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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운 Oct 15. 2022

벌써 일어나서 없는 그 사람

사랑의 뒷모습은 늘 붉다. 신호등의 빨간불처럼 정지의 의미를 가진 붉음일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은 사람의 혈흔일 수도 있고 깊이 사랑을 했다는 흔적일 수도 있다.


사람을 놓친 채 기적을 바라는 것은 빈손으로 빈집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두 손은 텅 비어있다. 마치 두 눈을 잃어버린 듯이 허공을 휘젓고 있다. 불안은 늘 다시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으로 가고 싶다가도 나를 반겨주는 따뜻한 품에 안기고 싶다. 사랑은 더 큰 눈동자에 수렴된다.


붉은 눈. 그 사람이 시작한 말. 내 마음에서 영원히 함께하는 그 말. 그 말을 발음하면 방아쇠가 당겨진다. 가벼운 농담과 부자연스러운 호흡. 그 중간에 늘 함께 따르는 괴로움. 나는 괴로워한다. 그대로 낙하한다. 바닥과 부딪히기 전에 이 긴 잠에서 깨야 한다. 총알만큼 빠르게 깨야 한다. 말이 느껴지기 전에. 생각나기 전에. 기억나기 전에. 꽉 잡을 수 없는 매끈한 벽이 쓰러진다. 소음이 난다. 마음에 흠이 난다.


애써 고백한다. 벌써 일어나서 없는 그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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