 고교로 진학한 이후에도
그녀와 나는 같은 미대 입시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웠다.
고교시절 같은 반 친구
M양도 같은 학원에 다녔다.
M양은 체구가 큰 편이고
짧은 갈색 단발머리에 피부는 하얀 편이다.
늦둥이라는 그녀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의 소개로 함께 가까워진 우리 셋은 늘 함께였다.
방학이 되면 미술학원 근처인
M양 집에 모여 우리 셋은 떡라면을 끓여먹곤 했다. 그날도 M양 집에 모였는데 M양이
장 씨와 나를 보며 은밀하게 속삭인다.
그녀의 솔깃한 제안에
우리는 가슴이 쿵쾅거린다.
“그런 비디오테이프..
호기심이 발동한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녀의 자시대로 복장을 갖춘 우리는
M양의 집 근처의 비디오 가게로 출동했다.
결국 와인 빛 립스틱으로
나름대로 어른스럽게 단장을 한 그녀가
재빨리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의
에로물을 카운터에 당당하게 올린다.
사실 그 당시 90년대엔 동네마다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 성행했고
‘포르노’라는 장르보다
‘에로 비디오’라는 말이 잘 통했다.
그렇게 빌려온 비디오를 보기 전
우리는 떡라면을 야무지게 끊였다.
그리고 이제 난생처음으로
에로 비디오를 감상한다.
이내 펼쳐진 기괴한 장면들에
충격을 받은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젓가락을 대지 못하고
떡라면은 점점 국물 없이 불어간다.
그때 장 씨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녀의 실토에 숨죽여 비디오를 보던 모두가
까르르 웃었다. 에이, 역시 우리에겐
이런 거 비위에 안 맞는다.
젠장. 우리가 메뉴 선정을 잘 못했군.
이런 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빵빵 가슴 엉덩이에 애교 섞인 성우 콧소리다.
그에 반해 남자 등장인물 대부분이
동네 아저씨, 정력 좋다는 영감님들..
아마도 이런 비디오를 즐겨 찾는 주시청자 층에 맞춘 거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 같은 여고생들은 이런 거 안 볼 테니ㅋ.;
우린 이제 비디오를 꺼내고 불어 터진
떡라면을 마저 먹었다.
물론 그 후로 다시는
그런 비디오를 찾지 않게 되었다.
나의 망가진 사춘기의 기억 한 토막이다.ㅋ;;
성인이 된 후 장 씨는 디자이너가 되었고
‘8210’은 그녀의 휴대폰 뒷자리가 되었다.
앞으로도 그녀와 함께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던 장 씨와 M양 모두..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
나의 연락을 피하는 그들에게
자꾸만 연락을 시도하는 내 모습이 너무 질려서...
모두의 연락처를 삭제했다.
이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점점 열린다. 나의 아픈 기억들은 고스란히 작품으로 담기가 시작한다.
단순히 시각장애 때문만이 아니라
길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새로 이사한 집을 벗어나면 점점 희미해지고
이내 깜깜해지던 나의 ‘저질 기억력.’
사실 사고 나기 이전의 기억들은
이제 하나하나 너무 잔인할 만큼 아프고 선명하게 돌아왔기에..
기억을 못 하게 된 지금의 현실을
더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걸을 수 있게 되니 내가 사는 지역이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고 사고 전까지
쭉 한 곳에서 살아왔기에 치료기관들과 가까워 이사 온 이 동네가 아무래도 낯설다.
탈골된 오른쪽 무릎과 그 아래 종아리뼈의 줄기가
내려갈 때 힘이 가해지면서 부실해진
오른쪽 발목뼈까지 더욱 아려온다.
이렇게 내리막길은
나를 늘 긴장시킨다.
지금까지도.
집까지 가는 동선을 자주 잊다 보니
나중에는 잃어버린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비법도 생겼다.
그건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그쪽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위치를 물으면 되더라.
늘 지루하고 길을 잃어
헤매던 나의 막막한 기억들은
이제 글로 나온다.
우린 기억을 못 하는 걸
'형광등이 나갔다'는 표현을 한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