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Sep 30. 2019

"그냥 편하게 있어 편하게, 안 잡아먹으니까"

나의 잔혹한 명절 투쟁기2


(사진출처: 스타뉴스)





할머니댁은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곳이어서 부득이 언니 차를 얻어타느라 전날 충남으로 갔다가 아침일찍 충북으로 옮겨가서, 당일날 다시 경기도로 올라와야했다. 차에서만 꼬박 7-8시간. 녹초가 되어 남편 큰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반가움이라곤 1도 없는 얼굴들로 나를 맞는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았는데 주방으로 끌고가다시피 하려는걸 가방 좀 둔다는 핑계로 방에 들어가 심호흡. 방에서 나오니 세 명의 조카가 나를 둘러싼다. 누구의 얘기도 듣고 싶지 않은, 나의 말을 어린 친척 어른이 들어주고 자신을 놀아주는 게 누구보다 중요한 아이들. 한참 어른들 사이에서 지쳤는지 오자마자 신나게 들볶는다. 난 아이를 좋아하기도하고, 어른들때문에 난 화를 아이들에게 풀 생각은 1도 없으므로, 그리고 아이는 어른만큼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므로 최대한 눈높이를 맞춰 놀아줬다. 나에겐 그럴 의무도 없거니와,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룰을 가져다대며 보드게임을 하는 바람에 대체 무슨 장단에 맞춰서 게임을 해야하나도 모르겠고, 팀을 하자는데 티밍은 하지 않는 아이. 아이들이 원래 이렇지 뭐, 하며 버거운 감정을 누르는데 누가 빽빽 소리를 지른다. 알고보니 시어머니가 나를 부른거였다. 남편이 갔다.

"ㅁㅁ(나)이 와서 좀 도우라고해"


제사시간도 한참 남았고 할것도 없으면서 부른다. 남편이 본인을 시키라고 하니 그냥 돌려보낸다. 다시 조카들과 놀았다. 그것도 조카(언어유희) 힘들었지만, 가서 부림당하는 것보단 나으니, 적어도 아이들은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려보며 평가질하진 않으니 견딜만은 했다. 혼이 쏙빠지게 놀아주다가 제사시간이 다 됐다. 딱 세 번 얼굴 본 남편의 사촌이(심지어 내가 놀아주던 조카들의 엄마) 일을 하라며 주방으로 등을 떠민다(정말로 내 등에 손을 대고 밀었다). 기분은 나쁘지만 별 수 있나. 갑을병정 그보다 한참이나 아래의, 내가 놀아주던 조카들보다도 한참이나 아래의 서열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조카들에게 일해야된다며 물리치고 주방에 앉았다. 갑자기 ㅁㅁ(나)이도 이런거 할줄 알아야된다며 제기에 음식 올리는 걸 가르치란다. 내가 이런 걸 왜 알아야하지? 내 인생 살아가는데 하등 쓸모 없는일인데? 제사상차리는법, 제기에 음식 올리는 법에 대해선 눈꼽만큼도 알고싶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번 명절만 일단 곱게 넘어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주앉아 배우는 척 했다. 가르쳐주는 역할을 맡은 큰 며느리도 딱히 방법이 있는줄은 모르겠다며 난감한 얼굴로 어쨌든 시범이란 것을 보인다. 평생 내 인생에서 몰라도 되는 걸 배우는척 해주기 위해 나도 역할놀이를 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배울것도 없는 걸 배우고 나서는 혼자 앉아서 했다. 제기에 음식 올리고, 쟁반에 얹어 제사상에 날랐다. 여자들은 분주한 주방을 뒤로하고 남자들이 생색내는 제사. 그 내키지 않는 걸 남편 옆에서 따라지냈다. 나도 데려가서 일 시키고 싶은게 눈에 훤히 보여서, 모른척 남편 옆에 붙어서 절을 했다. 한 30분 제사를 지내고 철상하라기에 상도 치웠다. 제사상을 치우면 남자들 먹을 술상을 차리는데 상도 닦고 수저도 놓고 음식도 차렸다.


남자들 상 물리는 것까지 다 하고서야 친정집으로 갈 수 있었다. (남편네 큰집에서 우리집은 택시로 10분내외, 남편네집은 40여분. 그런데도 자기네 집으로 가서 자야된다길래 노발대발하며 새벽3시까지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잠은 좀 편하게 자면 안되겠느냐고 거의 사정을 해야했다.)

택시타고 가면 될걸 굳이 시아버지가 태워주신대서 얻어타고 갔다. 갑자기 시어머니왈.

"근데 그게 그렇게 힘든일이니?"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어서 누군가 받아쳐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대뜸,

"ㅁㅁ이는 노동운동도 하고 여성운동도 하는 애야. 여성운동 알지? 얘는 그렇게 불평등하고 성차별적인 상황이 힘들어."

아, 내 얘기였구나. 내 앞에선 '남'의 편이던 남편이 시어머니 앞에선 그래도 내편이다. 100점짜리 답변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훌륭하다 생각했다.

"누가 그걸 좋아서하니? ..."

"좋은 사람은 없고 힘들기만 하면 안하면 되잖아요, 어머니."

"아니 그래도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일이잖니. 시집왔으면 그런건 당연히.." 말 끊어먹었다.

"어머니, 저 ㅇㅇ(남편)오빠랑 결혼한거에요. 시집온거 아니고요. 어머니 저 결혼 전엔 안이러셨어요 아시죠?"

연애만 만 7년. 양가의 부모님을 서로 알만큼 아는 사이였다. 남들이 시댁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할때 내 남편의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셔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도 했었다. 갑자기 울컥한다. 설움에 받쳐 울면서도 최대한 할 얘기는 하려고 했다.

"제가 뭘 못했어요? 시키는 거 다 했어요, 저. 뭘 더 해야돼요? 저 제사상 차리는거 능숙해질 생각 없어요. 그거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제 인생에 하나 도움 안되는 일인데 제가 왜 그래야돼요?"

"아니, 그냥 조상님들께 잘한다고 생각하면 안되겠니?"

"살아있는 할머니도 1년에 한두번 볼까말까에요. ㅇㅇ오빤 할아버지 성묘간다고 저희 시골 같이 안갔잖아요. 저는 같이 가잔 소리도 안했어요. 살아있는 사람한테도 잘 못하는데, 이건 맞다고 보세요?"

"필요하면 ㅇㅇ이도 가야지."

우리집도 큰집이라 추석 전날가서 당일에 온다. 남편네도 전날, 당일에 간다. 그럼 언제? 내 남편은 언제 가는데? 우리 가족 다 떠나고 나서? 이런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더 화가난다.

"큰어머니한테 말 듣기 싫어서 그래"

"그럼 제가 안 가는 게 낫겠네요?"

"그건 아니지!"

"그럼 큰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면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라고 하세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제가 얼마나 힘들고 싫은지 말씀드릴테니까 그냥 저한테 말씀하시라고 하세요."

이렇게 차에서 할 말 아닌 것 같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 뭘 잘못한건지, 기껏 남의 집 일해주고 이런 소리나 들으니 너무 황당했다. 청바지나 반바지도 못입게하고 머리도 못 풀고 있게해서 긴치마 입고 머리까지 묶고 갔는데, 안 웃고 있으면 한 소리(여러 소리) 할테니 억지로 웃어주기도하고, 듣기 싫은 말들에 할말이 목구멍까지 차도 속으로만 삼키면서 가식적인 평화에 협조해줬는데, 내가 뭘 잘못했지? 나중에 남편한테 들으니, 일이 있건 없건 주방에서 대기상태로 있지 않은게 불만인것같다고. 끔찍하다 끔찍해. 시키지 않아도 눈치껏 나서서 일 좀 했으면, 없는 일도 만들어서 했으면, 알맹이도 없는 수다에 하하호호거리며 맞장구쳐줬으면, 그야말로 '며느리 노릇' 좀 했으면 하는거잖아. 정말이지 역겹다. 며느리를 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지. 할만큼하면 부족한거고, 넘치게 해야 겨우 당연한 도리를 한게 되는 이상한 며느리 채점제. 눈에 불을 켠 심사위원들만 있는 오디션장에 착한 며느리는 또 제발로 걸어들어갔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해서 겨우 저녁을 먹고, 담날 아침 8시에 또 차례를 지내러 갔다. 가자마자 당연 주방으로 호출. 남편이 따라왔다.

"아유 여자들 많은데, ㅇㅇ이는 가서 앉아있어"

여자들이 많으면 여자를 쉬게 하면 되잖아. 시작부터 빡쳤으나 남편이 그냥 하겠다고 했고, 시어머니가 냅두라고 한다. 이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라 여기기로 하고 또 시키는 일들을 적당히 했다. 특별히 못한 것도 없지만, 유달리 잘하지도 않았다. 내가 잘해봤자 당연한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금도 헌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이 집안에 두번째로 들어온 며느리로서, 앞으로 들어올 며느리들이 부당한 요구에 시달리지않게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큰며느리는 며느리의 표본같은 분이지만, 나까지 나서서 선례를 굳히고 싶진 않다. 못마땅한 눈치를 받아가며 어수룩하게 제사상을 준비했다.


제사를 지내고 상 치우는 것도 다 여자들이 했건만 심지어는 남녀 별상. 요즘 세상에 이런 집이 있다. 더욱이 오늘은 여자들이 남자들과 조카들까지 다 먹고 남긴 상에서 먹겠다고 기다린다. 어제의 일이 있은덕에 시아버지가 남자상에 부른다. 못이기는척 남편과 앉아서 먹었다. 물론 그 자리는 남성 조카들이 다 먹고 일어난 자리라 고기 몇점과 나물 잔뜩뿐이었다. 정말 김치에 열심히 먹었다. 그래도 이게 여자들 상에 앉아 고문당하는 것보단 낫다. 밥먹고 시어머니가 남편을 부른다. 설거지를 시킨다. 작년 추석, 나한테 시킨 설거지를 본인 아들이 하겠다고 하니 그럼 됐다고 내가 하겠다고 하시던분이다. 진보라 할만하다. 남편이 하겠다니 혼자 앉아있기 싫어서 옆에서 거들었다. 남편은 비누 묻히고 난 헹궜다.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서니 큰어머니의 말씀.

"ㅇㅇ(남편)이가 고생했다"

설거지는 둘이 했는데 치하는 한 사람의 몫이다. 이런 식의 유령취급 처음도 아니고, 그래 이만하면 명절 유탈히 잘 보냈다 싶은 즈음. 집에 돌아가려는데 구태여 배웅을 나오더니 큰어머니가 남편옆에 좀 그만 붙어있으란다.

"그냥 편하게 있어 편하게, 안 잡아먹으니까"

워딩그대로 편하게 있으라는 배려라고 들린다면 당신은 며느라기 웹툰을 반드시 정독하길 바란다. 남편 옆에 붙어 있지말고 주방이 네 자리이니 주방에 붙어있으라는 말이다. 이 집 어디에서 내가 편하겠냐. 그렇게 나 편하길 바라면 다음 명절부턴 오지말라고 했겠지.


시작부터 끝까지 유탈한 명절을 끝내고 2시간동안 지하철타고 내 집으로 왔다. 시어머니와의 한판에서 아버님이

"생각은 다를 수 있지."

라고 하신 말씀이, 그게 뭐라고 감동을 받아서, 밥상에 같이 앉혀줘서(!) 고맙다고 시아버지한테 카톡을 보냈다.

답장이 왔다. 내 생각을 존중한다면서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융통성과 유연함을 가져야한다고 충고하신다. 현명하게 판단할거라 믿는다신다. 난 왜이렇게 사람에게 희망을 거는걸까. 정말 난 글렀나보다. 이딴 소리나 들을라고 내가 또 희망을 걸었구나. 애초에 융통성이 없었으면 내가 시어머니만 대여섯명인 그 집에 갔겠냐고. 설령 갔더라도, "제 부모 제사상인데도 자식들은 앉아서 놀고 계시는데 얼굴도 못 본 할아버지 제사상을 제가 왜 차려요?" 했겠지. 내가 거기서 일하는 척이라도 해준 걸 고맙게 생각은 않고 충고라니, 충고라니. 잘하면 당연하고, 잘하지 않으면 혼나야하는 일을 내가 무슨 보람과 사명으로 더 잘해. 다들 나 잘하는지 감시나하면서 편하게 있으라는 게 말이야 소야. 눈치주기나 바쁘지, 온통 낯선이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내 걱정 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데서 내가 뭘 더 얼마나 하냐고. 말을 말았다. 다시 생각하지만 난 정말 너무 착하다.


편하게 있으랄때, 왜 난 우리집이 편하다고 짐 싸서 나오지 못했을까. 남편 옆에 그만 좀 붙어있으라고할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참견하지 마시라고 왜 말을 못했을까. 힘들다고 담에 와선 일 좀 도우라고 할 때, 그렇게 힘들면 제사를 안 지내시면 된다고 왜 충고하지 않았을까. 난 정말, 정말, 너무, 너무 착하다.


며느리는 노예다. 있지만 없는 노예. 당연히 일을 시키고, 내키는대로 말을 뱉고, 함부로 대한다. 대가는 없다. 준대도 싫지만. 며느리에겐 인격도 없다. 어디 감히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기분이 나쁠수 있겠나. 네,네, 알겠습니다, 그럼요, 하하호호, 말곤 토 다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며느리는 제3의 인물이다. 이 집 사람도 아니면서 저 집(본가)사람도 아니다. 며느리의 사정같은건 아무도 관심없다. 알아서, 눈치껏 낄끼빠빠해야한다. 그게 며느리의 의무다.


여성이고, (일반적으로) 가장 어리고,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항렬같은것도 없다. 중첩된 차별속에서, 가장 많은 차별의 잣대가 만나는 곳에 며느리가 있다. 대체 이 며느리란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며느리더런 참하고, 싹싹하고, 생글생글하길 바라지만, 며느리에겐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며느리가 머리를 단정히 묶었는지, 옷차림이 단정한지 노려보는 눈길들은 많지만, 며느리가 힘든지, 불편한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며느리한텐 그런 감정이 있어선 안되니까. 신성한 조상님들 대하는데 여자애가 재수없이 그러면 안되니까. 대한민국의 며느리는 그러라고 있는거니까. 아프지도 힘들지도 말고 집안일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만해야 한다.


며느리란 말부터 없어져야 한다. 이 말은 이미 노예와 같은 말이라 도저히 정화될 수 없는 단어다. 퇴화시켜야된다. 명절도, 제사도 없어져야된다. 최첨단 시대에 대리효도가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공자님말씀을 곧이곧대로 답습하는게 말이나 되나. 시대를 넘어 유효한 성인들의 옳은 말씀들은 1도 실천 안하면서, 남존여비의 구시대적 산물만 전통이랍시고 받드는 건 무슨 심보인지. 음식 사서 올리면 정성 없다고 성을 내면서 약과니 한과니 하는 것들은 또 사서올리고, 그렇게 정성이 중요한데 조상님들한테 머리 조아리는 남자들의 정성왜 음식엔 안 들어가는건데? 이런 선택적 유교신자들. 유교경전이나 아니 논어라도 제대로 읽고 유교니 뭐니 떠들든가.


이런 얘길 하면 기혼여성들은 세대가 바뀌기 전엔 안 바뀔거라고들 한다. 세대가 바뀌면 내 나이도 5-60이다. 내 소중한 행복을 그때까지 유보할 수 없다. 내 청춘이 불쌍해서 도저히 고분고분한 며느리 코스프레하며 살 순 없다. 이왕 이렇게 된거, 다음 명절엔 더 잘 싸울 것이다. 여전히 명절파업을 선언하지 못하는 미지근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끓어오를 것이다. 뜨겁게, 나를, 지킬 것이다.

이전 13화 “지금 전 부치는 사람한테 커피심부름 시키시는거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