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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법칙

시스템 사고가 알려주는 5가지 놀라운 진실

by KEN

0.

세상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어쩌면 우리가 잘못된 지도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다.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는 이 거대한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혼란은 세상 자체의 본질적인 특징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부적절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분석 과학'이라는 단 하나의 언어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모든 것을 잘게 쪼개어 개별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은 특정 영역에서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지만,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이 혼돈 너머를 보고 복잡성을 꿰뚫어 이해하게 해주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지도가 있다면 어떠했을까? 그것이 바로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다. 시스템 사고는 개별 요소가 아닌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과 '관계'에 주목하여 전체를 보는 관점이다. 오늘의 관심은 시스템 사고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놀랍고 직관에 반하는 5가지 통찰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왜 좋은 의도가 최악의 결과를 낳는가


우리는 보통 '문제 A에는 해결책 A가 있다'는 직선적인 사고에 익숙하다.

하지만 시스템 사고의 핵심 원리 중 하나는 '직관에 반하는 행동(Counterintuitive Behavior)'이다.

이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오히려 정반대의,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복잡한 시스템 안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시간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한 지역의 복지 시스템 사례가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가난한 가구를 돕는다는 좋은 의도로 복지 혜택을 대폭 확대했다고 가정해 보자.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복지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이 인상되고, 부담을 느낀 기업과 부유층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지역의 세금 기반이 약화된다.


한편, 좋아진 복지 혜택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그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일부 사람들의 노동 의욕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결국 세수는 줄어드는데 비용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고, 처음 해결하려던 빈곤 문제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는 재앙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이 통찰은 우리에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명백한 원인 너머를 봐야 함을 알게 해 준다. 당장의 효과가 아닌, 시스템 전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를 고려해야만 의도치 않은 비극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최고의 제품이 시장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가장 혁신적이고 뛰어난 제품이 시장 경쟁에서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은 반드시 '최고'의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와 가장 잘 호환되는' 해결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의 일화가 대표적인 사례. 그는 당시의 어떤 컴퓨터보다 기술적으로 월등하고 '미치도록 훌륭한 컴퓨터(insanely great computer)'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동안,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인텔의 칩 조합, 이른바 윈텔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윈텔은 넥스트만큼 우아하거나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훨씬 저렴했고 무엇보다 1980년대 후반에 이미 전 세계 수백 개의 PC 제조사들이 만들어낸 값싼 개인용 컴퓨터라는 거대한 생태계 위에서 작동했다.


결과적으로, 넥스트 컴퓨터는 그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윈텔이 만들어낸 거대한 시장의 흐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는 시장의 선택이 얼마나 직관과 다르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예시 1. 가정용 비디오 포맷 경쟁에서 당시에 크기도 작고, 화질 또한 더 우수했던 소니에 베타맥스가 1년 뒤에 나왔으나 보나 불리해 보였던 VHS 방식에게 시장을 내주었던 사례 또한 같은 원리가 작동한 사례)

(예시 2. 저가 저성능의 LFP 배터리가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고성능의 NCM 배터리 시장을 급속하게 잠식해 들어가는 현상 등)


시장 경제는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오직 합리적인 선택을 할 뿐이다. 승자는 반드시 최고가 아니라 기존 질서와 가장 잘 호환되는 이들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것은 때로 뒤처지는 것보다 더 비극적일 수 있다.

핵심 논지는 성공이 단지 품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성공은 때로 품질보다 타이밍, 호환성, 그리고 더 큰 생태계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3.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무엇'이 아닌 '왜'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올바른 정보만 주어진다면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정보)를 넘어 '왜' 그렇게 하는지(이해)를 알아야 한다. 시스템 사고는 인간의 선택이 이성적, 감성적,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목적 지향적 결과물이라고 본다.


과거 포드 재단이 인도에서 진행했던 산아제한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는 이 통찰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프로젝트 관리자들은 인도인들에게 인구 조절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피임 기구를 나눠주었으며, 보상으로 트랜지스터 라디오까지 제공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그들은 '인도인들은 비이성적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시스템 사상가인 러스 에이코프가 그들의 '왜'를 파고들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났다고 전한다. 당시 인도에는 사회보장이나 은퇴 연금 제도가 없었고, 아들 셋을 두는 것이 곧 은퇴 후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아들 셋을 낳으려면 평균 4.6명의 자녀가 필요했고, 놀랍게도 아들 셋을 둔 부부들은 실제로 아이를 더 낳지 않고 있었다. 포드 재단의 관점에서는 비이성적이었지만, 그들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문화적, 경제적 맥락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외부 관찰자에게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당사자의 맥락 안에서는 완벽하게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이해는 표면적인 행동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함께 그들의 행동을 이끄는 근본적인 목적과 가치를 파고드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4.

최고의 팀은 스타 선수들의 합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뛰어난 개인들을 모으면 자연스럽게 뛰어난 팀이 만들어진다고 믿기 쉽다. 하지만 시스템 사상가들은 "나는 사랑할 수 있지만, 나의 어떤 부분도 사랑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사랑, 행복, 성공처럼 시스템 전체에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어떤 개별 부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시스템 사고에서는 '창발적 속성(Emergent Property)'이라고 부른다. 이는 개별 부품들이 가진 능력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부품들 간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시스템 전체의 고유한 결과물을 의미한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비유는 '올스타팀'이다.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그 팀이 반드시 리그 최고의 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평범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에게 패배하기도 한다.


이는 성공이 최고의 부품들을 조립해서 만들 수 있는 정적인 결과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성공은 스포츠팀이든 기업이든,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의 질을 효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재현되어야 하는' 역동적인 현상인 것이다. 개개인의 탁월함보다 그들이 어떻게 협력하고 시너지를 내는지가 전체의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인 것이다.



5.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함정에서 탈출하라


우리는 종종 세상을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로 바라본다. 안보와 자유, 질서와 복잡성처럼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스템 사고의 '다차원성(Multidimensionality)' 원리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다차원성은 상반되는 두 경향을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보도록 관점을 전환시킨다.


예를 들어 '자유'와 '안보'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기존의 관점 (제로섬 게임):

이 모델에서는 자유와 안보를 하나의 직선 양 끝에 놓는다. 안보를 높이려면 자유를 희생해야 하고, 자유를 추구하면 안보가 약해진다고 생각하는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스크린샷 2025-11-18 오전 6.46.35.png

시스템적 관점 (상호보완적 관계):

이 모델에서는 자유와 안보를 서로 다른 두 개의 차원으로 본다. 시스템 관점에서는 "안전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롭지 않으면 안전할 수 없다." 따라서 둘은 서로를 완성하는 필수 요소이며, '높은 자유와 높은 안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것과 저것 모두(both/and)'의 해법이 가능해진다.

스크린샷 2025-11-18 오전 6.46.57.png 다차원 시스템의 거동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좌절스러운 타협을 넘어서는 길을 열어준다. 개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던 부분들이 서로 보완하며 상호작용할 때,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롭고 강력한 '실현 가능한 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진정한 통합적 해결책을 찾는 열쇠가 된다.



6.

새로운 게임을 위한 새로운 언어


세상의 복잡함은 우리가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순간, 훨씬 더 명료하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오늘 살펴본 5가지 통찰은 그저 흥미로운 얘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을 더 깊이 있고 효과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렌즈다. 선한 의도가 낳는 비극, 시장의 숨겨진 논리,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 성공의 본질, 그리고 이분법을 넘어서는 지혜는 모두 연결된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이다.


우리의 삶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직선적인 해법, 최고의 품질, 혹은 합리적인 선택 뒤에 숨어있는 시스템의 더 깊은 법칙은 무엇일까?



참고자료

1. Systems Thinking: Managing Chaos and Complexity, A Platform for Designing

Business Architecture, Jamshid Gharajedaghi, 2011




[구체적 정리]

시스템적 사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


0. 혼돈 속에서 길을 잃다


태초에 우리는 신화로 삶의 이야기를 전했다. 노래하고, 춤추고, 의식을 통해 위협적인 세상 속에서 안정을 찾았다. 시와 수학, 철학과 과학의 언어로 사유하며 창의성을 키워왔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점점 하나의 언어, 즉 ‘분석적 과학의 언어’에만 전문화되어 왔다. 다른 모든 언어를 배제하고 하나의 언어만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결국 ‘일차원적’이고 지루할 정도로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 분석의 언어는 세상을 잘게 쪼개고 분해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전체를 보는 능력을 상실했다. 상관관계를 찾아내고 승자들의 공통 속성 몇 가지를 성공 공식으로 포장하는 것이 지혜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우리를 혼돈 앞에서 무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되자, 세상을 ‘복잡하고 혼란스럽다’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혼돈은 세상의 속성이 아니라, 그것을 설명하는 우리 언어의 한계일 뿐이었던 것이다.


오늘의 관심은 바로 그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관점, 즉 상호작용과 관계, 전체를 조망하는 ‘시스템의 언어’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언어는 혼돈처럼 보이는 현상 이면에 숨겨진 질서를 발견하고, 복잡성을 위협이 아닌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기존 사고방식이 왜 한계에 부딪혔는지 더 깊이 탐색하며, 시스템 사고라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보자.



1. 지배적 언어의 한계: 왜 분석적 사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분석적 사고는 지난 세기 동안 인류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생산, 조직, 소통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분석적 도구의 가정과 적용이 깊숙이 침투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몇 가지 공통 속성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에 사로잡히면서 점차 '일차원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에 소외, 권력욕, 좌절감, 불안, 그리고 지루함과 같은 병리적 증상들을 낳았다. 성공한 기업이나 인물의 공통된 속성 몇 가지를 찾아내면 그것이 곧 성공 공식인 것처럼 포장되는 베스트셀러들이 넘쳐나고, 진지한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 단순화된 지식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정치 시스템마저 유권자가 의사결정자를 선택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가정하에 움직이는 '투표 산업'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분석적 사고가 우리 존재의 일부만을 다룰 뿐,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과 데이터를 분해하고 분류하는 데는 능숙해졌지만, 그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살아있는 전체를 만들어내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단편적인 접근 방식은 결국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피상적인 해결책만을 양산하게 된다.


이처럼 분석적 사고의 한계가 명확하다면, 복잡성과 혼돈을 꿰뚫어 볼 새로운 대안은 무엇일까?



2.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시스템 사고라는 통합적 언어


분석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은 바로 '시스템 사고'다. 이는 세상을 부분의 합이 아닌, 상호 연결된 요소들의 총체로 바라보는 총체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시스템 사고는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디자인의 관점에서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고 복잡성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이 새로운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보고, 행동하고,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합적으로 고려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도록 돕는다.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 이성적, 감성적, 그리고 윤리적 차원을 아우르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여, 상호의존적이면서도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우리를 재발견하게 한다.


시스템 언어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째, 개념적 프레임워크: 의지를 가진 다수의 행위자로 구성된 시스템, 즉 조직이나 사회와 같은 시스템의 행동 특성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틀이다.

둘째, 운영적 시스템 방법론: 단순히 시스템적 접근의 당위성을 선언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설계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론을 제공한다.


오늘은 시스템적 관점을 개발하는 데 핵심이 되는 첫 번째 차원, 즉 시스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 원칙들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렌즈가 될 것이다.



3. 시스템 사고의 다섯 가지 기둥 —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


시스템 사고는 단편적인 도구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개방성', '목적성', '다차원성', '창발성', '반직관적 행동'이라는 다섯 가지 핵심 원칙이 상호작용하며 전체를 이루는 정신 모델이다. 이 원칙들은 조직과 사회의 행동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가정을 제시하며, 문제 정의부터 해결책 설계까지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스크린샷 2025-11-18 오전 12.03.42.png 시스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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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원칙: 개방성 (Openness)


'개방성'이란 살아있는 시스템, 즉 조직이나 사회의 행동은 그것이 속한 환경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시스템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들의 집합이며, 환경은 시스템에 영향을 주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는 없는 변수들의 집합이다. 시스템과 환경을 구분하는 경계는 관찰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구성물이다.

스크린샷 2025-11-18 오전 12.05.16.png 어떤 문제나 해결책도 맥락(context) 없이 유효할 수 없다

과거 경영학의 패러다임은 통제 불가능한 환경을 ‘예측하고 대비하는(Predict & Prepare)’ 것이었다(전통적 경영 사고). 이는 환경을 주어진 것으로 보고 시스템 내부를 최적화하는 데 집중하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 모델은 예측이 빗나가기 시작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우리는 환경 변수 중 일부는 통제할 수는 없지만 이 또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객, 공급업체, 주주, 심지어 상사까지 포함하는 이 영역을 ‘거래적 환경(ecreate the Future)’이라고 부른다(시스템 사고).


이들은 더 이상 예측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파트너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리더십은 내부 자원을 통제하는 능력을 넘어, 외부 환경을 관리하는 능력, 즉 ‘상향 관리’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재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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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스템의 성과가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면(개방성), 그 상호작용의 핵심 주체들, 즉 고객, 공급자, 리더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는 그들의 행동 이면에 있는 '목적성'을 파고들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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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원칙: 목적성 (Purposefulness)


'목적성'이란 시스템 내 행위자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원칙이다. 진정한 경쟁 우위는 단순히 고객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Information)나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지식(Knowledge)을 넘어,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의 차원에서 나온다.

스크린샷 2025-11-18 오전 12.12.45.png 영향의 계층

인간의 선택, 즉 행동의 '왜'는 세 가지 차원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이성적 선택: 행위자 자신의 인식된 이익에 기반한 선택

- 감성적 선택: 도전, 흥분, 아름다움과 같은 내재적 가치에 이끌리는 선택

- 문화적 선택: 개인이 속한 집단의 윤리적 규범이나 암묵적인 가정(기본값)에 따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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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도의 산아제한 프로젝트 실패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인도인들이 비이성적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 그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아들 셋을 낳는 것이 곧 자신의 노후를 보장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임을 알고 있었다. 관찰자의 합리성이 아닌 행위자의 ‘인식된 이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선의의 해결책은 처참한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합리적 선택이 반드시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이다.


즉,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넘어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이성, 감성,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경쟁 우위다.


개별 행위자들의 목적을 이해했다면, 다음 질문은 이처럼 다양한 목적을 가진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관계의 역학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이다. 이는 세상을 이분법적 대립이 아닌 ‘다차원적’ 관계로 볼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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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원칙: 다차원성 (Multidimensionality)


'다차원성'이란 안정과 변화, 혹은 자유와 안보처럼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향들을 'X 또는 Not X'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는 '또는(or)'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그리고(and)'의 통합적 사고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크린샷 2025-11-17 오후 11.50.45.png 이분법적
스크린샷 2025-11-17 오후 11.52.28.png 통합적

전통적인 사고는 두 가치가 대립할 때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타협점을 찾으려 하지만 다차원적 관점에서는 두 가치를 각각 별개의 차원으로 설정함으로써, 두 가지 모두 낮은 수준(Low/Low)에 머무르거나, 혹은 두 가지 모두 높은 수준(High/High)으로 동시에 달성하는 '윈-윈'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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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와 머튼의 관리 그리드가 좋은 예시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는 동일한 변수도 '생산에 대한 관심'이라는 다른 차원과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생산에 대한 관심이 낮으면(1.9) 온정주의적 리더가 되지만, 생산에 대한 관심이 높으면(9.9)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이처럼 차원을 추가함으로써 우리는 모순을 상호보완적 관계로 전환하고,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해법을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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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변화, 자유와 안보처럼 대립되어 보이는 가치들은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둘을 동시에 추구할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해결책, '-'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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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립하는 요소들이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하여 윈-윈의 결과를 만들어낼 때, 그 결과물은 단순한 부분의 합을 넘어선다. 이것이 바로 ‘창발성’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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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원칙: 창발성 (Emergent Property)


'창발성'이란 사랑, 생명, 성공처럼 전체 시스템에는 존재하지만, 그 어떤 개별 부분에도 존재하지 않는 속성을 의미한다. 창발적 속성은 부분들의 단순한 '합(sum of actions)'이 아니라, 부분들 간의 '상호작용(product of interactions)'의 산물이다. 따라서 분석을 위해 시스템을 분해하는 순간, 이 속성은 사라져 버린다. 성공은 한 번 달성하고 저장해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멈추는 순간, 성공이라는 현상도 함께 소멸된다. 즉, 창발적 속성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야만 유지되는 역동적인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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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 팀이 반드시 최고의 팀은 아니다'라는 비유는 창발성의 핵심을 정확히 보여준다. 팀의 성공은 선수들 간의 상호작용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창발적 속성은 직접 측정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랑을 측정할 수 없기에 우리는 ‘전화 횟수’와 같은 그것의 ‘발현’을 측정하게 된다. 이로 인해 ‘가짜를 만드는 기술’이 번성하게 된다. 조직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성장을 성공의 발현으로 측정하면, 기업은 ‘형편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가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 두 마리 칠면조가 독수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EVA처럼 성장과 가치 창출을 동시에 측정하는 다차원적 지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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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다차원적이고(다차원성), 상호작용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만들어내는(창발성)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우리의 직관이 종종 우리를 배신한다. 이것이 바로 다섯 번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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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원칙: 반직관적 행동 (Counterintuitive Behavior)


사회 시스템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좋은 의도를 가진 행동이 종종 정반대의, 즉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향이 있다. 이를 '반직관적 행동'이라고 한다.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시간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나타날 수 있고, 순환 관계를 보이며, 심지어 최초의 원인이 제거된 후에도 결과가 지속될 수 있다.


스크린샷 2025-11-18 오전 12.22.51.png 복지시스템의 동역학

선의로 시작된 복지 시스템 확장이 대표적인 예다. 가난한 가정을 돕기 위해 복지 예산을 늘리면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다. 과도한 세금은 기업과 부유층을 지역 밖으로 내몰아 세금 기반을 약화시킨다. 동시에, 더 나은 복지 혜택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유입시키고 근로 의욕을 감소시켜 실업 부담을 가중시킨다. 결국 비용은 증가하고 수입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가난을 줄이려던 정책이 오히려 재앙의 레시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직관성의 가장 위험한 함정은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환경에 대한 ‘수동적 적응’이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갑자기 넣으면 즉시 튀어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아무런 저항 없이 삶아져 죽는다는 비유가 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감지하기 어려운 점진적 변화에 조금씩 적응하며 ‘너무 적게, 너무 늦게(too little, too late)’ 대응하다가 결국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는 신드롬은 수많은 기업의 비극적 종말을 설명해 준다.


즉, 단기적 처방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주요 결정은 의도하지 않은 2차, 3차 효과를 낳는다.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링을 통해 행동의 파급 효과를 시뮬레이션하지 않는 전략은 도박에 가깝다.



4. 새로운 언어로 미래를 디자인하다


지금까지 논의한 시스템 사고의 다섯 가지 원칙—개방성, 목적성, 다차원성, 창발성, 반직관성—은 서로 분리된 도구의 목록이 아니다. 이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재구성하는 하나의 통합된 모델이며, 현실을 바라보는 렌즈 그 자체다. 이 원칙 중 어느 하나라도 무시하면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 ‘목적성’을 무시하면 인도의 산아제한 프로젝트처럼 선의가 실패로 돌아가고, ‘반직관적 행동’을 간과하면 복지 정책처럼 좋은 의도가 재앙을 낳는다.


분석적 사고가 죽어있는 대상을 해부하여 그 부분을 이해하는 데 유용했다면, 시스템 사고는 부분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살아있는 전체를 창조하는지를 이해하게 해 준다. 예측 불가능한 세상의 복잡성을 더 이상 피해야 할 위협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기회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방식, 즉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스템의 언어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문제의 증상에 반응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문제의 근원적인 구조를 재설계하는 창조적 해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시간이다.


"당신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증상에 반응하고 있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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