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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Nov 13. 2019

#장애이해 ‘포도주 빛’ 얼굴의 원장님

-다른 이들 아픔에 더 마음을 쓴다!

“얼굴은... 되게 미남인데..
피부 땜에 너무 아까워요!”     

원장의 보라색 얼굴이 안타까웠다.     


장애로 인한 고통을 겪고 나면

다른 이들의 불편함에 더 마음을 쓴다.     


그도 그랬을까...?  

   

나의 불편한 모습을 보면.

    

-학원생활 (2010~12)




“언니, 우리 아침 먹으러 가요.               

컵라면은 이제 지겨웡~”               

 눈에 익은 통통한 원생이

옆 자리에 엎드린 원생의               

 담요를 걷어내며 말한다.      


 “아휴~ 작업 다 끝내고 내가 깜빡 잠이 들었네.                

그래! 어제 야식 김밥 네가 쐈으니까

아침은 내가 쏠게. 우리 국밥이나 먹자!”                          

요즘 이른 아침의 학원 풍경이다.                

나는 아직도 그들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녀들은

오늘도 학원에서 밤을 지샜나보다.

아예 담요와 쿠션, 그리고 김치와 컵라면을 구비해두고 밤늦게까지 학원을 지키는

원생도 꽤 많이 있다.

      

공모전에 제출할

그림 작업 마무리에 바쁜 그들.     

하긴 비싼 학원 비에 등록한 시일을

알차게 이용해야 하니.      


부럽지만 내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일.                역시 그림 작업시간과 실력은 비례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하는 거 없이

나만 뒤쳐져 시간만 빨리 흐르는 게

덜컥 겁이 난다.                         

 ‘휴, 내가 찾은 길이

      과연 맞는 걸까?’           


우울한 마음에

오래간만에 원장실을 노크했다.                

“똑똑..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그러자 그림 작업을 하던 원장이 대답한다.               

 “네. 들어오세요.”   

일단 무턱대고 본론부터 꺼냈다.   

       

“선생님! 다른 원생들처럼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싶은데

저는 그렇게 따라갈 수 없네요.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오전 시간만 수업을 받으니.

그러기엔 학원비도

너무 부담스럽고요.

학원 비를 지원해달라고 하기에

집에 너무 미안해요.”


얘기하다 보니까

나의 사정이 너무 답답해서

목구멍에 뜨거운 게 울컥 치민다.

막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애써 눌러 참았다.

그러다가 원장의 얼굴을 보는데

그의 얼굴을 반 이상 덮고 있는

포도주 빛 반점이 꿈틀거린다. 그가 말했다.                          

“주혜 씨 사정은 저도 안타까워요.                

하지만 불편하다고 모든 원생들의 사정을 봐드릴 수가 없네요. 대신 열심히 하시는 거 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손 원장은 서양화를 전공,

동화 삽화 작업을 가르친다.     

    그의 수업에서 배운  

땅속의 벌레 이야기 삽화 (2010)     


하긴 최근에도 시골에서 혼자 올라와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남자 원생 사정도 봐줬는데 그는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갔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원생들의 안타까운 사정까지 마음 써주는 손 원장에게 미안하다. 학원 비가 비싼 이유도 여러 명의 강사를 초빙하는 것과

원생들을 많이 받지 않는 대신

각각의 자리를 고정시켜서

그림 작업하기 편하게 했다.

(나에겐 그닥 필요 없는 장기 대여ㅜ)                          


언제까지 해야 할지

기약 없는 비싼 학원 비를 지원해달라고

집에 손 벌리기도 미안하고 이제 어쩌지.


첫 달의 학원 비 39만 원을 낸 후

한 달이 지나 학원에 일찍 나온 나에게

원장이 다가오더니 말한다.        


 “열심히 하시니까..

학원 비 반만 받을게요.      

앞으로 20만 원..

다른 원생들에겐 절대 비밀로 하시고. 허헛..”                

너무너무 감사하고 이제 힘이 난다!      


게다가 나의 작업공간에

수업시간마다 그린 그림들을 모아놓은 스크랩북이 정리가 안 돼서 널브러진 책상을 보던 그가 며칠 후 스크랩북을 담을 수 있는

수납가구를 만들어주었다.     

 '와우.. 최고다!'     

  -손 원장이 만든 수납 가구 (2010)     

 #장애이해,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인식개선, #장애,#일러스트, #미술치료, #일상, #미긍      

사실 그의 포도주색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 피부를 실제로 본 경험이 없었기에

화상을 입은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 성형 기술도 많이 발전했는데

피부를 왜 그대로 둘까?

나의 오지랖이 발동한다.               

“화상을 입은 피부는

성형외과에서 수술받아 보시면 어때요?”      

아무렴 그도 그런 고민이 없었겠는가.      

그가 가만히 그냥 웃기만 한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 기쁜 소식과 원장 이야기를 전했다.               

“정말 힘이 나! 원장도 피부만 아니면

잘 생긴 얼굴이야~”                

그가 나의 불편함을 이해해주지 않았다면

학원을 그렇게 오랜 기간 다니기는

부담스러웠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다.               

“원장님이 그렇게 배려해주시고

 너무너무 감사하네!     

 식사대접이라도 해 드려야 하지 않겠니?”

엄마가 하는 말도 맞다.     

 “그럴까? 내일 원장에게 물어볼게!”                



“엄마가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식사대접을 하고 싶대요. 어떠세요?”      

그러자 원장이 말한다.               

“저 아무거나 안 먹어요.

그냥 말씀만 고맙게 받을게요.! 허허..”                           


하긴 언젠가 그의 노모가

음식을 참 잘 챙겨주셔서

본인의 식성이 아주 까다롭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엄마에게 이 얘기를 전하니

엄마가 쓸쓸히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와.. 원장님 노모가

아직도 원장 음식을 챙겨주신다고?      

음.. 이해가 되네. 원래..

자식이 불편하거나 짝을 못 찾으면..      

혼자 있는 자식을 믿지 못해서

에미가 오래 산대더라.

결혼 안 하는 신부님의 노모들도

끝까지 눈을 못 감는대.

내가 앞으로 건강해서

너를 지켜주면서 오래 살아야 할 텐데

어쩌지..? 맨날 이렇게 아프니. 휴..”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 나의 곁에 계시면

힘이 되겠지만 못난 딸이 못 미더워 눈이 안 감긴다는 건 참 슬픈 현실이다.

내가 엄마를 안심시킨다.               

 “두고 봐! 내가 얼른 잘 돼서

엄마를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킬게! 알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손 원장의 보라색 반점이

단지 화상을 입은 자국이 아니라는 걸.                

자료를 찾아보니 한쪽 얼굴 뒤덮은      

적 포도주색 반점을

 ‘스터지 웨버 증후군(Sturge Weber Syndrome)’이라고 한다.현재까지 이 질환의 발병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와인 얼룩점은 얼굴의 측면에 위치하여

영구히 유지된다고 한다.  

                                                      


그에게서 정말 다행인 소식이 들렸다!               

늦은 나이에 드디어 결혼을 했다고 한다.      


신부는 전에 사귀던 대학 후배라고 했다.      

그의 얼굴에 늘 웃음꽃이 피니

이제 보라색 반점도 눈에 안 띈다.                                    


그리고 더더욱 감사한 소식.               

 몇 달인가 있다가 ‘쉰둥이’ 아들을 낳았다고..!                


그의 아이에게 원장의 반점이

유전됐을까 걱정이었는데 천만다행으로

깨끗한 피부의 개구 진 아들이라고 했다.      


자신이 장애로 불편해지면

다른 불편한 이들에게도 더 마음을 쓴다.      

그러다가 보면 이렇게

좋은 일들이 생기는구나.                

사실 그동안 그에게

제대로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지 못 했다.     


나중에 출판한 나의 에세이집에도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만약 그가 아니었으면 이뤄낼 수 없었을

지금을 알기에  그가 더더욱 고맙다.

그의 행복을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빈다.          


“원장님 노모가 이제
 마음이 편히 놓이겠다!”          
부러운 마음에
엄마가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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