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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xan Oct 30.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울 월요일

네 번째 편지

친애하는 B,

매 월요일은 다른 때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는 법이라.



여느 때보다 복잡한 등굣길,

여느 때보다 커다란 가방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보다 더 조용한 ㅡ 소리 없는 부산함.


이처럼 활력과 무기력이 공존한다는 것은, 월요일만의 신기한 ㅡ 모순되어 신기한 점입니다. 활력 있어하려다 보니 무기력해졌는지, 무기력하다 보니 활력이라도 있어 보이려 하는 것인지... 활력과 무기력 그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함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월요일은 제게 퍽 이상한 요일임에는 틀림없어 달력을 보지 않고도 월요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로서는, 암만 활기찬 한 주의 시작을 소원한다 해도, 매 월요일마다 지독히 허튼소릴 지껄이는 윗사람을 보기 싫어 무기력합니다. 물론 다른 요일이라고 그 사람을 보기 기껍다는 건 아니지만서도, 유독 매 월요일이 더욱 그러하다, 이 말입니다. 게다가 그 허튼소릴 그 사람 면전에다 대고 제대로 정정해 줄 방법도 없으니, 그저 답답한 마음만 깊어가는 것이지요. 괜히 죄도 없는 일기장에 욕지거릴 하며 분풀이를 해 봐도 성격이 모난 덕분인지 그 정도로는 답답하고 무기력한 마음을 풀기에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그로 인한 마음이 꽤 극에 달해, 월요일이 싫으니 월요일이 다가오는 일요일도 그저 견딜 뿐이고, 월요일을 견디고 다시 맞이하여야 하는 화요일도 싫어졌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견뎌야 한다는 것. 아무래도 저는 그게 싫은 모양입니다, B. 나를 지나는 시간을 그저 견디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시간 낭비가 아닌가요? 중력이 그 미운 이게게 모두 쏠린 듯이 느껴지면, 나를 지나는 시간에서 내가 반드시 느껴야 하는 아름다움을 곧잘 놓치기 마련이니까요. 나는 그 보잘것없는 미운 이 때문에 놓쳤을 아름다움들이 참 아깝고 딱합니다.



때문에 무언가 구원이 필요하다,

그리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보면 종교도 없으면서 무슨 구원이느냐고, 우습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저 같은 부류의 사람에겐 시간을 망친다는 건 꽤 큰일이라 그처럼 간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류의 구원에 간절히 집착하다, 엊그제인가 문득 오래전 대학에서 심히 졸며 배운 칸트의 '미학'이 떠올랐습니다. (역시 다른 대학의 강의를 들으며 심히 졸던 와중에 떠오른 것이라 문득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생각했지요.)


저를 포함한 수강생 대부분이 졸면서 배웠을 만큼 악명 높은 칸트는 그 악명과 다르게 좀 로맨틱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누군가와 로맨틱한 사랑에 빠져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꼭 남녀상열지사에만 로맨틱이란 단어를 쓰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칸트는 낭만적이라는 맥락에서 로맨틱이라는 단어와 어울립니다. 그는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그 누구보다 외로이 골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독특한 로맨틱함은 그의 묘비명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움과 경외로 마음을 사로잡는 두 가지가 있다. 내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병적인 강박증 ㅡ 매번 단추 하나가 없는 채로 그의 강의를 듣던 한 학생이 어느 날 단추를 달고 오자, 정중히 다시 단추를 떼어달라 부탁할 정도의 그런 병적인 강박증 ㅡ 으로 두려움에 시달리곤 했던 칸트가 남긴 생애 마지막 말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일상적이었을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준 별이 빛나는 하늘과 마음속 도덕률은 저의 월요일 또한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테지요.



B, 당신께서는 별이 빛나는 하늘, 그리고 그대 마음의 도덕률에서 무엇을 느끼시나요? 칸트는 그 두 가지에서 놀라움, 경외를 느꼈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놀랍고도 경외로운 '숭고함'이 그에게는 미학적 감정인 것입니다. (미와 숭고의 관계, 그리고 숭고함의 종류에 대해 이 편지에서 구구절절 지껄인다면 이전에 칸트를 듣다 졸았던 저처럼 B 또한 졸음을 이기지 못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기에 칸트의 미적 철학이 담긴 '판단력 비판'을 추천하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따라서,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울 월요일을 기쁘게 상상하며, 어떤 것이 나에게 숭고인가 곰곰이 생각건대, 그의 말이 맞아도 백번 맞는 것이, 늦은 퇴근길 도시 불빛도 이겨내는 저 먼 별은 얼마나 멀리서 얼마나 뜨거운가 놀라게 되는 겁니다. 또한 끊임없이 사유하며 시간을 곱씹는 (그것이 불쾌하든 쾌하든) 저 스스로가 새삼 대견하여 놀라게 되는 겁니다.  


그리하여 갑자기 미운 윗사람과 관계없이 내 월요일이 곧이곧대로 아름다워졌다,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허튼소리는 듣기 싫고, 미운 이는 밉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이제 예전만큼 제 시간을 마음대로 망쳐놓지는 못합니다. 제가 놓치지 않고 붙잡아두려 하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지나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순간의 기쁨이 되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이젠 애써 견디지 않아도 제 시간은 째깍하는 소리조차 없이 편안하게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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