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저 시계 볼 줄 압니다. 안다니까요?

by 박홍시

어른이 된다는 건, 부모님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

부모님은 이따금 나에겐 도통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강조하신다.

이를테면 아날로그시계 보는 법이나 좌우 구분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휴대폰이 있었고, 손목시계 없이도 불편함 없이 자라났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엔 종소리에 맞춰 모든 일정이 흘렀다. 수업 종이 울리면 앉고, 쉬는 종이 울리면 나가면 됐다. 굳이 시계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계는 내 삶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학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에는 전자식 시간이 항상 표시됐고, 모니터 구석에도 시간은 떠 있었다. 아날로그시계는 멋있긴 해도, 읽기에는 불편한 물건이었다.


그 결과, 나는 지금도 아날로그시계를 잘 못 본다. 숫자 없는 시계는 특히 오래 걸린다. 한 칸씩 세어야 한다.

부모님은 그 사실에 경악하셨다.

“진짜로 못 보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얼버무렸고, 내심 찔렸다.


좌우 방향도 비슷하다.

나는 ‘좌’와 ‘우’보다 ‘왼쪽’과 ‘오른쪽’에 익숙한 세대다.

그래서 아직도 “좌회전하세요”라는 말에 순간 멈칫할 때가 있다.

한자를 배운 세대가 아니고, 군대도 안 다녀왔으니 더 그렇다.


이런 나를 부모님은 종종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셨다.

나는 짜증이 났다.

“대체 왜 이런 걸로 호들갑이지.”

쓸모없는 구시대의 지식 같았고, 괜히 잔소리로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를 먹으니 슬슬 이해가 됐다.


운전을 하다가 “두 시 방향입니다”라는 내비게이션의 말에 얼어붙었을 때,

회의 중 누군가가 “좌측 그래프를 보시면요”라고 했을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이래서 부모님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거구나.


시계를 보는 법은 시간 확인만이 아니라, 방향과 흐름을 공유하는 방법이었다.

좌우는 단지 방향이 아니라, 언어의 격식과 정확함을 위한 도구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사회에 덜 불편하게 어울리기 위해’ 필요했던 거였다.


부모님은 시계를 못 본다고, 좌우를 헷갈린다고 진짜 걱정하신 게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바보 취급당할까 봐, 자존감이 꺾일까 봐 걱정하신 거였다.

그러니까 잔소리는 사랑이었다.

듣기 거북한 방식의 사랑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 사랑이 귀찮았고, 쓸데없는 간섭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소한 걸로 뭐라 하지 않는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셨던 것이다.


나는 그 사랑의 크기만큼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 짜증이 사라진 지금,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언제까지고 어린아이이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 나이도, 부모님의 나이도 무시할 수 없다.

흰머리가 보이고, 손등에 주름이 잡힌 부모님의 얼굴을 문득 보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앞으로는 잔소리도 아껴 들어야겠다.

언젠가는 그 잔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날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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