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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Oct 10. 2023

마일즈와 몽크의 크리스마스이브 세션 #1954년

놀이글 & 산문

우연히 입수한 인터넷 자료로 즉석에서 즉흥 창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때로는 한정된 몇몇 사진을 반복 활용하여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사진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저작권자께서 이의 제기하시면 바로 내리겠습니다.
발표용은 아니고, 예시용입니다. (→소개글 더보기)

남무성의 재즈 만화: 마일즈 데이비스와 셀로니오스 몽크 





1954년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세션으로 유명한 일화를 남긴 연주 녹음이었죠. 마일즈 데이비스와 셀로니오스 몽크, 밀트 잭슨, 퍼시 히스, 케니 클라크가 루디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연주했다고 하죠. 당시 리더는 마일즈 데이비스였지만 선후배 관계로 보면 셀로니오스 몽크가 선배였고,

"나도 이 바닥의 강자죠. 마일즈가 아무리 떠오른다고 해도 날 무시할 순 없지."


예술가적 입지도 마일즈와 비교해 밀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셀로니오스 몽크는 반주자로는 적합하지 않은 독특한 그만의 코드 진행 스타일을 보이는 데다가, 마일즈만큼 고집 있고 심지어 선배로서 입지도 탄탄한 밥 피아니스트이기까지 했으니, 대장 기질 있는 마일즈로서도 조심스러웠을 겁니다.





"아이고, 몽크 형님이 잘 따라주어야 할 텐데."


실제로 연주를 할 때





몽크가 뙇 건반을 두드리면 아주 골치가 아팠죠.





예상치 못한 코드 진행에 반응하려면 보통 고된 게 아니었죠. 리더로 사이드맨을 초대해놓고 자기가 골탕 먹으면 그야말로 한숨 나오죠.

사실 사색적이고 선율적인 감각을 좋아했던 마일즈는 어쩌면 천성부터 밥 스타일 음악가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쿨을 모색했던 것이겠죠. 코드를 쪼개면서 각종 음의 진행을 탐구하는 방식의 열정보다는 조금 더 차분히 음을 관조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러니 아무래도 뒤에서 설치거나 예상할 수 없는 갈지자로 음이 진행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냥 놔두면 금방에라도 픽 쓰러질 것 같은 술 취한 행인 같은 피아노 진행이었을 테니, 마일로서는 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밥에서 드럼 비트나 피아노 진행이 뒤죽박죽 같이 들리고, 어찌 보면 엄청 수다를 떠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 예상할 수 있는 플레이가 갖춰져 있었죠. 그 선을 너무 넘으면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몽크는





"에헴, 니들이 더 긴장해서 맞춰."


리더여야 했습니다. 존 콜트레인은 '소리이불'이라고 불릴 만큼 한 번에 엄청나게 음을 펼치듯 불어대는 방식까지 확립할 만큼 음을 호방하게 많이 쓰다 보니 이러한 괴팍한 불확실함에 적절히 반응할 수 있었죠.





"와, 콜트레인 프레이징은 혼동의 큰사발 매운맛 음의 융단폭격 같은 걸!"


셀로니오스 몽크로서도 만족했었죠.





"내가 예측 불가하게 음을 던져도 콜트레인의 음은 융단처럼 날아와 내 엉덩이를 걷어차!"


물론, 마일즈 역시 수다스러운 밥 스타일로도 명반을 제시했음에도 그 다음을 보고 있었죠. 늘 첨단에 서 있으면서도 그 첨단의 첨단을 고민하는 예술가였죠.





학구파였던 셈이죠. 그런 그가 크리스마스 세션이 있던 1954년으로부터 5년이 지났을 시점 <카인드 오브 블루>라는 역사적인 명반으로 재즈 밥의 새로운 모색을 했는데 당대에는 프리재즈보다 저평가되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음의 부담을 덜어냄으로써 유럽재즈에서도 자주 보이는 아끼는 연주가 가능해졌죠. 드럼은 훨씬 적은 비트를 제시하고, 모두가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그 여백으로 여러 선율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죠.

비밥으로 대표되는 모던재즈는 코드의 논리적인 분해로 '삐리리 사운드'로 불렸는데, 'So what'과 같은 경우엔 확실히 다른 경향을 띤 것이죠. 존 콜트레인도 그 역발상에 당혹했죠. 음이 너무 적었던 것이죠. 그 취지는 최대한 상대를 풀어주자는 의미였죠. 코드로 묶어버리면 아주 피곤하죠. 그리고 그러한 분할 방식의 상상력은 곧 한계에 부딪힐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많은 예술가들도 공감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 음을 더욱 야수적으로 풀어헤치며 자유즉흥을 강조하는 프리로 나아가지만, 마일즈는 그 방식과 다른 맥락으로 재즈의 표현법을 확장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에스닉적인 요소조차 재즈로 담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주죠. 문법의 압박이 약해질수록 더 많은 음악적 이질성이 하나의 테두리 안에 묶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셀로니오스 몽크의 기질은 이와도 좀 달랐죠. 그래서 독고다이로 묘사되죠.





그의 법칙은 압박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걸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니, 무시하면 음악의 조화가 깨지고, 붙들자니 그것만 신경써야 했죠. 마일즈로서는 자기가 추구하는 방향에서 선배 몽크의 프레이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선배가 반주자인데 내가 반주를 맞춰야 하겠냐고? 아오, 선배만 아니면 그냥!"


그래서 자신이 나설 때는 피아노 반주를 하지 말라는 말을 했고, 몽크도 성질이 났는지 어쨌는지 확 건반에서 손을 떼어버린다고 하죠.





"그러려면 날 부르지 말고 다른 피아니스트를 부르지 그랬어? 날 불렀으면 나답게 연주해주길 바란 거 아냐? 싫으면 관둬."


그래서 피아노가 중간에 아예 없는 간주가 이어진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일즈 평전을 보면, 마일즈의 솔로가 시작될 즈음 아예 일어서 있었다고 하네요. 심지어 "루디, 화장실이 어디야"라는 말이 녹음된 테이크도 있다고 하니,





마일즈로서는 참 어쩌지 못할 선배였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몰라도 그 뒤로 마일즈와 몽크가 레코딩을 함께 한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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