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며느리 말고, 좋은 가족이 되고 싶었다 1
결혼 이후 두 번째 명절, 그러니까 내가 심리상담을 받고 있던 설, 내가 밥을 못 먹는다고 선언한 그 이후로 남편과 나는 많은 고민을 나눴다. 명절은 또 돌아올 것이고, 우린 어떻게해야하나. 나는 이대로가 너무 힘든데, 시부모는 여전히 내가 며느라기가 아닌 것이 못 마땅하다. 남편은 같이 부엌에서 일을 거드는 것 말곤 도울 방법을 모른다. 우린 어떡해야할까. 서로를 최대한 할퀴지 않으려 말을 고르다보니 매번 이야기가 빙빙 돌았다.
돌고 도는 순환참조 같은 얘기들.
“엄마아빠한테 말해볼게. 말을 해야 알지 않을까.”
“말 한다고 아실까? 나만 유별나게 보시겠지. 가만 있으면 다음 명절까진 그래도 별 일 없을텐데, 미리 말해봤자 그때까지 나만 힘들어질거야.”
“그래도 말을 해야 알지.”
“뭐라고 말할건데?”
“니가 말하는대로 말해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뭘 어쩌자고 말할건데?”
“너 힘들다고. 며느리노릇 요구하지말라고.”
“며느리노릇이 뭔데? 그렇게 말씀드려서 알거면 진작 아시지 않았을까.. 뭐 나 명절에 안가겠다고 말할거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달라고 말씀을 드려야 그렇게하시지 않겠어? 내가보기엔 평생 저렇게 산 분들이라 저게 틀린지 몰라서 저러시는 것 같은데?”
“명절에 안가고싶어?”
“아니 명절엔 가겠다고. 그니까 명절에 안가는거 말고 뭘 어떻게 해달라고 할거야?”
“생각해봐야지.”
“자기도 생각이 정리가 안되고, 자기도 나를 다 이해 못하잖아. 자기도 이해 못한 상태로 자기가 자기 부모님을 무슨 수로 이해시켜.. 그냥 상황있을때마다 자기가 제지하고 알려드리면 되지 않겠어? 자기도 아직 제역할 못하고 있잖아. 나한테 그집 어른들이 뭐라고할때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잖아. 일단 자기부터 할만큼 해보고 부모님한테 말씀을 드리든지 하자..”
“그거면 되겠어? 알겠어 나도 더 노력할게.”
이해시킬 자신은 없지만 말은 해봐야지 않겠냐는 남편, 이실직고해봤자 거부감만 클 것 같아 더 겁이 나는 나. 아직 남편도 온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부모가 날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가 전혀 되지 않는다. 일단은 그렇게 정리한 상태로 추석이 왔다.
그 추석, 시부모와의 전면전이 있고나서 남편과 나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이 좁은 집에 한랭전선이 머무는 기분.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고, 마음이 담기지 않은 껍데기같은 얘기들만 겨우 주고 받았다. 그러고나서 얼마 후, 남편은 따로 가서 시부모와 한바탕 했다. 가기전 함께 가겠느냐 묻길래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1차 삐침. 그렇게 또 한동안 숨막히게 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또 아무말도 안한다. 신경을 껐어야하는데, 걱정스러운 맘에 물었다가 되려 화를 불렀다.
"왜? 가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나 좀 나갔다올게."
"뭐야, 왜 그러고 나가?"
말 없이 집을 나선다. 시위라도 하는 양 구는 남편에게 순간 화가 치민다.
"내 문제 아닌 건 나한테 풀지마."
"니 문제야. 다 니가 문제야."
"뭐? 내가 뭐가 문젠데?"
"너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 없었어. 다 너 때문이야. 너란 인간때문이야. 정말 후회스럽다."
"그말 진심이야?"
"어 진심이야. 왜 너 같은 게 내 인생에 끼어들어서.."
"그말 못 주워 담는 거 알고 있지?"
"어!"
남편이 악을 쓴다.
"그럼 끝내자. 내가 아무리 내세울 것 없어도 너한테 그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살 생각 없어."
"어 끝내."
"저번에 만들어놓은 사실혼 합의해지서 어디뒀어?"
"아니, 그거 말고. 내가 다시 쓸게."
"그래 그럼. 일단 집부터 내놓고 살집 구해지면 나갈게."
나는 왜 이 상황에 갈 데도 없을까. 짐을 싸서 근처 게스트하우스라도 가서 잘까. 홍성에 있는 지인 집에라도 가야하나. 그럼 내일 출근은 어떡하지. 정말 이대로 우린 끝일까.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얼마나 지났나. 남편이 잠깐 얘기 좀 하잔다.
"응. 할 얘기 있으면 해."
"이번에 가서 엄마랑 엄청 싸웠어."
남편 말로는 무슨 패륜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했다지만, 내용을 들어보니 이렇다. ㅁㅁ(나)이는 힘들다, 요즘 애들은 그런거 이해 못한다, 엄마아빠한테는 잘한다지않냐, 우리가 이혼이라도 하길 바라냐...
"집 오는데 기차에서 엄마한테 이렇게 카톡이 왔더라. 그거보고 한참 울었어. 엄마가 다 내려놓겠대."
남편이 보여준 카톡은 사실 별 얘기도 없었다. 엄마가 욕심을 내려놓겠다는 게 전부다. 근데 뭘 어쩌겠다는건진 하나도 없다.
"뭘 내려놓는데?"
"그냥 다 내려놓겠대."
" 뭐 명절에 오지 말래?"
남편은 당황한 눈치다. 우리 엄마가 모든 걸 백 보 양보하는듯이 카톡을 보내서, 나한테 이걸 보여주면 같이 부둥켜 안고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나보다.
"그건 아니겠지... 그건 봐야 아는 거지만.."
"난 이것만 봐선 명절 되보기 전엔 뭘 내려놓으시는건지 전혀 모르겠어. 내 힘든게 얼마나 나아질지 나는 전혀 모르겠어."
"그럼 정말 헤어지자고?"
"넌 그게 그냥 하는 소리였어?"
"그건 아니지만 우리 엄마가 노력한다잖아.."
"내가 너희 엄마때문에 헤어지자고 한거야? 나는 너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힘든거 참으면서, 바꾸려고 노력했어. 너 하나 때문에 난 이렇게 힘든데, 너는 뭐랬어? 이게 다 나때문이라며. 나만 없으면 된다며. 너한테 내가 고작 이런 존잰데, 내가 이런 소리들으면서 너랑 왜 살아야돼?"
"엄마랑 싸우고 왔는데 니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화나서 그랬어.."
"넌 화나면 그런 말 막 해도 돼? 그 말 주워 담을 수 있어? 내가 후회 안 할거냐고 물어봤지? 안한다며."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그게 미안하다고 해서 없어지는 말이야? 난 그 말을 평생 못 잊을거야."
"앞으론 절대 그런 말 안할게.. 너 때문 아니야.. 미안해.."
결국 이혼에 이르지도 못하는 칼로 물 베기의 부부 싸움으로 또 끝났다.
속 없는 인간처럼, 그런 소릴 듣고도 독하게 헤어지지 못했다.
결국 맘에도 없는 날카로운 말을 함부로 내리 꽂은 남편에게 또 면죄부를 줬다.
나의 상처는 결코 이걸로 끝나지 않을 게 너무 뻔한데, 그런데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에 눈 감아 버렸다. 내 적은 나지. 그러고도 나는 남편의 부모에게 잘한다는 걸 입증하려 시부모집에 1박2일을 머물며 김장을 하고, 아버님께 배추를 싸서 드리고 술을 따라 드렸다. 목소리를 높였고, 억지로 웃었다. 적막한 분위기에 먼저 대화를 시도했고, 재밌지도 않은 주제에 맞장구를 쳤다. 그런 내 노력을 알아줄거라고 또 미련하게 희망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