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시계

by 박홍시

시계방에 가본 적 있으십니까?

수많은 시계가 주인을 기다리며 반짝이고, 초침과 분침의 레이스가 늘 펼쳐지는 곳 말입니다.

저는 저렴한 전자시계를 오로지 시간 확인 목적으로 걸치기 때문에 시계방에 갈 일은 딱히 없습니다.

얼마 전 에세이(https://brunch.co.kr/@xxyyxx/113)에서 밝혔듯이 저는 아날로그시계를 잘 못 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요즘엔 스마트폰이 항상 제 옆을 지키기 때문에 시계가 필요할 일 자체가 적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늘 3~10만 원 사이에 가성비 좋은 전자시계를 애용합니다.

몸 쓰는 일을 하다 보면 꼭 시계를 봐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꺼내들 수는 없는 상황이 간혹 있거든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저와 다르게 시계를 좋아하십니다.

반짝이고 묵직한 시계를 손목에 얹는 걸 좋아하십니다.

그런 시계들은 대부분 오토메틱이고, 실리콘보단 가죽으로 스트랩이 만들어진 경우가 많지요.

그렇기에 아버지의 시계는 까다로운 관리가 필요합니다.

대충 쿼츠를 갈고 몇 년 동안 대충 손목에 감아도 되는 게 아녜요.

그렇기에 아버지를 따라 시계방을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저를 데려가시는 걸 좋아하세요.

아마 취미를 공유하고 싶으신 거리라 예측합니다.


그곳에는 늘 나이가 지긋하신 시계장인 분들이 계십니다.

수리나 오버홀 등을 맡기면 아무 말 없이 작은 부품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며 금세 시계를 고쳐내시지요.

부품들이 얼마나 작은지 돋보기가 없으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폰을 차에 두고 내리고 손목에는 시계를 차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저는 멍청하게도 사방에 시계가 있는 곳에서 시계공 할아버지께 시간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천장 30cm 아래 지점에 매달린 벽시계를 보며 시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온갖 색과 보석으로 자신을 뽐내는 시계들이 가득한 곳에서 할아버지가 애용하는 시계는 벽에 걸린 낡고 볼품없는 시계였습니다.

브랜드도 없고, 그냥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반듯하게 숫자가 나열된 그런 벽시계였습니다.


그때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시계공 할아버지에게 진짜 시계는 낡고 먼지 앉은 벽시계구나.'

그 시계는 화려하지도, 값비싸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그 시계를 봤고, 아무런 설명 없이도 시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매일같이 가장 먼저 눈길이 가고, 가장 자주 보아온 시계였기 때문이겠지요.


그 생각을 곱씹다 보니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요즘처럼 화려한 자극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늘 더 크고 더 밝은 것만을 쫓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늘 곁에 있는, 낡았지만 익숙한, 무심코 바라보게 되는 무언가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에겐 그런 벽시계 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의식하지 않고 습관처럼 하게 되는 일, 괜히 마음이 가는 일, 의미는 없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는 일.

그게 아마 가장 좋아하는 일일 겁니다, 그게 아마 가장 마음이 먼저 가는 일일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시간이 남아서 여유가 생기면 음악부터 틉니다.

그 순간의 분위기, 기분, 상황에 따라 딱 떠오르는 음악이 늘 있습니다.

그리곤 일단 무언가 쓰기 시작합니다.

저에게 벽시계란 음악과 글쓰기였더라구요.

누군가 '좋아하는 게 뭔가요?'라고 묻는다면 저의 벽시계를 말하면 되겠지요.


세상이 빠르게 돌아갈수록, 우리는 자꾸만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럴 땐 잠시 멈춰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을 흘려보내 보세요.
의식하지 않아도 자꾸 손이 가고, 괜히 마음이 끌리는,
세상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만은 알고 있는 '벽시계'를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그 벽시계는 당신에게 안정이 되어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며,
결국에는 사랑하게 될 무언가로 남을 거예요.

바쁘게 흐르는 하루 속에서,
여러분의 벽시계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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