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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Nov 28. 2019

#장애이해 Q: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려요?

A: 대답 전 먼저 당신에게  묻는다. 본인에게 그림이 얼마나 절실한가?

막막함에서

‘빛’을 찾기까지...

 (2012.05~ 13.01)   

              

-자존감 [self-esteem]:

외부에 의한 인정만이 아닌

자신내부에 의해 얻어지는 존엄과 가치.

(19/펜드로잉/psd)     


작년 사고 때문에
학원에도 못 다녔는데...
 에효, 아니다.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저 기억하시나요...?”               


전화를 걸기 전

수차례 미리 연습을 해본다.           

연락을 안 하던 그에게

불쑥 전화하기가 너무 어색하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 학원에 나와도

나의 그림작업을 봐주러 학원에 들러준

정말 고마운 분. 김 강사다.       


최근 몸이 회복되어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의자에 앉기에는 무리다.      


조금이라도 다리를 굽히면

아직도 불편한 오른쪽 무릎이      

마치 망치로 세게 두드리듯

먹먹하게 아려온다.


이제 봄 햇살이 비쳐오니

또다시 불안해졌다. ㅠ

                    



선생님..

안녕하세요?

건.. 건강하시지요..?”  

        

내 전화에 쾌활하고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네. 주혜 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전에 사고소식 들었는데

 이제 몸 좀 괜찮으세요?’      

    

내 안부를 묻는 그의 반가운 음색에

 불쑥 본론부터 꺼내버렸다.          


“아직 학원에는 다닐 수 없고요.      

상담을 받고 싶은데 제가 선생님 작업실을

찾아도 될까요?”


         

감사하게도 내 부탁에 김 강사가 응했고      

그의 일정이 빈 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았다.                

그는 학원생들이 열심히만 한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본인처럼 몸이 불편한

나의 도전에늘 힘을 더해주었다.                


“거기 꼭 가야 하니?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아휴. 하튼 도착하면 전화해!”

엄마의 걱정을 뒤로한 채

그의 작업실로 출발.           

먼저 빵을 좀 사서 배낭에 둘러매고

 2호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혜화 역까지 가려면

 4호선으로 갈아타는데


 오전 시간이라 지하철은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빈다.     


 사당 역에 도착,

거의 4호선 끝에 혜화 역이 있구나.      

도착해서 이제 혜화 역 2번 출구로 가는

아주 긴 계단이 보인다.   

  

다리가 불편해도 계단에 오를 땐

절대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운동 삼아 걸어야지.

집에서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리는구나.      


이제 다 온 건 줄 알았는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마로니에 공원을 옆으로

낙산공원 방향으로 쭈욱 올라오세요.

 거리가 좀 될 거예요..’              



작업실에 가는 여정은

너무 가파르고 힘이 들었다.


몇 번이고 쉬었다 갈 만큼.     


김 강사 본인도 다리가 불편한데

이런 곳에 작업실이라니..      

아, 맞다. 그는 오토바이랑 차가 있었다.     


 혼자 궁시렁 거리며

혜화 역에서 40분을 오르니

 벽화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오른쪽 시선이 차단된 나는

 그곳을 못 본 채 끝까지 오르고 말았다.

 엥..? 이건 등산코스인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혜 씨! 아무래도

작업실을 많이 지나친 거 같아요.

 지금 어디세요?’           


아.. 다리에 힘이 쫙 풀리는 게

눈 앞이 노랗다.      


결국 두 시간 반을 헤매다가

기진맥진 한 끝에

겨우 도착한 그의 작업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찐덕찐덕 하다.       



그의 작업실은

벽화가 그려져 있는 단독주택이다.      


1남 1녀의 자녀가

함께 거주하는 가정집은 1층이고     

작업실은 다락방 식으로

사다리에 오르면 2층에 있다.      


어쨌든 이렇게

김 강사의 얼굴을

 아주 오랜만에 보니 너무 좋다.      


갈증에 물 한 통을 다 비우고

 

숨을 돌린 후 상담이 이어졌다.       



그의 작업실을 둘러보니

작업 중인 그림들과 물감 냄새와

오래되어 색 바랜 팔레트,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그림 동화책들.


그리고 작업실을 함께 쓴다는

뿔테 안경의 퉁퉁한 인상의 후배 그림 작가가 있다.

마침내 김 강사가 나에게 말한다.

           

“여기까지

찾아오기 많이 힘드셨죠?

몸이 편한 친구들도

 초행길엔 고생이라던데..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그에게 싸온 모카빵을 꺼내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갑자기 닥친 사고 얘기, 다리 치료 중인데

 손이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다가 보니...

 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내 김 강사가

커피에 빵을 찍어먹다가

담담하게 그러나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울 거면

 여기에 다시는 찾아올 생각 말아요.

 이제 그림 그리세요. 그럼 되잖아요.”


내가 눈물을 말끔히 훔치며 말했다.          

 “네.. 그럴게요. 그리고 강사 비는

따로 챙겨드릴게요.

얼마 드리면 될까요?”   

      

그러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요. 강사료는 전에 학원에서
저한테 만들어주던 토스트로 받겠습니다.       
 대신에 중요한 거.. 그림 100장을 반드시
 채워 오셔야 검사를 해드립니다!”
         

그는 학원 다닐 때

내가 감사한 마음에

 토스트를 만들어 대접했던 걸

 기억하고 그걸 주문한다.


 매콤하고 달큼한 머스터드 소스를 두른

나만의‘양파 치즈 계란 토스트-’          


사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힘들지 않게 그렸던 거 같다.


하지만 100장을 채워야

검사를 해준다는 그의 말에

 나는 자석처럼 빨려 들어간다.


 근데 어떻게 100장을 채울까?

눈이 불편해진 후 늘 달리 보여서

하나를 그리더라도 지우기가 바쁜데. 어쩌지?

내 고민을 들은 김 강사가 쿨 하게 말한다.   

        

“그럼 보이는 대로 그리세요.

지우개는 쓰지 말고요. 틀려도...

자연스럽게 틀리는 거지요. 허허..”

                         

처음엔 한 달에 100장을 채우고


그 담엔 3주에 100장.. 2주, 1주일에 100장씩..          



이제 혜화 역 2번 출구를 오르는


 104개의 계단을 헤아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시간과 자는 시간,


식사 시간 개인 시간 약간 말고는

 

100장 채우는 볼펜 드로잉에 몰입했다.    

  

낙산공원으로 가는 고개는


 너무 가파르고 좁아서

택시를 잡아타도 승차거부당한다.


 그림 100장을 채우고 나면

그 담날 새벽부터 양파 치즈 토스트 준비에 바쁘다.


이 토스트의 생명은 양파다!


사실 오른손이 불편해지면서

칼을 다루기가 쉽지 않다.


힘이 없는 손으로는 작은 칼보다

큰 부엌칼을 이용해야 한다.  

    조심조심..


크고 싱싱한 양파를 가늘게 채쳐서

후추를 듬뿍, 청양고추 약간 넣어

매콤하게 들들 볶은 후

 호밀 빵 사이에 계란프라이,

그 위에 치즈를 올리고 양파를 가득히 뿌려준다.


내가 먹을 도시락과

김 작가와 함께 있는 박 작가의 몫까지

 세 개의 토스트를 포장한다.

이제 두유까지 챙기면 완료!  

           



'그렇게 100장을 채워야

 검사를 맡을 수 있는 그림숙제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처음엔 아주 기초적인 사물

 연필, 볼펜 같은 필기도구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몇 번을 100개씩 채우고 나니

 그 후엔 새와 네발 동물의 정면과 측면 그러다가 전신.


나중에는 어린아이부터 어른,

노인의 정면과 측면, 전신... 점점 주문이 디테일 해진다.    

 

한 명에서 여러 사람의 모습들과

상황 설정 배경을 담고 마지막엔 그림과 함께

간단한 생각을 담기까지.           

나는 조금씩 그림으로 생각을 담아내고 있었다.


                                  

"솔직히 미긍 작가는
그림도 별론데 다들 왜..
 미긍만 잘 봐주는지 도통 모르겠어.
 
킁~.. 본인 생각은 안 그래?”
     

점심으로 순댓국을 함께 먹으며

 막걸리 한 잔 걸치던 박 작가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나의 도전을 반기는 건 아니었다.

강사의 작업실에 얹혀살던 박 작가는

 내 실력이 점점 향상되고..


김 강사가 신경 써주는 걸 못 마땅해했다.      

이제 나를 대놓고 떨떠름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집에 온 나는

그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 작가는 내가 

 그리지도 못하는데

 사람들이 좋게 봐주는 게

항상 맘에 안 드시죠?                    



당신 걸음으로 혜화 역에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 작업실을 저는


서너 번씩을 쉬었다가 오르네요.                         



당신이 보기엔  그림이 

하찮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절실함’입니다.          


그렇게 남의 그림을 

함부로 평하지 말아 주세요.'   


                 

그 후로 박 작가는 단 한 번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보다 4살이나 많은

참 못~ 난 사람!;   

    


              

8개월이 흐른 후 한 겨울이 되어

 도로가 꽝꽝 얼어붙기 시작한다.

 이제 혜화 낙산공원 가는 경사로가

미끄러워 김 강사가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할 때까지

나는 100장 드로잉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결국

 '볼펜 드로잉'에서만큼은

 김 강사를 앞선다는 평을 듣게 된다.

(2013.03)   


           그에게 강사 비를 대신해서

 토스트를 8개월 동안

지불하다가 보니..


이제 양파를 써는 소리도 

너무 듣기 싫다!


  맛에 너무..


질려버려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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