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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수 Aug 01. 2024

[독서후기] 첫 문장, 그 마력과도 같은

책의 첫 소절 그 한 문장이 주는 끌림에 대하여...

1564년 2월 18일, 로마에서 ‘르네상스’가 죽었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비밀> _ 벤저민 블레흐/ 로이 돌리너, 2008, 중앙북스

  "1564년 2월 18일, 로마에서 ‘르네상스’가 죽었다."

           

    이 얼마나 강렬한 첫 문장인가. 

이 한 문장으로 인해 나는, 꼼짝없이 이 글들에 붙잡힐 수밖에 없다. 첫 메시지의 중요함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어스름 새벽녘에 집어 든 책의 이 첫 문장으로 인해, 아마도 난 종일 이 책만 읽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책을 선택할 때면, 어김없이 첫 문장을 살핀다. 

첫 문장에 끌리면, 주저 없이 그 책을 집어 든다. 읽을 때도 마찬가지. 첫 문장의 짜릿한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면, 필요할 때 '그 책'을 뽑아든다. 책꽂이에서. 그리곤 역시 붙잡힌다.


   생각난 김에 가벼운 놀이 하나 하자. 

번역서의 첫 문장 비교 글이다. 내가 왜 그 책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변증으로.


    대상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번역서 별 첫 문장을 비교해 본다.


1️⃣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민음사, 2009, 연진희 역
2️⃣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열린책들, 2018, 이명현 역
3️⃣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문학동네, 2009, 박형규 역
4️⃣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더클래식, 2017, 장영재 역
5️⃣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펭귄클래식, 2011, 윤새라 역
6️⃣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
태일소담, 2022, 이은연 역
7️⃣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Penguin Classics, 2004, Richard Pevear(Translator)


    이 외에도 몇 종의 번역서가 더 있다. 참 많이 읽히(기를 원하)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많은 번역서가 나오는 것을 보면. 


    첫 문장의 섹시함을 비교하기에 번역서는 적절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지만, 나름의 객관적 비교를 위해서는 동일 문장으로 차용할 수밖에 없었음을 또한 밝힌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동일한 서적을 다른 번역본으로 구입하는 경우는 드물 테니까. (그 문제점을 알고 있기에, 아래의 비교는 문장의 메시지가 아니라 형식만을 비교한다는 점을 밝힌다)


    위 번역서 중에 나는, 

문학동네의 2009년판, 박형규 님의 번역본을 (가장) 좋아한다. (위에서 세 번째, 3️⃣)

자칫 특색 없을 수도 있을 문장을 "고만고만"과 "나름나름"의 운율이 있는 단어를 선택해서 보다 명료하게 표현한 점을 좋아한다. 


    더불어, 펭귄클래식 2011년판 윤새라 님의 번역본이 (버금으로) 좋다. (위에서 다섯 번째, 5️⃣)

"저마다의 이유"라는 단어 선택이 특히 그렇다. 읽을 때의 리듬감도 자연스럽고. 




    위의 비교는  매우 주관적인 나만의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런 비교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단지 '나의 책 선택 기준 중의 하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앞서에서도 언급했듯 번역서로의 비교는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마치 번역자의 역량 비교처럼 비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음을 분명히 한다. 단지 나의 책 선택의 기준 즉, 첫 문장에 '유난히' 집착하고 있는 나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을 뿐이다. 이점을 양지하시길 바란다. 


    첫 문장, 첫 메시지는 그만큼 중요하다. 

    유념해야겠다. 특히 글을 쓰는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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