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전환기

에세이

by 희원이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캠퍼스는 여전히 운동권의 열정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서서히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대학은 과도기였다.


운동에 관심을 두는 학생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챙겼으며,

그들 중 일부는 거리로 나가 시위 현장을 지켰다.

대학 진입로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지고,

학생들은 그 바리케이트를 피해 등하교를 했다. 아직

캠퍼스 구석구석에서는 화염병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한두 번씩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운동권 학생회가 마지막으로 그 기세를 떨치던 시절,

그런 풍경들을 보며

머릿속에서 복잡한 감정을 마주했다.

동기 중 한 명은 얼굴에 작은 상처를 입은 채

돌아와서는 자랑스러운 듯 선배들에게 인사하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뭔가를 말했다. 그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선배들에게 설명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두려움이나 분노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훈장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학생들이 운동권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겼다기보다는

시위 현장에 나가는 것을 주저했던 것 같다.

운동권에 참여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드는 시절은

이미 지났지만, 아직 운동권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고,

그런 학생이 있어서 세상에 조금은 기여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굳이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시위 현장에 나가서 검거되는 것에는 겁을 먹었던 셈이다.


그 시절은 학생운동이 수그러들기 직전의 시점이었다.

바리케이트 너머에서 들려오던 함성은 점점 희미해졌고,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고 여겼던 때였다.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확실히 안정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운동권의 저항은 간헐적으로 이어졌지만, 점점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과격한 행태로 비쳐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충분히 그들의 공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 하는 그런 시선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렇게 점점 세간의 관심은 시들해졌고,

학생운동이 쇠퇴했다.


한때는

캠퍼스 주변에 전단지를 뿌리며 “독재 타도”를 외치고,

캠퍼스의 각 건물 사이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경찰 프락치가 숨어들기도 하고, 교문에서 검열을 하는 경찰도 있었다고 하는데

시위 현장에서 보이던 화염병의 빛은 사그라지고, 운동권의 구호는 점점 희미해졌다.


적어도 내가 다닐 때에 그런 풍경은 캠퍼스에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열정의 잔불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총학생회에도 운동권 세력과 대비되는

경쟁 세력이 생겼다. 아직은

운동권 쪽이 앞서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 복지를 강조하는 진영이 총학생회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참여보다는 학생들의 편의에 힘쓰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반영된, 체제 순응적인 색채가 뚜렷해지던

출발점이었다.


“개인의 성공이 결국 사회의 발전이다”라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선명해지고 있던 셈이다.

학생들은 취업 준비와 토익 시험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IMF가 터지기 직전의 시기였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며, IMF 사태가 빠르게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고

혼란 때보다 살기 나아진 경제 상황 때문인지

적통의 민주 정부이기 때문인지

운동권의 명분을 더 흐릿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이제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더 이상 ‘시대의 목소리’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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