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킹 / 우주의 매력

소설

by 희원이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블루에 가기 전에 우주와 함께 버거킹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실없는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우주지만, 가끔 종훈은 우주에게서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면모를 보기도 한다. 우주의 비밀, 딱히 비밀이라기보다는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소식 하나를 공유했던 그날도 그랬다.





♬ 버거킹

토요일 오후 6시 30분, 버거킹 계산대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간이 약간 남기도 했고 저녁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보통 블루를 갈 때 자주 들르던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곳은 우주가 햄버거를 좋아하기 때문에 거의 고정적인 중간기착지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버거킹 매장 안에서는 연인끼리든 친구끼리든 사람들이 주문할 세트를 고르느라 시끄러웠다. 우주와 나는 말할 필요도 없이 와퍼세트였다. 그녀와 내가 만나는 처음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옥신각신하지 않았던 선택사항이다.

“음, 너어무 맛있겠다.”

긴 줄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와퍼세트를 받아들고 2층으로 올라가려던 순간 우주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으이그, 과장은.”

내 손에 들린 쟁반에 담긴 와퍼세트를 행복에 겨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재빠르게 뛰어 올라가 빈자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자리가 꽉 찼다. 우리는 3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사람들로 자리 대부분이 차 있었다. 다행히 어린 아들과 식사하는 젊은 부인 옆에 있는 이인용 테이블을 맡을 수 있었다.

“아, 맛있겠다.”

파리처럼 손까지 비비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버거를 싼 포장지를 쳐다보는 꼴을 보니, 포장지를 벗기는 순간 퍼질 냄새를 맡고 행복하게 웃을 준비를 하는 게 분명했다.

‘쯧쯧, 식탐대왕 우주돌이.’

먹는 시간도 아깝다며 재료를 몽땅 빵 속에 쑤셔 넣은 패스트푸드. 간편한 식사지만 미식가들이 좋아할 만한 식단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주의 표정은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 옆에 있는 사람의 식욕까지 돌게 했으니까. 그렇다고 그냥 아무거나 생각 없이 먹는 건 아니었다.


“역시 오후조에 실력파가 있는 게 분명해. 물론 전반적으로 우리 동네 버거킹보다는 잘 튀기지 않지만 토요일 오후는 절정이야. 이 바삭함. 먹어봐.”

우주는 감자튀김 한 조각을 나에게 내밀었다.

“손님 수의 차이?”

감자튀김을 받아서 입에 넣기 전에 되물었다.

“그래. 손님이 많으니 튀김량도 많아질 거고 6시쯤 되면 튀기머의 튀기는 기량이 절정으로 오르는 거지. 그래서 맛이 다를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콜라를 들이켰다. 우주의 상상도 기발했지만, ‘튀기머’라는 조어가 더 기발했다. 한국어와 외국어를 섞어 쓰는 건 나쁜 언어습관이지만 기발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날라리스트, 튀기머, 포스트씨리얼리즘, 치사뽕빠런스 등 다양한 조어를 만들어 학교친구들의 언어습관까지 흐려놓았다. 특히 날라리스트는 선생님들까지 자주 썼는데, 공부 안 하고 말 잘 안 듣는 문제 학생들을 블랙리스트와 같은 의미로 날라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 그런가 하면 학생들은 스페셜리스트와 같은 의미로 날라리스트라는 조어를 사용했는데 매달 재미로 ‘이달의 날라리스트’를 뽑는 게 잠시 유행했다.

하지만 튀기머의 경우는 우주와 같이 햄버거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들을 가능성이 적은 조어다. 즉 이 조어를 안다는 건 적어도 그녀와 밖에서 따로 만날 정도로 친하다는 말이다.


우주는 남은 한 조각의 감자튀김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그녀의 콜라컵에서 주기적으로 빨대를 타고 솟구치는 콜라의 요란한 용솟음 소리가 들렸다. 콜라가 줄어들수록 솟구치는 소리는 더욱 빈번해지고 커졌다.

‘참 먹기는 잘 먹는다.’

내가 우주를 잠자코 쳐다보자 우주는 감자튀김을 오물거리며 콜라를 마셨다. 손가락과 입 주변에 기름기가 번들거렸고 콜라컵 안에서는 부글대는 소리가 났다.

무선호출기 진동소리가 울렸다. 우주는 콜라컵을 내려놓고는 진동하는 호출기를 손에 들었다. 무선호출기도 기름기로 번들댔다. 우주는 한 손에 휴지를 들고 입 주변을 닦으며 호출기를 살폈다.

“사장형이니?”

“아니. 엄마야.”

우주는 무선호출기를 내려놓고 콜라를 있는 힘껏 빨았다. 이번 소리는 사뭇 달랐다.





♬ 우주의 매력

항상 쾌활하고 발랄해 보이는 그녀도 남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한 자신만의 이면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그걸 처음 목격한 때는 우주와 내가 흐지부지한, 즉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관계로 굳어질 때쯤이었다.

초봄의 어느 날 새벽 한 시쯤 모처럼 공부가 잘돼서 독서실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우주가 호출했다. 호출을 확인하려고 독서실 밖 복도에 있는 공중전화기로 가니 우주가 서 있었다.

“왜? 한창 공부 잘 되던 참이었는데.”

“그래서? 떫으냐? 치사하게.”

“어! 너 술 마셨니?”


꽃샘추위가 막 끝난 터라 초봄의 이른 새벽을 뒤집어쓴 옥상은 한산했다. 담배 피우러 제집처럼 드나드는 독서실 녀석들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우주가 울기 시작했다. 조용히 훌쩍거리는데, 처음에는 너무 조심스러운 움직임이라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조금씩이라도 어깨의 들썩임이 명확해지지 않았다면, 우주가 하품했다며 눈물을 천연덕스럽게 훔쳐내도 속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의 울음을 알아차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결국 연예인이 텔레비전에서 흔히 하던 행동을 떠올리며 침착하게 팔을 들어 우주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려 했다. 따귀라도 날아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우주는 내 행동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었다. 의외였다. 슬쩍 훔쳐본 내 옆에 여자는 아무래도 우주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여기니 정말 옆자리에는 내가 알고 지내던 우주 대신 낯선 사람이 앉아있었다. 낯선 그녀는 평화로운 지중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짙은 푸르름엔 아무도 방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대 무한의 평안이 깃들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닭살 돋는 과장이 그때 잠깐 통했었던 것 같다. 그런 표현 자체를 지금의 우주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웠으니 내가 착각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자못 심각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얇은 두루마리 휴지를 꺼냈었다. 휴지 윗면에서 도넛 모양의 구멍이 실눈을 뜨고 있었다. 똥 누려고 얇은 두루마리를 압착해서 뒷주머니에 꽂아놓고는 잊고 있었다. 우주는 두루마리를 받아 들면서 피식 웃어버렸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비록 우주 똥구멍이 밀림이 되더라도 우주가 웃는 건 나쁘지 않았다. 우주는 싫어할까?

“넌 꿈이 뭐야?”

그때도 우주는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글쎄, 갑자기 물어보니……. 넌 꿈이 뭔데?”

“난 혹시 죽게 되면 우주가 되고 싶어, 이름처럼.”

이 녀석이 왜 이러나 싶었다.

“닭살이지?”

물론 닭살이다.

“응.”

“너 죽는다.”

우주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내 가슴 속에 숨겨놓은 말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찔러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녀의 말투가 활달하게 살아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나의 우주든 크은 우주든 어쨌든 난 한! 우주야.”

‘크은’이라고 정말 크다고 강조하기 위해 우주는 음을 길게 뺐다. 요지인즉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우주가 될 운명이란다. 스펙타클한 헐리우드 스토리가 죽 흘러가자 옆에 지중해를 끌어안고 있던 여자는 다시 우주로 돌아왔다. 나는 갑자기 두루마리 휴지가 아까웠다.

‘똥 두 번은 더 쌀 수 있는데.’


“넌 정말 하고 싶은 거 그런 거 없어?”

우주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어느 대학을 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은 많아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은 드물었다. 우리에게 대학을 선택하는 문제는 꿈을 선택하는 문제와 같은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글쎄, 그냥 좋은 대학 가는 게 단기적인 목표야.”

“칫, 목표 말고. 관두자.”

물론 성심껏 대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주의 장단에 맞춰 ‘태권브이가 되어 한국을 지키겠다’는 식의 저질스러운 대화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내 정신연령이 낮을지라도 그런 유의 대화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설령 우주의 장단에 놀아주더라도 ‘우주’가 되는 것보다 더 스펙타클한 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즉 뭘 말해도 내가 말하는 건 충무로 액션일 뿐이었다. 옆에서 몇억 불 들여가며 특수효과 사용할 때 권총 들고 공포탄을 딱공딱공 쏘는 건 좀 한심하다. 그렇다고 나도 ‘우주’가 될 거라고 맞대응하는 것도 역시 한심하다. 이러나저러나 한심한 것이다.

“그래, 그럼 나 진짜 말할게. 난 사실 검사가 되고 싶어.”

“검사? 그럼 법대 가야겠네. 근데 왜 하필 검사냐?”

“싸가지 없는 녀석들 다 때려잡아야지.”

우주다운 말이었다. 우리나라 시험제도 역시 신뢰가 가질 않는다. 이런 바보가 전교 1등이라니.

“야, 우주인, 같은 말이면 좀 곱게 할 수 없니? 이왕이면 법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게 좋잖아?”

우주는 양 팔뚝을 양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그건 닭살 오른다.”

“맞긴 맞다.”

나 역시 공감하여 키득거렸다.

“넌 꿈이 뭐야?”

“난……”

‘정말, 꿈이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되묻고는 급한 김에 “과학자.”라고 말해버렸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란에 적어 넣은 ‘대통령’을 대답하기에는 내가 너무 철이 들었다.

“어? 넌 문과잖아. 그런데 어떻게 과학자가 될 수 있니?”

“어, 그렇구나. 그럼 대통령.”

“바부탱이.”


“어쨌든 오늘 고마워. 너랑 이야기하니까 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무슨 일 있었니?”

“무슨 일은…….”

우주가 앞을 바라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다시금 우주의 표정에 지중해가 들어찼다. 그랑블루 속 장 마르 바가 바다에 몸을 맡기는, 아름다운 자살 장면이 떠올랐다.

“그냥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어.”

“무슨 일?”

반사적으로 튀어나왔지만 튀어나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 말이었다. 우주의 숨결에 술 냄새가 진하게 실렸다.

“그냥, 오늘 법적으로 남남이 됐어. 우리 엄마랑 아빠, 이혼했어.”

난 그만 지중해를 다 마셔버린 듯했다.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어떤 말도 생각나질 않았다. 기껏 “그렇구나.”라고 반응한 것이 전부였다.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안절부절못했지만 곧 ‘그랑블루’에서 봤듯이 결정적인 순간엔 침묵이 약이라는 걸 상기하는 순간 나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우리는 잠시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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