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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Aug 02. 2020

어설픈 산행

연희동 일상 #12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산행이 그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다. 다시 내려올 산을 왜 꼭대기까지 가는 거야? 생각하고는 했다. 운동을 하려면 차라리 넓고 쾌적한 헬스장이나 조깅을 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최근에 동네 산에 문득 올라가 보기로 했다. 정말 문득 가보고 싶었다. 얼음물을 텀블러에 담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초코바도 샀다. 얼마만의 산행인지 계산하기도 어려웠다. 어느 정도 힘들지도 상상이 되지도 않았다.

시작부터 힘이 너무 들었다. 마스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고비 넘기니 호흡이 돌아왔다. 동네 산은 내가 생각하는 산이랑은 조금 달랐다. 올라가는 길에 음악도 나오고 분수도 보였다. 산이 아니라 산책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곳처럼 보였다. 여유롭게 그곳을 올라가는 어르신들과 가족들이 많았다. 어설픈 옷과 신발을 신고 힘들어하는 건 나뿐이었다. 15분 만에 힘이 들어 의자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힘을 내서 20분 정도 더 올라갔다. 쉼터 같은 곳에서 초코바를 먹었다. 초코바(자유시간)도 오랜만이었다. 달고 맛있었다. 새소리가 났고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종종 이곳에 와서 혼자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산행을 ‘어설픈 산행’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장비도 옷도 경험도 목적지도 어설픈 산행.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산행이 조금 즐겁게 느껴졌다. 어설픈 게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어설프게 김밥을 한 줄 사서 어설프게 산을 올라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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