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그림소설 #09
마술사 피터는 늘 시리얼만 먹었다. 그는 주말 신촌 거리에서 사람들 상대로 마법을 보여주고 돈을 번다. 그의 마법 기술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기에 돈벌이가 되었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일주치 생활비를 한 번에 벌 수 있다고.” 그는 내게 말했다. 피터는 내가 즐겨가는 바에 자주 나타나서 맥주를 마시고는 했다. 안주는 먹지 않고 그저 맥주만 마실뿐이다. 어느 날 바 화장실에서 그가 내게 먼저 인사를 했고 그때부터 마주치면 옆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어느 날 내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니. 아직까지는. 난 프로라고.”
“주로 어떤 마법을 하는데요? 마술사 주종목 같은 게 있잖아요?”
“원래 좋아하는 마법은 따로 있는데 지금은 카드 마법을 주로 하고 있어.”
우연히 신촌을 지나다가 그의 마술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중고서점을 가는 길이었다. 방해될까 봐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그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유명 연예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카드마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대부분 티브이에서 보던 마법들이었지만 실제로 보면 순간 박수를 치게 된다. 카드가 공중에 떠다니기도 했다. 중요하건 그는 실수를 절대 하지 않는다. 진정한 프로다.
“피터, 왜 안주는 안 먹어요?” 내가 시켜놓은 소시지 안주가 많아서 그에게 권했다. 하지만 그는 질색을 하며 맥주를 마실 뿐이었다.
“난 시리얼만 먹어. 물과 우유, 그리고 시리얼, 마지막으로 맥주!”
“농담이죠? 사람이 시리얼만 먹고 살다 간 쓰러질 것 같은데?”
“난 괜찮아 마법사니까.” 그는 내게 익살스러운 잉크를 하고 웃었다. 조금 느끼한 잉크 하고 생각했다. 그날 피터의 집에 처음 가게 되었다. 내가 끝까지 믿지 않는 눈치를 하자 집이 바로 옆이니 증거를 보여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맥주를 마시고 가라고 피터가 권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바를 나와 그를 따라갔다.
그의 집은 반지하 원룸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곰팡이 냄새가 희미하게 내 코를 찔렀다. 방에는 마법 도구들과 침대가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작은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내게 던졌다. 그리고 주방 선반을 열어서 보여주였다. 선반 안에는 각종 시리얼이 가득 차있었다.
“자, 이제 믿을 거지?”
“와...이걸 미리 사두시나요?”
“쌀을 미리 사두는 것처럼 난 시리얼을 미리 사두고 먹어. 이것도 금방 다 먹어버리지. 난 시리얼만 먹으니까.”
그는 배가 고프다면서 시리얼을 꺼내 우유에 말아먹었다. 작은 냉장고에는 우유와 맥주 가득 차 있다. 맥주와 우유만 있는 냉장고를 보니 왠지 기분이 쓸쓸해졌다. 나는 침대에 앉아 맥주를 조금씩 마셨다. 그는 시리얼을 한 그릇 빠르게 먹더니 기분이 좋은 듯 맥주를 마셨다.
그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잠을 잤다. 지하철이 끊겼다고 하자 피터는 괜찮다고 내게 침대를 내어주었다. 나는 너무 졸렸기 때문에 잠시 자고 일어나서 첫차를 타고 가자고 생각했다. 피터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잤다. 정말 좋은 친구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술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눈을 떴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당연히 내 자취방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긴 피터의 집이다. 아직 밖은 어둡다. 손목시계의 형광 기능을 통해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5시 30분이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천천히 상체를 들었을 때 공중에 무언가가 떠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검은 무언가가 침대 옆에 떠있다. 그건 코끼리를 잡아먹은 커다란 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피터였다. 그는 작게 코를 골며 깊은 잠을 자고 있었지만 분명 공중에 떠서 잠을 자고 있다. 바닥에서 50센티미터 정도 떠서 잠을 자고 있다. 휴대폰에 그 모습을 찍어놓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휴대전화는 겉옷 안에 있는듯했다. 그리고 몰래 사진을 찍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는 조용히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해결하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다시 나갔을 때 피터는 바닥에 다시 내려가 있었다. 여전히 작게 코를 골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진을 찍어놨어야 했나 후회가 되었다. 나는 가방과 겉옷을 챙겨 그대로 피터의 집에서 나왔다.
지금도 종종 바에서 피터를 만난다. 그날 밤 이후로 피터를 보면 나는 그가 어쩌면 마술사가 아니라 진짜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에게 내가 본 것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가 언젠가 내게 말해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피터는 늘 바에 나타나 조용히 맥주만을 먹고 하루에 3끼를 시리얼을 먹고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초코볼 모양의 시리얼을 즐겨 먹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