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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보이지 않는 질서는 어떤 작동원리에 기인할까?

by KEN

보이지 않는 질서

— 시스템 사고로 사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intro...


현대 사회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돈의 연속처럼 보인다. 예측 불가능한 사건과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 속에서 우리는 종종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 불확실해 보이는 표면 아래, 사회를 일관된 방향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작동 원리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흔히 사회, 조직, 국가와 같은 사회문화 시스템을 잘 짜인 기계나 단순히 개별 구성원들의 집합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는 시스템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사회를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관점의 핵심에는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강력한 힘, 자기조직화가 자리한다.



[원리 1] 사회는 무질서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서를 찾아간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주와 사회가 결국 무질서와 균일성, 즉 엔트로피의 증가로 귀결된다고 배워왔다.
열역학 제2법칙이 설명하는 세계관이다. 이 관점에서 세계는 시간이 갈수록 구조가 흐트러지고, 차이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평탄하게 흩어지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이 건네는 가장 놀라운 통찰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이 전통적 그림이 전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주와 생명, 그리고 사회는 단순히 무질서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의 질서와 복잡성으로 스스로를 조직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 흐름이 바로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다.


열역학 제2법칙은 ‘닫힌 시스템’에서만 성립한다. 닫힌 세계에서는 외부와의 에너지 교환이 없고, 모든 구조가 결국 균질한 무작위 상태로 흘러간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주요 패러다임 즉 양자론, 카오스 이론, 비평형 열역학, 생명 시스템 이론은 세계를 ‘열린 시스템’으로 본다.


열린 시스템은 외부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엔트로피를 낮추고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우주는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체계라는 것이다. (예, 네트로겐, 끌개(attractor) 이론 등)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생명 시스템 이론은 바로 이 지점을 명료하게 짚는다. 그는 생명의 복잡성이 단순히 자연선택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자연선택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스템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내재적 힘, 즉 자기조직화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자기조직화의 대표적 사례는 개체 발생(ontogeny)이다. 하나의 수정란이 수백 번의 분화와 통합을 거쳐 256개의 서로 다른 세포 유형을 만들고, 마침내 하나의 신생아로 태어난다는 사실은, 외부의 설계자 없이도 생명 시스템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참고: 아래의 '그림 1' 및 내용 설명)


여기서의 통찰은 생명계를 넘어 사회 시스템으로 확장된다. '산티아고 이론'이 '아는 과정(cognition) 자체가 생명 활동'이라고 보았다면, '프리초프 카프라'는 이 개념을 사회로 옮겨온다. 생명체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아는 존재’가 되듯, 사회도 구성원들의 상호작용과 그들이 공유하는 정신적 이미지(mental image)를 통해 스스로를 조직해 간다는 것이다.

주) '산티아고 이론'은 인지와 생명 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론. 특히 인지(cognition)를 단순히 의식(consciousness) 이상의 광범위한 개념으로 보고 생명체의 자기 생성과 자기 보존을 위한 핵심적인 과정으로 이해함. 즉, 정신과 신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현대적 인지사상임.
주)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시스템 이론가로, 과학과 철학을 통합해 생명, 생태, 사회 시스템을 체계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학자임.


즉, 사회문화 시스템 역시 자기조직화 구조를 갖는다는 결론이다.


생명체가 DNA라는 유전적 청사진을 따라 성장하듯, 사회 역시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규범·기대·이상으로 이루어진 고유의 청사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여기로 향한다.

그렇다면 사회가 스스로를 조직하는 정신적·문화적 청사진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질문을 탐색하는 일은 단지 사회를 분석하는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세계가 어떤 질서로 움직이며 앞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핵심적인 탐구가 될 것이다.



[원리 2] 사회를 묶는 접착제는 '에너지'가 아닌 '정보'다.

사회 시스템을 기계처럼 다루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결합의 본질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기계를 움직이는 힘이 물리적 ‘에너지’라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다. 따라서 사회의 안정과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읽기 위해서는 이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만 한다.


기계는 못으로 단단히 고정된 두 개의 나무판자처럼, 물리적 힘으로 결합된다. 외부 충격만 없다면, 한 번의 통합으로도 충분히 구조를 유지한다. 이때 부품은 수동적이며, 그 결합은 예측 가능한 것이 된다.


반면, 가족·조직·국가와 같은 사회문화 시스템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각자 인식을 가진 능동적 존재들이 모여 있어 물리적 강제로 묶어둘 수가 없다. 이들을 하나의 통합된 실체로 연결하는 힘은 에너지가 아니라, 공유된 정보와 의미, 즉 상징·언어·규범·가치 같은 보이지 않는 신호의 네트워크다. 그래서 사회의 통합은 한 번의 ‘조립’으로 끝나지 않는다. 평생에 걸쳐 갱신되고, 조율되고, 재합의되어야 하는 살아 있는 과정인 것이다.


이 정보 기반 결속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2차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단순 행동에 대한 동의, 즉 “무엇을 할 것인가(what)”만 같아서는 시스템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예컨대, 이란 혁명 당시 좌파와 이슬람주의자는 “샤 정권을 전복한다”는 행동에는 합의했지만, 그 이유는 정반대였다(why). 행동의 목적에 대한 합의(1차적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혁명 이후 사회가 다시 붕괴한 이유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행동의 이유, 목적, 가치—즉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why)”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2차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에 동의하는 것’도 2차적 합의의 형태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동의를 넘어, 상호 이해에 기반한 성숙한 사회 결속 방식이다.


결국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힘이 아니라 정보다.

그리고 그 정보가 하나의 체계로 조직되어 공유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요컨대, 사회 시스템을 묶는 진짜 접착제는 에너지가 아니라 문화라는 정보의 총체이며, 이것이 있을 때 비로소 사회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유지하고 변화시킨다.



[원리 3] 문화는 당신의 삶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다.

만약 사회에 ‘운영체제(OS)’가 존재한다면, 그 정체는 단연코 문화일 것이다.

문화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 패턴을 규정하고,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소프트웨어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문화의 핵심은 ‘공유된 이미지(shared image)’, 혹은 ‘정신적 모델(mental model)’이다. 인간은 단순히 현실을 관찰하는 존재가 아니다.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을 지닌 독특한 존재다.


굶주림을 느끼며 사냥감을 바라볼 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다. 그리고 주변의 나무와 돌을 관찰하며,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도구’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 주관적 이미지는 결국 활과 화살이라는 실제 도구로 구현되고, 그 도구는 다시 새로운 이미지를 불러오는 변증법적 진화를 촉발한다.

인간 사회의 발전은 이러한 ‘이미지 → 현실화 → 새로운 이미지’의 반복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문화의 힘은 두 가지 기능에서 나온다.


(1) “우리는 누구인가?” — 정체성을 부여하는 문화

문화는 한 공동체가 축적해 온 경험, 신념, 이상이 응축된 산물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정체성 역시 형성한다.
“인간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인간을 만든다”는 말처럼, 개인과 문화는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빚는다.


(2) “기본값을 정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 — 문화는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문화는 우리가 매 순간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문제들을 대신 결정해 주는 보이지 않는 기본값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사회가 제시하는 부모 역할의 문화적 코드가 자연스럽게 기본값이 된다. 이 기본값은 반복되면서 점차 굳어지고, 사람들은 이를 사회의 ‘객관적 현실’로 오해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문화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게 하는 문화적 관성이 되기도 한다.


문화는 필터처럼 작동한다. (참고: 아래의 '그림 2' 및 내용 설명)
기존의 공유된 이미지와 조화되는 메시지는 쉽게 흡수하고 강화한다.
반대로 그와 충돌하는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배척한다.
문화가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식이지만, 때로는 시대 변화에 뒤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컴퓨터에서 운영체제가 없다면 어떤 고성능 장치라도 무용지물이다. (참고: 아래의 '그림 3' 및 내용 설명)
사회도 마찬가지다. 문화라는 운영체제가 없다면 사회는 방향을 잃고 흩어져버린다.

그렇다면 이렇게 강력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이 운영체제 — '문화'를 우리는 어떻게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원리 4] 진정한 변화는 '배우기'보다 '잊어버리기'가 더 어렵다.

사회의 진정한 발전과 혁신은 결국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학습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행위가 아니다. 기존 질서를 유지한 채 효율만 높이는 1차 학습을 넘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전제와 규칙 자체를 다시 쓰는 2차 학습이 핵심이다. 이 2차 학습의 가능성과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회의 미래를 의식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잠시 1,2차 학습 그 두 층위의 학습의 차이를 살펴보면,


1차 학습 (기존 틀 안에서의 개선)

이미 주어진 규칙과 가정은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효율성과 성과를 높이는 방식이다.

예컨대 기존 항공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전제로 하여 노선을 최적화하거나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는 것— 그것이 1차 학습이다.


2차 학습 (규칙 자체를 다시 묻는 근본적 전환)

반면 2차 학습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고를 요구한다.

‘왜 우리는 이 전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 ‘이 시스템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 질문을 던지며, 시스템의 구조를 재설계한다.


화물 운송의 통념을 전복해 ‘허브 앤 스포크’ 모델을 창안한 페덱스, “항공료는 비싸야 한다”는 가정을 깨고 저가 항공 시장을 연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바로 이 2차 학습의 전형적 사례다. 사회적 도약은 언제나 이러한 2차 학습의 순간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사회는 본질적으로 ‘2차 학습에 저항하는 존재’다. 이 저항은 강력하며, 때로는 조직이나 국가의 미래를 결정지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저항의 형태, (1) 전문가 집단의 오만

“대중은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익숙한 문장은 단순한 엘리트주의가 아니다. 이는 과학적 통찰이 사회로 확산되는 것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태도다. 전문가들은 종종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이미 익힌 것을 버리는 것(unlearning)을 더 어려워한다. 이 때문에 변화의 가장 큰 저항 세력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사회가 가장 지혜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과학적 통찰은 대중과 단절된 채 고립되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은 심각한 결핍을 겪는다.


저항의 형태, (2) 동조 압력의 마비 효과

집단과 다른 의견을 말하기 두려운 심리는 개인의 합리적 판단을 쉽게 마비시킨다. 예를 들어 오래전 미국의 금주법 카운티 조사에서 75%가 금주법 폐지에 찬성한다고 답했음에도 정작 투표에서는 60%가 유지에 찬성했다는 사례는 이 동조 압력이 얼마나 강력한 집단적 착시를 부르는지 보여준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아닌, “대다수가 무엇을 원할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가”에 따라 움직이며 결국 전체 시스템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기도 하게 된다.


저항의 형태, (3) 이데올로기의 덫

이데올로기가 절대적 진리처럼 군림하면 그 가정에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금기가 된다. 이 순간 시스템은 ‘2차 학습’을 철저히 봉쇄해 버리고 만다. 냉전 이후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던 후쿠야마, 문명의 충돌을 단일 관점으로 해석했던 헌팅턴의 사례는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이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얼마나 단순화하고 왜곡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시이다.


결국 사회의 발전은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는 1차 학습이 아니라,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사회 운영체제의 코드’를 다시 작성하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이 과정은 언제나 불편하고, 때로는 기존 권위와 충돌한다. 그러나 이 고통스러운 재작성 없이는 어떤 사회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2차 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필수 조건인 것이다.



[원리 5] 문화는 보이지 않는 '장(Field)'처럼 퍼져나가 집단 전체를 바꾼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가 단순한 기계적 집합이 아니라, 스스로 질서를 만들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자기조직화 시스템임을 살펴보았다. 이 시스템의 동력은 에너지가 아니라 정보이며, 그 정보의 총체인 ‘문화’가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로 작동한다. 그리고 사회의 진정한 도약은 기존 규칙을 재검토하고 다시 설계하는 2차 학습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이제 이 논의를 한 단계 더 확장해 보자.
마거릿 휘틀리와 루퍼트 셸드레이크가 제시한 ‘장(Field)’의 개념은 문화가 어떻게 사회 전체를 작동시키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휘틀리와 셸드레이크에 따르면 문화는 개인들의 생각을 모아 만든 총합이 아니다. 문화는 사회 전체에 스며들며 구성원들의 사고와 행동을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장과 같다. 우리는 흔히 ‘분위기’, ‘기류’, ‘공기’라는 말로 이를 경험한다. 하지만 이 장은 감정적 분위기를 넘어, 사회의 사고 패턴과 행동 양식을 구조적으로 규정하는 힘이다.


생물학자 루퍼트 셸드레이크는 이 장의 힘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의 일부는 개인적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종의 장’에 축적된 지식에서 온다.” “개체군 전체가 새로운 행동을 배우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변할 수 있다. 그들의 장이 이미 변했기 때문이다.” 이 통찰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결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회 변화는 개인들의 노력의 합을 넘어서, 장 전체의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문화가 바뀌면,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 개인 변화 → 집단 변화라는 선형 구조가 아니라,
- 장 변화 → 개인 변화라는 비선형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를 새롭게 만드는 일은 단순한 제도 개혁이나 행동 변화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문화의 장, 즉 공유된 이미지를 어떻게 재편하고 방향을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 그 미래가 사회의 ‘기본 이미지’가 되는지, 그리고 그 이미지가 집단의 장을 어떻게 바꿔놓는지가 곧 사회의 진로를 결정한다.


혼돈처럼 보이는 세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는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질서의 설계에, 우리 각각이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사회 변화는 더 이상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과업이 된다. 이것이 시스템 사고가 이 시대에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1. Systems Thinking: Managing Chaos and Complexity, A Platform for Designing

Business Architecture, Jamshid Gharajedaghi, 2011



[참고]


그림 1) 생명이 중심이 되는 세계관

그림 1은 생명 시스템이 어떻게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를 통해 등장하고 진화하는가를 세 가지 관점—물리학(프리고진), 생물학(자가생성·오토포이에시스), 진화론(돌연변이·자연선택)—을 연결하여 설명하는 개념도. 핵심은 “생명은 단순한 기계적 조합이 아니라, 열평형에서 벗어난 열린 시스템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등장한다”는 현대 과학의 통찰임.

(A) 왼쪽: 고전적 진화론 관점(초록·파랑 블록)
— 돌연변이(Random mutation) +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1) 하나의 세포는 소멸(dissipation)과 분기(bifurcation)를 거치며 256개의 서로 다른 세포 유형으로 분화 → 인간은 약 10¹⁵개의 세포로 구성됨.
2) 이 생물학적 분화 과정 이후 무작위 돌연변이(random mutation)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작동하여 종이 진화한다. 즉, 전통적 진화론은 “무작위 변화 → 경쟁 → 선택”이라는 하향식(normative)·선형 모델이 중심이 된다.

(B) 오른쪽: 현대 생명 시스템 이론(빨간 블록)
— 자가생성(Autopoiesis) + 비평형 개방계(Dissipative Structures)

여기서 핵심은 생명 자체가 열역학적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open system far from equilibrium) 상태에서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점.

1) Dissipative Structure (소산구조)
-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의 개념, 외부와 에너지·물질을 계속 교환하는 열린 시스템,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부로 엔트로피를 배출하며 내부 질서를 만들어냄

2) Bifurcation (분기)
- 특정 ‘임계점(inflection point)’에서 → 시스템은 작은 교란에도 크게 반응하며 → 전혀 새로운 질서로 점프(도약), 생명은 바로 이런 “분기 도약”을 통해 복잡성을 증가시킴.

3) Autopoiesis (자가생성)
- 생명체가 스스로를 유지·재생산하는 능력, 외부에서 주어진 설계도가 아니라, 내부 규칙에 의해 조직을 구축하고 지속함

결국 Cellular Life(세포적 생명)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이전에, 프리고진식 자기조직화 → 분기 → 자가생성의 과정을 통해 등장. 즉, 생명은 “설계자 없이 스스로 출현(emergence)”한다.

(C) 생명은 '생명은 ‘열린 비평형 시스템’에서 태어난다.
— 오른쪽 붉은 영역: 프리고진의 소산구조 이론(dissipative structure)이 주장하는 핵심.
- 생명체는 닫힌계가 아니다. 외부와 에너지·물질을 지속적으로 교환하며 평형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이 유지된다. 평형상태는 죽음이다. 생명은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비평형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이런 비평형 상태가 새로운 질서(패턴)를 만들어내는 조건이다.



그림 2) 공유된 이미지와 문화

1. 위쪽 그림 ― 개인의 이미지와 외부 자극

여러 개의 작은 사각형 아이콘(=외부 자극/정보)이 원 주변에 배치되어 있다. - 중앙의 큰 원 = 개인(또는 집단)의 마음, 인식 공간
- 주변의 사각형 = 환경으로부터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사건·경험들 - 굵은 화살표 = 그중 하나의 자극이 선택되어 개인의 인식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 즉, 인간은 외부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자극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가진 이미지·기대·가정에 따라 특정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2. 아래쪽 그림 ― 공유된 이미지가 ‘문화’를 만드는 메커니즘

아래의 두 개의 큰 타원은 두 사람(또는 두 집단)의 마음·세계관·경험을 상징.
- 왼쪽 타원 = A라는 집단/개인
- 오른쪽 타원 = B라는 집단/개인
- 두 타원이 겹치는 가운데의 진한 부분 = Shared Image(공유된 이미지)
이제 두 타원이 겹치며 만들어진 이 공통 영역이 바로 ‘문화(Culture)’의 핵심부다.
즉, 문화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세상은 이렇다’라고 공감하는 공통된 심상·규범·가치의 교차 지점"

개인은 다 다르지만, 겹치는 부분(공유된 이미지)이 넓어질수록,
공동체의 결속은 더 강해지고, 협력은 쉬워지며, 사회는 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반대로 공유된 이미지가 작아지면, 갈등이 증가하고, 소통이 어려워지며, 정치·사회적 분열이 심화된다.

(요점)
개인은 외부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존의 ‘내적 이미지’가 필터 역할을 한다.
여러 개인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할 때, 그것이 바로 공유된 이미지이다. 이 공유된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culture)라는 더 크고 안정적인 ‘집단적 의미 체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더 던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의 이미지(mental model)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일이다.


그림 3) 문명의 두 축

1. 문명의 두 축: 기술과 문화
그림은 문명을 크게 기술(Technology)과 문화(Culture)로 나누고, 이 두 요소가 각각 어떤 하위 영역을 포함하는지 보여준다.

2. 기술(Technology): 문명의 ‘하드웨어’
왼쪽의 Technology 영역은 문명의 물질적 기반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즉, 사회가 실제로 “만지고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시스템, 장비, 인프라 등을 의미.

기술 하위 구성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생산(Production), 방위(Defense), 건강(Health), 통신(Communication), 운송(Transportation), 건설(Construction), 여가(Leisure)

즉 기술 영역은 사회의 물리적 실체를 구성하는 기계적 기반(hardware)이다.

3. 문화(Culture): 문명의 ‘소프트웨어’
오른쪽의 Culture 영역은 사회의 정신적, 의미적 기반이다.
- 가치(Values), 지식(Knowledge), 권력(Power), 부(Wealth), 미(Beauty) 등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과 사고를 규정하는 정신적 소프트웨어다.

즉 이러한 문화의 역할은 Software이자 Operating System이다.

즉, 문화는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OS)이다. 이 OS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기술의 사용 방식과 문명의 방향이 달라지게 된다.

4. 기술 ↔ 문화: 문명의 전체 시스템
- 기술 = 문명의 하드웨어
- 문화 = 문명의 운영체제(소프트웨어)
기술은 문명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히고, 문화는 문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높은 기술력(하드웨어)을 가지고 있어도 문화적 가치(소프트웨어)가 탐욕, 폭력, 차별에 기반하면 그 기술은 파괴적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
반대로 평화, 협력, 인간 존엄을 중시하는 문화가 존재하면 기술은 복지, 건강, 평등, 공공성 증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5. 결론적으로 한 문명이 발전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① 기술적 진보(하드웨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② 문화적 진화(소프트웨어) 없이는 문명 전체가 불안정해진다는 점을 강조.

따라서 문명을 분석할 때는 다음 두 질문이 동시에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기술을 만들고 있는가?”
“우린 그 기술을 어떤 문화적 목적을 향해 쓰고 있는가?”
→ 즉 우리의 운영체제(OS)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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