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과 희망

by 자정의 크리스마스

균열이 처음 나타난 건 무더운 열대야가 지속되던 여름밤이었다. 은하수를 잊어버렸던 인류가 다시금 그 강을 떠올리게 하는 희고 반짝이는 균열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천문학자들은 서둘러 이 균열 사이로 나오는 빛을 분석하였고 이 빛들이 지구 근처의 별들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밝혔다. 우주 지도를 뒤져 이 균열 너머는 아주 먼 우주와 이어져있음을 알아냈지만 그 균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어렴풋이 도 알지 못했다. ​


지금의 지구는 모든 것이 고갈되어 그 수명을 다해갔고,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이 1년 후에 도래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측이 떠돌았다. 모든 과학자가 입모아 말하는 재앙 이후의 지구는 인류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라고 예상되었기에 개개인 혹은 국가가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지하시설 따위를 지어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 균열은 희망적이었다. 인류가 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구 근처에는 인류가 생존 가능한 환경을 가진 행성이란 없었지만, 균열은 마치 웜홀처럼 인류가 닿을 수 없었던 더 먼 곳으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했다. 과학자들이 떠들썩하게 밝혀낸 이 소식은 사람들을 제2의 지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게 했다.​


균열 너머의 세상도 그곳이 더 먼 우주라는 사실 외에는 그 무엇도 약속해 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신이 내려준 마지막 동아줄과 같음을 모두는 직감하고 있었다. 재앙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인류는 균열 너머로 보낼 우주선을 만들었다. 몇 명의 인류를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란 이름으로 떠나보내기 위해. 재앙이 도래하는 것보다 빠르게 우주선은 지어졌고 마침내 선택된 일부의 인류는 균열을 통해 떠났다.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우주선에 신호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지구 위 남겨진 어떤 이의 편지가 도착한다.​​



지구를 떠난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창백한 푸른 점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이곳 지구는 오늘도 안녕합니다. 비록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시한부의 삶이지만요.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푸른 하늘과 바다, 녹음이 짙은 나무들, 계절에 맞게 불어오는 바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우면 생이 또렷해지는 것과 같이 이 기억들은 아직도 사뭇 또렷합니다. 어쩌면 이런 기억을 가진 마지막 인류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


종말을 기다리는 우리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듭니다. 종말을 맞이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종말이지 지구의 종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고, 그저 인류가 살아가기엔 힘들어질 뿐이죠. 아마 이 생태계에 맞는 어떤 생명체가 번영하여 지구를 또 지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그 옛날에 우리처럼요. 그런 예측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가깝고 확실한 불행과 멀고 막연한 희망. 저는 지구를 떠나고 떠나지 않고의 문제를 이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가 자유의지로 한 선택은 아니지만 확실한 불행인 지구에 남는 것은 제 생각과 다행히 일치했습니다. 어둠뿐인 우주 속에서 수많은 별과 행성을 보는 일은 즐겁긴 하겠지만, 저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희망을 붙잡으며 살기엔 마음이 꽤나 약한 사람입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종말을 기다리며 후회 없이 매일을 채워나가는 요즘의 일상이 그 이전의 바쁘고 막연했던 현실보다 오히려 평온하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삶도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명확함에도 그 날짜를 모르기에 불안하지만 재앙은 날짜가 짐작가능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더 초조함 없이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재앙이 알려진 초기와 다르게 이제는 사람들도 폭풍이 오기 전날 밤 같은 고요를 찾은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곳 작은 우주선 안,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까, 아님 사명감에 불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대들은 혹시 지금 두렵거나 떨리지는 않으십니까. 전 오히려 당신들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생의 불확실성으로 불안하지 않을까 감히 상상했습니다. 이상하지요, 죽음에 가까운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당신들을 보는데 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생을 떠올리는 걸까요.


​그대들이 떠나는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겠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할 경이로 가득 차길 바라며 마지막 통신을 이만 줄입니다. 지구의 마지막 인류로부터 신인류에게로 보낸 이 통신이 닿기를 바라며...


​지구에서, 남은 인류가 보냄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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