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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Nov 08. 2019

#장애이해 내가 굴러들어 온 '돌?!'

장애인복지관을 벗어나 드디어  일반인들과 그림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ㅜ

 “뭐?! 나보고 시끄럽다고?!~

(포도)씨~발라먹을... 여기가 무슨 고시원야?

졸~ 어이없지 않냐? 헐..”   

 

굴러들어 온 돌은 절대로..

박힌 돌을 빼려 해선 안 된다!;     


-학원생활 (2010~2012)  

             

드디어 이제 결심을 실행할 시기가 온 거 같다.

꽁꽁 얼어붙었던 미끄러운 길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다. 이렇게 봄이 찾아오니 마음은 더 조급하고 싱숭생숭하다.

“나 이번 한 번만 믿어줘!

꼭 거기서 해야 할 거 같아! 정말 잘해볼게!”  

엄마가 보기에는 그냥 장애인복지관에서 취미로 하면 좋으련만 일러스트 학원을 고집하는 딸이 영 못마땅하다. 게다가 취미라고 하기엔 학원 비가 너무 비싸다. 그래도 해보겠다고 이렇게 기를 쓰는 딸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한다.

 “그래. 일단 한 번 해봐!”      


그렇게 엄마를 설득해서 허락을 받아 집에서 쓰던 스케치북을 챙겨서 학원으로 향한다. 2호선 신촌 역에서 나와 작은 비탈길을 쪼르르.. 내리 걷다 보면 차도가 나오고 걸어 내려가다 보면 꺾어지는 오른쪽 골목은 눈에는 잘 안 보이니까 발자국 수로 기억해뒀다. 그리고 학원가는 길목의 간판을 외워뒀다. 신촌 역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학원 입구다.

지하로 조심조심..      


학원은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화실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사실 고교시절 입시 미술학원을 다녔을 때 이후론 그림을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다. 입시에 석고상 데생을 주로 했기에 이젤을 펴서 그림을 그렸는데 여기는 그런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작업 책상이 전부다. 각각 개인마다 물감이랑 붓통, 도구를 늘어놓은 걸로 봐서 자리가 지정되어 있는 듯했다.      


새로운 원생이 와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 대학생이 대부분인 원생들과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자리를 둘러보다가 조명 빛이 그나마 제일 약한 세 번째에 자리를 채웠다. 공간이 넓어서 편하긴 한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한다. 나의 앞자리 원생이 잠시도 쉴 새 없이 지저귄다. 경쾌한 음악소리도 그녀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로 덮일 만큼 조잘조잘..


처음에는 나도 그냥 무시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변함없이 시끄러운 김 양에게 조금씩 화가 치민다.


‘이제 그만 좀 입 닥쳐!’

시력이 이렇게 된 후로 청력이 무척이나 예민한데 해도 해도 너무 하다. 작업실 자기 혼자 쓰나?! 내가 드디어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저기.. 너무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는데.. 좀 조용히 해줄래요?” 아,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돌려서 말할 것을.


그러자 김 양은 처음엔 못 들은 듯 무시하더니 내가 다시 크게 한 숨을 내쉬자 이내 폭발했다! 잘 보이지는 않아도 시뻘건 눈알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무.. 무섭다. 책상을 내리치던 그녀가 속사포같이 랩처럼 내뱉는다.

 “아, 신~발!!... 여기가 무슨 고시원이야?!

그림 혼자 그려?! 그럴 거면 여기 왜 기어 나와?! 집에서 혼자 조용히 닥치고 그리던가.. 십장생!!”


그러더니 주변 애들에게 말한다.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 들었냐?!

졸 어이없지?ㅋㅋ” 그러고 보니 김 양은 학원을 오래 다녔나 보다. 그녀를 따르는 원생들이 제법 많다. “네가 어리니까 참아 참아~ ㅋㅋㅋ”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들의 대부분이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그림 작업을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오랫동안 앉아있는 게 무릎이 너무너무 시리다. 그때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있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냥 오전에 일찍 와서 점심 먹기 전에 가기로 했다. 어차피 도시락을 함께 먹을 친구도 없으니까. 이제 서른 살에 접어들어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도무지 안 통하는 걸 보면 내가 나이 많이 먹었구나. 이곳에서 실감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기 그림이 젤이라고 자부하던 김 양은 어느새 학원에서 사라졌다. 꺄홋!

   

학원 수업은 매일 바쁘게 돌아간다. 월요일 손 원장의 서양화 수업을 시작으로 화요일은 김 강사의 동화 일러스트 수업, 수요일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아이완 작가의 일러스트 수업, 목요일이 글 수업, 나보다 몇 살 많은 강사 수업은 금요일...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는 주로 강사들 수업이다.

나는 이 중에서 아이완 강사의 수업이 가장 좋았다. 당시 다른 원생들의 빠르고 뛰어난 손놀림에 나는 무척이나 뒤처지고 주눅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수업을 받으며 진짜 멋진 작품을 구성하는 건 속도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라는 기본 이치를 깨닫게 된다.  


 -아이완 쌤의 그림 수업 ;

아래 그림의 다음 단계를 상상하시오.)

(나는 바깥과 반대되는 상황을 상상했다.

지금보면 많이 서툴지만.. ^ ^;)   

-이 다음 상황... 문제 ^ ^


아이완 작가는 40대 초반이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문과로 진학했으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에 금세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한국예술 종합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고. 아이완(iwan)이라는 필명은 작가가 만들었던 캐릭터의 이름 '나는 원한다'의 영어 'I want'의 글자를 조합해 t를 뺀 것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의 그림을 보니 신비로운 느낌이다. 아이완 강사는 본인의 수업에 따라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 “만약 당신이 ~라면?‘이라는 형식 속에 그림이 진행되는데 생각을 하고 고민이 더 해지면 재미있는 작품이 탄생된다. ‘왜 이런 생각을 했지요?’ 그녀의 수업을 들으며 나의 생각이 점점 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떤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해볼까요..? 전에 수업했던 거 마무리됐나요? 허허허~” 학원 수업 중 동화 일러스트를 지도하던 50대의 김 강사는 크지 않은 키에 살집이 제법 있고 안경을 쓴다. 그는 수업시간이 아닌 주말에 간혹 학원에 자율학습을 하러 들러 그에게 연락을 하면 잠시라도 들러서 그림을 지도해준다. 그리고 다른 원생들에 비해 많이 뒤처지는 진도와 실력에도 위축되지 않게 늘 좋은 말을 해준다. 언젠가 주말에 그림을 봐주겠다는 그의 호의에 너무 감사해서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특별 식을 준비했다.    

  

먼저 호밀식빵을 바삭하게 굽는다.

그리고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잘게 썬 양파를 후추를 많이 넣어 들들 볶다가 빵에 올린다. 계란 프라이를 얹고 그 위에 치즈를 올리면 치즈가 사르르 녹는다. 마지막으로 머스터드소스와 케찹을 모양내서 곁들이면 ‘양파 치즈 샌드위치’ 완성!


오늘도 특별 식을 먹으러 오는 그의 한쪽 다리가 약간 절뚝거리며 떨린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양파 치즈토스트를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지금 돌아보면 나에게 만약 그 시기가 없었다면 그냥 예쁜 그림만 따라가려 했을 듯.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의 특별식 치즈 양파 토스트가

특별한 수업의 수강료가 되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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